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손인규 기자] ‘12년째.’
소비자 요구에도 불구, 편의점에서 팔고 있는 상비약이 변하지 않은 기간이다. 안전상비의약품 약국 외 판매 제도가 시작된지 12년째. 국민 대다수는 품목 확대를 요구하고 있지만 약사들이 의약품 오남용 우려를 이유로 강하게 반대하면서다.
안전상비의약품 제도는 약국이 문 닫은 심야 시간에 약이 필요한 국민들을 위해 24시간 편의점에서 비상약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지난 2012년 도입됐다.
현재 편의점에서 구매 가능한 안전상비약은 11개 뿐이다. 원래는 해열진통제 5개, 감기약 2개, 소화제 4개, 파스 2개 등 4종, 13개 품목이 안전상비약으로 지정됐다. 그런데 그동안 타이레놀 2개 제품(80㎎, 160㎎)이 생산 중단되면서 11개 품목으로 줄었다.
직장인 A씨는 “얼마 전 밤에 갑자기 설사 증세가 있어서 가까운 편의점에 약을 사러 갔다”며 “하지만 해열제랑 소화제, 파스만 있어 당황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소비자공익네트워크가 안전상비의약품 소비자 인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0명 중 4명은 편의점에서 필요한 의약품을 구입하지 못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찾는 약이 편의점에 없어서’가 59.3%로 가장 높았다.
응답자의 62.1%는 현재 판매되는 품목 수가 부족해 확대해야 한다고 답했다. ‘어떤 의약품을 추가했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10명 중 7명꼴로 지사제에 대한 요구가 가장 높았다. 화상치료제, 소아용감기약, 소아용소화제, 제산제도 추가됐으면 하는 의약품으로 나타났다.
시민단체는 꾸준히 안전상비약 품목 확대를 요구해오고 있다. 안전상비약 접근권을 향상시키기 위해 발족한 안전상비약 시민네트워크는 “해외 주요국의 약국외 판매허용 의약품 수는 미국이 30만개 이상, 영국은 약 1500개, 일본은 1000여종에 이른다”며 “우리나라는 12년째 13개인데 생산 중단된 해열제 2종을 고려하면 사실상 11개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보건복지부의 안전상비약 품목 지정 심의위원회 구성을 촉구했다.
안전상비약 품목 확대는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논의됐다. 국민의힘 김예지·백종헌 의원은 안전상비약 제도를 방치하고 품목 확대를 지연시켜 온 보건복지부에 문제제기를 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측은 “안전상비약 품목 확대 논의 필요성에 공감한다”며 “의정갈등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안전상비약 대체 품목과 확대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약사단체(대한약사회)는 의약품 오남용 등의 이유로 안전상비약 품목 확대를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약사회 측은 현재도 편의점들이 안전상비약 판매 규정을 제대로 준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취급 규정을 완화하고 품목을 확대한다면 의약품 오남용 등의 우려가 있다는 입장이다.
이주열 남서울대학교 보건행정학과 교수(안전상비약 시민네트워크 자문위원)는 “안전상비의약품으로 지정된 품목들은 약물 오남용 문제가 거의 없는 제품들”이라며 “소비자들이 안전하게 의약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해 줄 방안을 고민하기 보다는 무조건 전문가만이 안전성을 보장한다는 논리는 소비자의 능력과 의사결정권을 도외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