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한국 ‘환율관찰대상국’ 재지정
내수 타격·외인 자본 이탈 심화 우려
미 재무부 외환시장 구조개혁에 주목
미국 재무부가 한국을 다시 환율관찰 대상국으로 지정하면서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당선 이후 ‘트럼프 트레이드’로 원·달러 환율이 1410원 가까이 오르는 등 달러 강세 현상이 심화되는 가운데 환율관찰 대상국으로 지정되면서 우리 외환당국의 정책 운용에 상당한 제약을 받을 전망이다.
미국 재무부는 14일(현지시간) 의회에 보고한 ‘주요 교역 대상국의 거시경제 및 환율 정책’ 반기 보고서에서 중국, 일본, 한국, 싱가포르, 대만, 베트남, 독일 등 7개국을 환율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했다.
미국의 환율관찰국 지정 기준에 따르면 ▷대미 무역흑자 150억 달러 이상 ▷경상수지 흑자가 GDP 대비 3% 이상 ▷GDP의 2% 이상 규모로 12개월 중 8개월 이상 달러를 순매수하는 외환시장 개입 등 세 가지 요건을 기준으로 평가된다.
이번 보고서에서 문제가 된 것은 한국의 무역 흑자 관련 기준과, 경상수지 흑자 부분이다.
미 재무부에 따르면 2024년 6월 말 기준으로 한국의 연간 경상수지 흑자는 국내총생산(GDP)의 3.7%를 기록했다. 1년 전의 0.2%에서 급증했는데 주된 이유는 한국의 기술 관련 제품에 대한 대외 수요가 견조해 상품 흑자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는 전년도의 380억달러에서 500억달러로 늘었다.
다만, 외환시장 개입 요건은 오히려 국내총생산(GDP) 대비 -0.5%로 요건을 충족하지 않았다. 미 재무부는 이와 관련 “한국은 환율 개입을 환율 시장의 상태가 무질서한 예외적인 상황으로만 제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미국의 환율관찰국 재지정으로 우리나라의 통상과 외환정책이 상당부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번 관찰대상국 지정으로 우리 외환당국의 정책 운용은 제약을 받게 됐다. 관찰대상국 지정 시 외환당국의 구두개입 등이 미국의 감시 대상이 되기 때문에 당국의 환율 변동에 대한 대응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원·달러 변동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외환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면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증폭시킬 수 있다. 원·달러 환율은 트럼프 당선 직후 장중 1400원대를 넘어섰고, 지난 12일에는 결국 종가 기준 1403.5원으로 1400원대에 올랐다.
원·달러 환율이 급격하게 요동치자 외환당국은 전날 구두개입을 통해 원·달러 환율 상승에 제동을 걸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전날 “미국 신정부의 정책 기조 변화와 함께 주요국 통화정책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만큼, 24시간 합동점검 체계를 통해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하겠다”며 구두 개입에 나선 바 있다.
원화 가격이 계속 떨어지면 외국인 자본 유출이 더 심해지고 수입물가는 더 오르며 교역 조건이 악화할 수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0월 수입물가지수(원화 기준)는 전월 대비 2.2% 상승했다. 최근 6개월 새 가장 큰 상승폭이다. 수입물가도 통제가 어려워진다. 수입물가는 지난 8월 3.5%, 9월 2.6% 하락하며 최근 물가 안정에 기여했지만 석 달 만에 반등했다. 광산품(4.4%)과 석탄·석유제품(4.1%) 등 원자재와 중간재 크게 오른 탓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수입물가 상승에 중간재 값이 오르면서 내수 타격이 예상된다”며 “강달러 현상이 지속되면서 자본시장에서 외국인 이탈 현상 역시 두드러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자만, 우리 정부는 미 재무부가 우리나라의 외환시장 구조개혁에 주목한 점에 의미를 부여했다. 기획재정부는 이날 보도참고자료에서 “미 재무부는 평가기간 중 한국의 경상흑자가 상당 수준 증가했고, 기술 관련 상품에 대한 견조한 대외수요로 상품수지가 증가한데 따른 것으로 분석했다”며 “외환시장 개입과 관련해서는 우리 외환당국이 분기별로 공시하는 순거래 내역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올해부터 외환시장 개장시간 연장과 외국금융기관의 국내 외환시장 참여, 외환시장 인프라 개선 등 ‘외환시장 구조개선’이 시행되고 있음에 주목했다”고 전했다.
기재부는 “선진국 수준으로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고 해외투자자의 국내 자본·외환시장 참여를 촉진하는 개혁도 경제적 기회를 확대하고 생산성 증가에 도움이 될 것으로 재무부는 평가했다”며 “노동시장 참여 제고, 사회안전망 강화, 연금개혁 등 다른 부문의 구조개혁 성과도 내수진작을 통한 구조적 불균형 해소에 기여할 것으로 봤다”고 덧붙였다. 김용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