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배두헌 기자] “매일 아침마다 새로운 디자인의 구두나 옷을 ‘인쇄해’ 신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상상해 보세요. 여러분들이 여행갈 때 짐가방이 필요없다고 상상해보세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이 디지털 파일로 축소되어 언제 어디서나 그것을 만들 수 있게 될 겁니다.”
3D 프린팅 분야의 선구자이자 ‘디지털 조각가’라 불리는 얀네 키타넨(Janne Kyttanenㆍ41)은 강연 내내 ‘미래의 모습’을 상상해보라고 주문했다.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들의 ‘디자인’이 이미지나 음악 파일처럼 인터넷으로 전송할 수 있게 된다면 물건과 우리와의 관계는 어떻게 달라질까.
그의 상상은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 키타넨은 이미 세계 최초로 조명, 신발, 조명기구, 가구 등 대형 제품들을 3D 프린트로 생산해냈고, 패션 디자이너와 협업을 통해 3D 프린팅만으로 제작한 드레스 등을 선보인 바 있다.
핀란드에서 태어나 스페인과 네덜란드에서 디자인 공부를 하고, 지금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는 그는 스스로를 ‘글로벌 시티즌’이라고 규정했다. 어려서부터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세상을 포괄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키웠고 여러 가지를 접목시키는 능력을 갖추게 됐다는 설명이다.
키타넨은 3D 특수효과 전문가인 형의 작품을 어깨너머로 보고 배우면서 “작품이란 엔지니어링이라기보다 각종 다른 테크닉들을 결합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는 디자인스쿨 재학시절 마지막 미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제 친구들은 의자나 컵, 테이블 등을 디자인했죠. 그런데 저는 우리 생태계를 걱정하며 ‘쓰레기들이 어떻게 최종적으로 바다로 버려지는지, 재활용이 가능할지’ 등을 디자인하고 싶었어요.”
이런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방법이 디자인스쿨에 존재할리 없었다. 스스로 첫 발을 내딛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나갈 수 밖에 없었다. 키타넨은 “스스로 내 아이디어를 믿고 확신을 갖는 것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그의 3D 프린팅 재료는 세라믹, 티타늄, 지르코늄 등 300~400여개에 달한다. 키타넨은 3D 프린팅이 비행기 날개 제작에 쓰이고, 자동차나 의료 산업 등에 혁신을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는 “과거엔 내가 제품 디자이너인가, 패션 디자이너인가, 조명 디자이너인가 하는 것들이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내 자신을 어떤 특정 범주 속에 구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양한 분야와 협업을 통해 산업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자유로운 영혼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강연 막바지에 이르러 그는 ‘럭셔리’(명품)가 무엇을 뜻하는지 역설했다. 키타넨에게 ‘럭셔리’란 단지 값비싼 제품이나 명품을 뜻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개성있게)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저는 미래가 너무 기대됩니다. 단 몇 년 내로 정말 모든 게 달라질 것입니다.” 매일 새로운 디자인의 물건을 직접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세상이 그가 그리는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