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근 미확인명단 무차별 유포…가족 신상 정보까지 파헤쳐 발병병원 근무자 따돌림 예사…내가족 위협요인땐 혐오대상으로 공동체의식 붕괴 불신가중…일부선 정부 소통부족 지적도
‘낙인찍기, 신상털기, 따돌리기, 소문내기….’
메르스가 전통적 이웃관계가 무너진 한국사회의 민낯을 드러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때는 피를 나눈 사촌보다 가깝다던 이웃의 개념이 쇠퇴해 메르스와 같이 내 가족을 위협할 수 있는 요인이 발생하면 가차없이 혐오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시대가 돼 버렸다는 것이다.
감염이 의심되는 이웃을 조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뜬소문만으로 이웃에게 지나친 결벽증세를 보인다던가 미확인 정보를 유포해 무고한 이웃이 피해를 입게 하고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람과 그의 가족의 신상정보까지 파헤치는 등의 행위는 이웃간 도리 문제를 넘어 가족 이기주의가 팽배한 우리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관측이다.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병원에 근무한다는 이유만으로 이웃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한 일이 발생했다. 또 이들의 자녀들도 단순히 부모가 메르스 병원의 의료진이라는 이유만으로 친구들 옆에도 가지 못하고 손가락질 받는 사례도 생겼다.
심지어 학교에서 먼저 나서서 당분간 의료진 자녀를 등교시키지 말아달라 전화를 하는 케이스도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SNS 등을 통해 확진자ㆍ격리자에 대한 신상이 떠돌아 이들을 극단적으로 기피하고 이웃 공동체로부터 배제하고 있는 모습도 눈에 띈다.
메르스 감염자가 아닌데도 이웃으로부터 메르스 감염자가 우리 동네에 산다며 경찰 신고를 받는 소동도 있었다.
메르스 의심환자 이송을 맡는 소방관들도 이웃들의 기피 대상이 됐다. 서울 시내 한 아파트에선 ‘우리 아파트에 소방관이 살고 있으니 주민들의 주의 바란다’는 내용을 방송을 내보내기도 했다.
141번 환자는 최초 신고 때 보건소에서 구급차를 보내주겠다 했지만 주민들에게 알리기 싫어 이를 거부하고 두발로 택시를 찾아 병원을 찾아간 바 있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극단적 이기주의, 이해관계를 기준으로 편가르는 ‘한국식 우리주의’, 정보통신기술 발달에 따른 미검증 정보의 확산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타이타닉과 비슷하게 배가 가라앉으면 자기만 살겠다는 극단적 이기주의의 맥락”이라며 “고군분투하는 의료진 자녀에게 가해지는 왕따 현상을 보면 이보다 더 큰 재난이 왔을 때 한국사회의 공공성이 살아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감염 의심자는 ‘우리’의 범주를 벗어나기 때문에 그걸 포용하고 감내하는 마음의 여유가 우리 사회엔 부족하다”며 “반대로 메르스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이 ‘우리’가 되는 일종의 ‘우리주의’ 의식이 광범위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예전엔 못살아도 이웃간 서로 보듬고 살아가는 맛이 있었는데,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공동체의 풍속이 깨지고 적자생존의 의식이 자라났다”며 “이런 사회 변화가 20여년 가까이 진행되면서 공동체 의식이 무너지고 이번 메르스를 통해 그동안 감춰진 민낯이 드러난 것”이라고 했다.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SNS가 나오면서 우리끼리만의 네트워크가 강화되고 여과되지 않은 정보들로 공동체 의식이 파괴되는 부정적 효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라며 “아예 언론이 통제되던 시절이었다면 이웃간 불신이 초래되는 일은 덜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메르스로 인한 이웃 불신현상이 생존본능과 정보부족에 따라 불가피한 것이란 주장도 제기됐다.
김병관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웃사람을 무턱대로 불신하는게 아니고 병 자체에 대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최악의 상황을 가정할 수밖에 없다는 사람이 생기는 것”이라며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균을 갖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아이와 같이 놀게 하지 않겠다는 것은 합리적인 조치”라고 말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도 “감염시 10% 이상 사망하는 위험한 질병에 대해 이웃을 일시적으로 멀리하는걸 두고 이웃사촌 문화가 깨졌다고 보기엔 이르다”며 “정부가 과학적 근거를 갖고 국민과 세심하게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서경원ㆍ배두헌ㆍ박혜림ㆍ이세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