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한석희 기자]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깜깜이 선거로 통했던 스페인 총선에서 30여년만에 양당체제가 무너졌다. 긴축경제와 집권여당의 부정부패 등으로 인해 집권 국민당(PP)이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하면서 총선 이후 스페인의 정국은 또 다시 ‘깜깜이 정국’으로 흘러갈 것으로 보인다.

현지 TV TVE가 20일(현지시간) 치러진 스페인 총선 투표 종료 뒤 발표한 출구조사에서 국민당은 26.8%를 얻어 제1당이 될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1년 총선에서 얻은 득표율 45% 보다는 20%포인트 가량 떨어진 것이다.

극좌 정당인 포데모스(Podemos)가 21.7%로 2위를 차지하고 중도 좌파 제1야당인 국민당과사회노동당(PSOEㆍ사회당)과 시우다다노스(Ciudadanos)가 각각 20.5%, 15.2%를 얻은 것으로 예측됐다. 좌파 신생 정당인 포데모스와 중도 우파 신생정당 시우다다노스가 약진하면서 1975년 프랑코 총통 사망 이후 30여 년간 이어진 사회당과의 양당 체제가 붕괴된 셈이다.

의석 수별로는 총 350석인 의회에서 국민당이 과반(176석)에 훨씬 못 미치는 114∼118석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됐다. 현재 국민당 의석은 186석이다.

사회당이 81∼85석으로 2위를 차지하고 포데모스와 시우다다노스는 처음으로 하원에 진출하게 됐다. 포데모스가 76∼80석으로 3위, 시우다다노스가 47∼50석으로 4위에 오를 전망이다.

이 결과대로라면 과반 의석을 확보한 정당이 없어 국민당은 연립 정부를 구성하거나 불안한 소수 정부로 남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 사회당과 포데모스가 손을 잡거나 새로 총선이 치러질 수 있다.

스페인 헌법에서는 총선 후 내각 출범 시한을 정해두고 있지 않아 앞으로 연정 구성 등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국민당의 마리아노 라호이 총리는 지속적인 경제 회복을 위해 좌파 집권을 막고자 연립 정부를 구성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경우 알베르트 리베라가 이끄는 중도 우파 정당인 시우다다노스가 캐스팅보트를 쥐고 이른바 ‘킹메이커’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리베라 대표는 제1당으로 승리하지 못하면 국민당이나 사회당과의 연립정부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 총리 결정 신임투표에도 불참함으로써 소수정부 구성을 허용할지는 입을 다물었으며, 선거 뒤엔 태도를 바꿀 여지도 있다.

이번 선거에서는 부진한 경제 회복과 부정부패, 카탈루냐주의 분리 독립 이슈가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에서 네 번째로 경제 규모가 큰 스페인은 자산 거품이 꺼지면서 2012년 7월 국제채권단의 은행 구제금융안을 받아들여 2013년 말 구제금융 관리체제를 졸업했다.

깜깜이 스페친 총선…긴축경제ㆍ부정부패로 30여년만에 양당체제 붕괴

라호이 정부의 경제 개혁과 긴축 정책 등 덕택에 스페인은 현재 유로존에서 경제 성장률이 가장 높은 국가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작년 스페인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4%로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7년 만에 처음으로 플러스 성장을 기록했다. 올해 경제 성장률은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에서 가장 높은 3.1%에 이를 전망이다. 하지만, 집권당의 부패 스캔들에다가 서민의 어려움을 가중시킨 긴축 조치와 빈부 격차, 아직 21%나 되는 높은 실업률 등에 불만을 품은 유권자들은 이번 총선에서 신생 정당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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