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헤리티지 여행⑨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기원전 12~4세기 소아시아에서 빛나는 문명과 풍요를 일군 프리기아의 최대 실수는 경제가 좋아지는 동안 국력과 무기개발 등 국방력도 키웠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점이다.
잘 살아도 국방력이 없으면 침략당해 순식간에 거지꼴이 된다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칼을 앞세운 화술과 위협, 선무공작으로 원정의 동선을 늘려가던 알렉산드로스는 그러나 2차원의 면(面)을 장악하지 못하고, 1차원의 선(線)만 긋고 가다보니, 내실이 약했다.
그래서 벌인 일이 70개의 정복 도시를 자기 이름으로 개명한다. 마케도니아 군대가 비교적 일찍 자취를 감춘 뒤, 이중 60개는 원래 이름으로 환원시켰지만, 10여개는 아직 그 이름과 주민들이 쓰던 원래 이름을 함께 쓰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이집트 북부 지중해 해안도시 알렉산드리아, 튀르키예에 2곳이 있는 이스켄더룬(알렉산더 스펠링의 투르크어 발음)이다.
아프가니스탄에 좀 많은데, 옥수스의 알렉산드리아(아이하눔이라고도 부름), 아라코시아(주민들이 칸다하르로 부름), 아리아나(해라트로 부름), 알렉산드리아 코카시아(바그람 근교 힌두쿠시로 부름)가 있고, 타지키스탄의 알렉산드리아 에스카테, 투르크메니스탄의 알렉산드리아 마르기아나(메르프라 부름), 범인도지역의 알렉산드리아 부케팔리아(Bucephalia:알렉산드로스의 애마 이름인데 이곳 전투에서 죽음), 알렉산드리아 인더스(Indus, 파키스탄 사람들은 우치라고 부름) 등도 알렉 왕의 ‘영역표시’ 흔적이다.
알렉산드로스에 대한 서방의 미화가 2000여년간 이어진 가운데, 그리스와 미국, 멸망한 로마의 직계임을 주장하는 루마니아에는 그의 2300년전 원정과는 아무 상관없이 현대에 들어 알렉산드리아라는 소도시 이름을 지어놓기도 했다.
주지하다시피 알렉산드로스의 나라 마케도니아는 그리스의 변방(우리로 치면 거란 같은)이다.
그의 반칙성 선무공작형 영토확장을 마치 그리스-로마 시대 큰 업적인 양 찬양하는 서유럽 고대-중세 정치가들과 역사가들의 행태, 유목민이었던 범 게르만족이 흉노,몽골,켈트,삭손,바바리안,보헤미안 등에 계속 밀려 남-서진하다가 5세기에 로마를 손쉽게 손에 넣은 뒤엔 뜬금없이 자신들이 그리스-로마의 후예임을 주장하는 모습, 등은 한편의 코메디 같다.
이번 고르디온 취재를 통해, 프리기아의 영광을 만든 고르디우스와 미다스 부자(父子) 왕은 그런 코메디 같은 역사 조작의 희생양이고, 알렉산드로스는 지나치게 미화되었다는 심증을 굳히게 된다.
문득, 수만년 아메리카 선주민의 올맥, 아스테카, 마야, 잉카 문명의 역사를 무시한채 “신대륙”이라고 주장한 컬럼버스에 대한 서방의 미화 과정, 지나(Sino)내륙세력과 일제의 우리 역사 말살,비하,왜곡 과정이 떠오른다.
그럼에도 고르디온 사람들은 서방의 왜곡된 풍자가 전세계 어린이 동화책에 많이 나온 현실을 감안해, 박물관 입구를 어린이 친화적인 황금만화로, MZ 친화적인 알렉산드로스 트릭아트로 장식해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