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또 다시 조문하신 이유가 있나요?” 지난 24일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 사흘째 고(故)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빈소에 모습을 드러내자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손 전 고문은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당연한 걸 왜 묻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손 전 고문은 지난해 7ㆍ30 재ㆍ보궐선거 패배 직후 정계 은퇴를 선언한 뒤, 전남 강진에 칩거하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랬던 손 고문이 야권 인사로는 유일하게 지난 22일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빈소에 ‘출근도장’을 찍고 있다.이 뿐만이 아니다. 접객실에서 방문객들과 인사를 나누고, 조문을 마치고 돌아가는 정치권 인사들을 문 앞까지 나가 배웅하는 모습도 수시로 포착됐다.
그가 이처럼 정성을 쏟고 있는 이유는 YS와 특별한 인연 때문이다. 지난 1993년 서강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손 전 고문은 YS의 발탁으로 경기 광명 보궐선거에 출마해 국회에 입성했다. YS는 손 전 고문을 영입한 후에도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당시 초선인 손 전 고문에게 대변인 자리를 내주는가 하면, 문민정부 시절에는 그를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낙점했다. 부인할 수 없는 ‘YS키즈’다.
손 전 고문을 만난 조문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정계복귀설’을 거론하고 있으나 그 때마다 그는 ‘묵묵부답’ 또는 ‘미소’로 일관했다. 장례위원회 고문단에 이름을 올린 손 전 고문은 오는 26일 YS의 영결식까지 빈소를 지킬 것이라고 한다.
사흘 내내 YS 빈소에 머물며 조문객들을 살뜰히 챙기는 데는 ‘상도동계의 의리’도 빛났다. 상도동계의 막내이자 YS의 정치적 아들을 자처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자신이 주재하는 당 정례회의를 제외한 나머지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빈소에 머물렀다.
김 대표는 빈소를 지키는 게 힘들지 않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김 전 대통령을 모셨던 분들이 상주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상도동계 현역 정치인 중 가장 연장자인 서청원 최고위원도 김 대표와 함께 날마다 빈소를 찾았다.
아울러 상도동계 핵심인물로 꼽히는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고령(87세)으로 거동이 편치 않은 상태에서도 YS빈소에 하루도 빼놓지 않고 나왔다. 그는 YS가 서거한 당일 새벽 2시, 제일 먼저 장례식장으로 달려와 상황을 챙긴 인물이다.
37년간 YS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온 김기수 전 수행실장은 늘 그래왔던 것처럼 빈소에서도 YS 곁을 지켰다. 장례식장 곳곳을 쉴 새 없이 돌아다니며 조문객들을 살피던 김 전 실장은 기자들을 마주칠 때면 YS와의 추억을 털어놓곤 했다.
김 실장은 YS와의 첫 만남에 대해 “1979년인가, 최기선(전 인천시장) 선배하고 민족문제연구소를 찾아갔다”며 “입사시험까지 봤다”고 회상했다. 이어 “민주산악회 활동을 하면서 전국 산을 다 돌았지만 백두산을 못 갔다”며 “김 전 대통령과 꼭 백두산에 가기로 했는데….”라며 아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