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비아파트 시장 정상화 방안 천명에도 시장은 회의적
집주인들 전세금 내주기 바빠
전세 찾지 않고 월세로 임대차 시장 개편
전세사기 색안경 사라질 때까지 침체 불가피
[헤럴드경제=서영상 기자·정주원 수습기자] “사람들이 여전히 빌라를 꺼립니다”
정부가 지난 8일 공급대책을 통해 비(非)아파트 시장 정상화에 사활을 걸었지만, 시장의 반응은 여전히 어둡다. 기자가 둘러본 빌라와 오피스텔 밀집 지역의 분위기는 여전히 전세사기의 ‘낙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비아파트 시장이 정상화될 때까지 신축 빌라와 오피스텔을 무제한으로 매입하겠다는 서울시의 주요 빌라 밀집 지역에서조차 과연 수익성이 있을 지 의심하는 분위기였다. 지난해 대규모 전세사기 피해를 입은 화곡동 일대 빌라 밀집 지역은 여전히 전세사기 후폭풍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화곡동 N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전세사기 피해 이후 빌라 매물이 대부분 경매로 넘어갔다. 그나마 있는 매물 중에서도 전세는 20%에 불과”라며 “빌라왕 사건 이후 강서구 부동산 임대차 시장은 사기라는 색안경이 쓰인 느낌”이라고 했다.
강서구는 지난해 서울에서 가장 많은 전세사기 피해가 발생한 곳이다. 화곡동은 그중에서도 대규모 전세사기범의 무대였다. 2022년 숨진 채 발견된 ‘빌라왕’ 김모씨도 화곡동에 빌라 80채를 갖고 있었다. 당시 빌라가 밀집된 지역에 집을 새로 구하는 젊은 청년들을 상대로 총 340억원 규모의 145건의 전세사기 피해가 발생했다. 무더기 피해에 현재 화곡동 일대 다세대주택·오피스텔의 90% 이상이 경매로 넘어간 상태다. 채 실장은 “경매시장 낙찰률도 떨어진다”며 “한 빌라는 감정가보다 턱없이 낮게 경매가 진행돼도 응찰자가 없을 만큼 차갑게 식은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전세 위주의 임대차 시장도 구조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전세 매물은 찾아보기 힘들고 매매나 월세가 대부분이었다. 화곡동 E공인 관계자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 요건이 공시가격 126%까지로 까다로워짐에 따라 역전세 우려가 커진 데다 전셋값이 낮아져 보증금을 제때 돌려주지 못하는 집주인이 속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세사기 피해를 입은 임차인에서 이제는 임대인, 즉 집주인으로 부담이 전가되고 있다. 이 관계자는 “갭차이로 인한 피해는 오로지 집주인 몫”이라며 “다주택자는 발생한 갭차이만큼 현금으로 메꿔야 하는 절박한 실정”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런 분위기는 비단 화곡동 뿐 아니다. 지난해 전세사기 집게 건수 전국 3위 금천구 또한 비슷한 모습이다. 금천구의 유모 공인중개사는 “금천구는 ‘신통기획 빌라’, ‘모아주택 모아타운’ 등 싼 빌라나 오피스텔이 많은데 대부분 투기 시장으로 변했다”며 “이제는 아무도 안사려 한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부동산원 빌라 매매가격지수는 지난해 11월부터 반등 기미 없이 계속 하락하고 있다.
정부의 무제한 매입에 대한 반응도 회의적이다. 류 대표는 “빌라를 짓는 목적은 수익 창출인데 수익이 안 나는 현 상황에서 누가 지으려고 할까”라며 “수익성을 생각 안하고 매물이 없다니까 단순하게 정부가 예산을 들여 싸게 사들여 세를 놓겠다는 데 시장이 얼마나 반응을 할 지 모르겠다”고 평했다. 이어 그는 “정책을 현실적으로 바꾸려면 전세기피현상에 의해 임대차시장이 전세에서 월세로 재편된 흐름에 맞는 월세 형태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짚었다.
전문가들은 급한 불을 끄기 위한 이번 정책에도 시장 상황은 변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서진형 광운대학교 부동산 법무학과 교수는 “LH에서 제시하는 매입 기준을 현재 빌라시장에서 맞추기가 쉽지 않고 보증금 반환 요건도 정부가 판단하기보다 보증을 서는 HUG에서 자체적으로 판단해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적절한 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신축 매입 뿐 아니라 기존 빌라나 오피스텔에 대해서도 확대 적용해야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빌라 시장은 전세사기가 국민 뇌리에서 사라질 때까지 침체 상황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