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 감독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
박정자·정진수 부활로 시작한 시즌2
연 감독 “현실과 닮아...자유의지 질문”
“○○○. 너는 3일 뒤 11월 4일 오후 5시에 죽는다. 그리고 지옥에 간다.”
‘천사의 고지’가 뜨자 삶은 지옥이 됐다. 뚜렷한 이유도 없었다. ‘지옥행’을 고지받은 사람이 넘쳐나는 일상은 공포로 뒤덮였다. 불안의 도시에선 광신도(화살촉)들이 날뛰고, 공권력은 혼란으로 가득찬 세상을 ‘통제’하기 위해 종교 단체(새진리회)와 결탁해 믿음을 조작한다. 이들에 맞서 ‘상식’을 구현하려 했던 또 다른 신념(소도)은 자기 안의 논리에 갇힌다. ‘신의 메시지’가 당도하자 온갖 악이 창궐하는 곳. 악은 또 다른 악을 낳고, 선이라 믿었던 것마저 다시 악이 되는 곳. 인간성을 상실한 인간이 활개를 치는 ‘현실 지옥’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드라마 ‘지옥’은 이 질문을 던진다.
“‘지옥’은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예요. 이 안엔 화살촉도 있고, 정부도 있고,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어요. 이들 중 하나를 택하라 한다면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요. 어느 것이 맞다고 말하긴 힘들지만, 생각은 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이 3년 만에 시즌2(10월 25일 공개)로 돌아왔다. ‘지옥’은 영화 ‘부산행’, 드라마 ‘방법’, ‘괴이’의 연상호 감독과 그의 대학 동기인 만화가 최규석 작가가 공동 작업한 동명 웹툰을 영상으로 가져온 작품이다. 연 감독에겐 영화 ‘부산행’ 이후 열 번째 상업 작품이다.
‘지옥’은 전형적인 ‘코즈믹 호러(cosmic horror·대적할 수 없는 우주적 존재를 마주했을 때 인간이 느끼는 공포)’물이다. 납득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영역과 존재 앞에서 압도당하고 무력해지는 인간의 절망을 그린다. 끊임없이 “왜”라고 묻게 되나, ‘의문의 덫’에 발목을 잡히는 순간 눈앞에 지옥도가 펼쳐진다.
연 감독이 이 작품을 처음 구상한 것은 2003년이었다. 그는 “갑작스러운 화재와 같은 막연한 불행에 대한 공포에 휩싸인 때가 있었다”며 “그 공포를 매일 생각하다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지옥’의 최초 탄생기다.
시즌2는 시간을 건너뛰어 4년 뒤의 ‘인간 세상’을 그린다. ‘지옥’은 ‘천사’로 불리는 괴물 형상의 초월적 존재가 등장해 난데없이 죽음을 ‘고지’하고, ‘지옥행’을 명명하며 벌어지는 세계를 그린다. 그곳에는 ‘천사의 고지’를 ‘신의 심판’으로 규정하는 세력(새진리회)과 이를 불가해한 ‘랜덤형(?)’ 재난으로 인식하는 집단(소도), 혼란스런 세상을 더 어지럽히는 광신도 집단(화살촉), 저마다 다른 입장을 가진 갑남을녀가 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각자의 삶도 달라진다.
연 감독은 “실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거대한 이데올로기가 미약해지고 군소 사상이 부딪히는 시대로 돌입했다”며 “혼돈에 가까울 정도로 다양해진 매체 역시 폭동의 형태가 아닐 뿐,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현실을 반영해 지옥을 썼다”고 말했다.
휴머니즘이 사라진 세계에선 화살촉 집단의 광기가 전염병처럼 번진다. 시즌1 당시 지옥행을 고지받았으나 부모의 희생으로 살아난 신생아의 선례는 화살촉의 교리가 됐다. 그들에겐 “‘정죄의 불’에 동참해 속죄해야 한다”는 집단 최면이 삶의 동력이 된다.
‘혼란의 시대’는 부활자의 등장으로 판이 달라진다. 드라마에선 8년 전 시연(지옥의 사자가 지옥행을 고지받은 사람을 불태워 죽이는 것)당한 박정자(김신록 분)와 새진리회 초대 의장 정진수(김성철 분)가 지옥에서 돌아오면서다. 여기에 사회의 존속을 위해 견고한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공권력의 상징인 이수경(문소리 분)이 등장해 대립과 갈등을 조장하며 세계를 설계한다. 이번 시즌이 보다 확장된 디스토피아인 이유다.
연 감독은 “사실 ‘지옥’의 세계는 우리 세계와 굉장히 닮아 있다”며 “시즌2에선 시즌1의 세계관을 가져오되 여기에 현실 세계의 화두를 담았다”고 했다. 연 감독이 자신과 가장 비슷한 인물로 꼽은 사람은 ‘진실’을 함구한 채 불치병에 걸린 딸을 돌보는 형사 진경훈(양익준 분)이다. “‘너무도 사랑하는 존재의 종말이 진실의 종말보다 더 중요할까’라는 상념이 이 사람 안에 있었을 것”이라며 “어느 상황에서나 민혜진(소도 변호사·김현주 분)과 정진수 같은 비범한 인물의 초인적 선택은 존재하겠지만, 나 같은 사람은 진경훈 같은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다시 돌아온 ‘지옥’은 시청자를 옥죄는 ‘현실 지옥’의 참담한 광경을 보여준다. 광란에 가까운 화살촉의 대부흥회,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는 액션신,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부활자들의 기묘한 분위기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불가사의한 재난 상황에서도 발현되는 인간의 자유 의지에 대해 시청자에게 끊임없이 질문한다.
“왜 태어났느냐, 왜 나한테 불행이 찾아왔느냐, 이런 질문에는 답을 낼 수 없어요. 다만 주어진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나에게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고민해야죠. 이런 지적인 질문을 어렵지 않게 엔터테인먼트로 풀어내고 계속 확장할 수 있게 만드는 작품이 ‘지옥’이지 않을까 싶어요.”
고승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