[헤럴드경제=류정일 기자] KT 노동조합이 상생협력 노동운동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갑(甲)의 횡포가 판을 치는 세태속에서 철밥통으로 인식돼 온 공기업 뿌리의 대기업 노조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KT 노사는 지난 21일 ‘2013년 KT 단체교섭’의 가합의안을 도출하고 임금동결, 고졸 정규직인 ‘세일즈직’ 신설, 역할과 성과 중심의 보상체계 강화 등에 합의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임금을 전년 수준으로 동결하고 연구수당 등 그동안 관행적으로 이어져온 각종 수당을 폐지한 것. 노사는 이렇게 마련된 재원을 베이비부머 등 은퇴자들의 재능나눔 기회인 ‘사회공헌 일자리’ 확대에 쓸 계획이다.
KT는 지난달 250억원의 예산을 들여 3년간 1000명의 은퇴자를 전문강사로 양성하는 비전을 발표했다. 10만명의 은퇴자에게 IT활용교육을 실시하고 1만명에게 재능나눔의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1000명의 은퇴자를 전문강사인 ‘드림 티처’로 양성한다는 안이다.
사회공헌 일자리란 사회에 봉사하며 기본적으로 필요한 수준의 소득을 올리는 것으로 KT 노조는 사회적 책임 이행과 일자리 창출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데 동참을 선언했다.
신설에 합의한 세일즈직은 ‘대기업만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라는 이기주의를 스스로 탈피해 청년실업 문제 해결의 도화선이 될 전망이다.
오는 24일 조합원 찬반투표를 앞두고 전망은 긍정적이다. KT 노조는 “대기업의 기득권을 과감히 포기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이행에 뜻을 모았다”며 “이번 대타협을 통해 상생의 노동운동 기류가 확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면에서 부드럽게 합의를 이끈 이석채 KT 회장의 경영능력도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자조 섞인 ‘공룡’을 혁신적인 기업으로 탈바꿈한 이 회장은 2만5000여 임직원의 상생의지를 현실화했다.
이런 KT의 아름다운 기득권 내려놓기는 최근 노조의 주말특근 거부로 몸살을 앓고 있는 현대자동차와 대비된다. 반쪽 주말특근으로 생산 차질은 11주째 이어지고 있고 1,2차 협력사는 연쇄적인 피해를 입고 있다.
기본급 및 상여금 인상, 자녀에 취업지원금 지급, 노조활동에 면책특권 요구, 정년 연장 등을 바라자 현대차 공장이 해외로 이전되는 것 아니냐, 일자리를 해외로 빼앗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낳고 있다.
한쪽에서는 자기 주머니를 털어 생면부지와 일자리를 나누는데 LTE급 스피드로 나서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이미 ‘현대판 음서제’라고 비판받는 고용세습 등의 특혜를 누리면서 브레이크 고장난 자동차처럼 폭주하고 있다.
1위라는 명예는 소비자와 여론의 준 선물과도 같은 것이다. 그 이상을 바란다면 KT 노조처럼 스스로를 돌아보고 베풀 줄도 알아야 한다. 이번 KT 노조의 용단이 ICT 기반의 창조경제 발현에 따뜻한 인간의 인정이 섞인 새로운 차원의 기폭제가 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