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줍는 노인 22% 수집중 다쳐
피해 유형 77.2%가 자동차 사고
형광 조끼·단디바 밴드 사용 권고
20대 국회서 ‘인도 통행안’ 회기만료 폐기
[헤럴드경제=이용경 기자·김도윤 수습기자] 지난 20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성석동의 한 편도 3차로 도로에서 폐지 수거용 리어카를 끌던 60대 노인이 뒤따르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들이받혀 숨졌다. 사고가 발생한 시간은 오전 4시 55분쯤이었다.
새벽이나 야간에 폐지를 수거하기 위해 손수레를 끌고 나오는 노인들이 교통사고를 당하는 일이 이어지면서 안전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6일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의 ‘2023 폐지 수집 노인 실태조사’를 살펴보면 우리나라 폐지 수집 노인은 약 4만2000여명에 이른다. 폐지 수집 중 교통사고 경험률은 6.3%로, 전체 노인 보행자의 교통사고 경험률 0.7%의 9배 이르는 수치이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23년 9월 6일부터 10일 13일까지 폐지 수집 노인 103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조사 내용에 따르면 교통사고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65명이었다. 사고가 난 교통수단은 자동차가 50건, 오토바이 12건, 자전거 2건, 퀵보드 1건이었다.
헤럴드경제는 26일 서울 성동구와 영등포구에서 폐지 수집 노인들과 동행했다. 이날 취재진이 만난 폐지 수거 노인은 총 7명. 이들은 모두 무채색 옷을 입고 있었고, 그 중 형광조끼를 착용한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손수레 역시 안전조치가 미흡했다. 폐지 수거용 리어카나 손수레 후면엔 반사판이 부착돼 있지 않았고 생명의 끈이라고도 불리는 교통사고 방지 야광 밧줄 ‘단디바’ 밴드도 없었다. 단디바 밴드는 야광 반사천으로 제작되어 이른 새벽이나 늦은 저녁에도 시인성 확보에 용이하다.
서울 마포구와 영등포구에서 3년째 고철과 폐지 등을 줍는 박모(61) 씨는 “2년 전쯤 리어카를 끌고 가다가 외제 차량과 스친 적이 있다”며 “인도로 바짝 붙어서 가고 있었는데 쌩하고 지나가는데 바람이 확 일으켜서 차도쪽으로 넘어질 뻔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때 오싹했던 기억 때문에 차도로 다닐 때는 더 조심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성동구에서 만난 김모(90) 씨는 “아들들이 하지 말라고 해도 내가 집에 있으면 답답해 운동 삼아 폐지를 줍는다”며 “심심하기도 하고 밥을 먹고 집에 누워있으면 속이 더부룩해서 못 견디겠어서 아침 5시 반쯤 나와 두어시간 폐지를 줍는다”고 했다.
영등포에서 6년 동안 고물상을 운영하고 있는 추모(44) 씨는 “보통 문을 열고 아침 6시에서 7시 사이에 어르신들이 제일 많이 오신다”며 “어르신들이 일찍 일어나시고 대낮에는 덥고 하다보니 새벽에 다니시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어 “이제 갈수록 해가 일찍 지고 새벽에 어두워질텐데 어르신들이 옷도 어둡게 입으시는 경우가 많아 걱정된다”고 했다.
도로교통법상 너비 1m가 넘는 손수레는 차로 분류된다. 때문에 손수레가 무단횡단을 하는 것은 단속할 수 있지만, 이들이 도로 위를 다니는 것은 법으로 막을 수 없다. 도로교통법상 손수레가 보도로 다니면 오히려 불법으로 법칙금 3만원이 부과된다. 유모차와 전동휠체어만 예외적으로 보도로 가는 것이 허용된다.
전문가들은 도로교통법의 예외 규칙 등을 마련해 교통사고 위험을 줄여야 된다고 지적한다. 제20대 국회에서 이채익 전 자유한국당 의원 등 10인이 손수레를 보행자에 포함시켜 인도 통행을 가능하게 하는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회기 만료로 폐기된 바 있다.
최재원 한국도로교통공단 교수는 “도로교통법 개정은 공청회와 같은 여러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에 바로 되기는 쉽지 않다”며 “지자체에서 운전자들이 폐지수집 노인을 더 잘 분별할 수 있게 시인성을 높일 수 있는 조끼나 야광밴드 착용을 유도하는 방법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손수레를 보행자로 볼 경우 보행권에 방해가 될 수 있고 당장에 손수레가 보도로 가야한다고 허용이 되면 다른 교통수단도 보도 이동을 허용해 달라고 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