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틈나는 대로 홀로 또는 지인들과 함께 전국의 산을 찾아다닌다. 이때 제법 이름난 산인데도 이정표가 모호하거나 잘못 가리키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는 정작 있어야 할 곳에 이정표가 없어 한참을 헤매거나 목적지가 아닌 곳에 다다르는 낭패를 겪기도 한다. 인생은 곧잘 산행에 비유된다. 그럼 전원생활을 꿈꾸는 도시민들에게 새로운 인생2막의 길을 안내하는 ‘귀농·귀촌 이정표’는 어떨까?
농림축산식품부는 최근 ‘2023년 귀농·귀촌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시골 전입 후 1~5년차 귀농·귀촌인을 대상으로 매년 조사하는 통계여서 전원생활을 준비 중인 도시민에게 중요한 이정표 역할을 한다. 많은 언론매체에서 이를 보도했다.
가장 부각된 팩트(사실)는 급증한 귀농소득과 낮은 생활비 지출, 높은 만족도로 요약된다. 구체적으로 ▷귀농 5년차 가구의 연평균 소득 48% 증가 ▷생활비 지출 귀농 30%, 귀촌 17% 감소 ▷귀농·귀촌 10가구 중 7가구는 생활에 만족 등의 내용이다. 시선을 확 잡아끄는 ‘매우 긍정적인’ 이정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번 실태조사 결과와 보도내용은 비록 팩트일지언정 진실과는 사뭇 거리가 있다.
먼저 귀농가구의 소득을 보자. 안정적인 시골정착을 이루려면 최대 관건은 역시 소득이다. 귀농 5년차 소득이 48%나 증가했다면 이는 괄목할만한 수치다. 그런데 2022년부터 귀농 5년차 소득의 증감을 비교할 때 그 기준 연도가 슬그머니‘귀농 직전 해’에서 ‘귀농한 해’로 바뀌었다. 사실 그 이전 조사에서는 귀농 5년차 소득이 ‘귀농 직전 해’의 소득을 넘어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반면 새로 바뀐‘귀농한 해’기준으로 비교하면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온다. ‘귀농한 해’는 다니던 직장이나 자영업을 그만두고 막바지 시골 이사 준비와 실제 전입을 하는 때다.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 없으니 당연히 연소득도 가장 낮다. 귀농 후 소득에 대한 객관적인 비교 분석을 하자면 ‘귀농한 해’가 아니라 귀농 후 본격적인 농사를 시작한 1년차(3055만원)와 5년차(3579만원)의 소득을 비교하는 게 합리적이다. 이 경우 ‘5년 새 48%증가’는 ‘4년 새 17%증가’로 확 낮아진다.
다분히 작위적인 ‘48% 증가’팩트에 가려진 실제 귀농 5년차 소득(2023년 3579만원)의 진실은 여전히 힘겹다. 사실 5년 전인 2018년에 이미 귀농 5년차 소득은 3898만원으로 정점을 찍었다. 당시 농식품부는“농가 평균소득(2017년 3824만원)을 뛰어넘었다”고 홍보했다. 2019년(3895만원)과 2020년(3660만원)에도 2023년 소득보다 높았다. 이후 농가소득은 2022년 4615만원으로 5년 동안 21%나 늘었지만, 귀농소득은 되레 8.1% 감소했다. 이게 진실이다.
‘생활비 지출 대폭 감소’라는 팩트도 사실 내세울 게 못된다. 2023년 실태조사 결과에서 귀농가구의 생활비는 귀농 전 월 234만원에서 164만원으로 약 30% 줄었다. 귀촌가구는 귀촌 전 227만원에서 188만원으로 17% 감소했다. 얼핏 ‘도시보다 시골 생활비가 훨씬 적게 든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2018부터 2022년까지 귀농·귀촌가구의 월 생활비는 귀농 171만~201만원, 귀촌 204만~216만원이었다. 2023년 귀농가구의 월 생활비 164만원은 가장 낮은 수치다. 여기에 귀촌가구 생활비도 처음으로 월 200만원 밑으로 떨어졌다. 귀농·귀촌 모두 살림살이가 더욱 팍팍해졌다는 걸 보여준다. 시골에 산다고 생활비가 적게 들어가는 게 아니라 소득이 적으니 적게 쓸 뿐이다.
이처럼 정책당국은 귀농·귀촌 실태조사 결과에서 나타난 단편적인 팩트를 모아 긍정적인 방향으로 포장해 내놓고, 언론매체에서는 더욱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 이를 보도한다. 전원생활을 꿈꾸는 도시민들에게 미혹의 길로 안내하는 ‘호객 이정표’가 아닌가. 이 같은 ‘호객 이정표’는 전국 곳곳의 수많은 귀농·귀촌 교육장에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귀농·귀촌 교육은 전체 귀농·귀촌 인구의 96%를 차지하는 귀촌보다는 4%뿐인 귀농에, 또 귀농 중에서도 ‘돈 버는 농사’를 지향하는 일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2023년 실태조사 결과에서 보듯이, 귀농가구 가운데 ‘높은 소득을 얻기 위해’ 작목을 택했다는 비율은 23%(2022년 22.2%)에 불과했다. 애초 인생2막의 길을 안내하는 출발점인 귀농·귀촌 교육 이정표부터 그 방향을 잘못 잡고 있는 것이다. 재설정이 필요하다. ‘돈 버는 농사’를 하겠다는 일부 귀농가구에 대해서는 장기적이고 전문적인 농업교육을 실시하는 게 맞다.
정부와 지자체는 귀농·귀촌 붐업과 도시민 유치에만 급급해 진실과는 거리가 먼 ‘호객 이정표’를 제시해선 안 된다. 귀농·귀촌을 준비 중인 도시민들도 여기저기 내걸린 이정표 중에서 ‘진실의 이정표’를 분별하고 그 길을 좇아야 한다. 그래야만 피할 수 없는 시행착오를 최소화해 꿈꾸던 전원생활을 오롯이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