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국내 최대 엔터테인먼트 기업 하이브가 타 기획사 소속 아티스트에 대한 ‘외모 평가’ 등 부적절한 모니터링 문건을 작성한 것에 대해 뒤늦게 공식 사과 입장을 밝혔다.
이재상 하이브 최고경영자(CEO)는 “국정감사에서 지적된 당사의 모니터링 문서에 대해 아티스트분들, 업계 관계자분들, 그리고 팬 여러분께 고개 숙여 사죄 말씀을 드린다”고 29일 하이브 공식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게재했다.
이 CEO는 “해당 문서는 업계 동향 및 이슈에 대한 다양한 반응과 여론을 사후적으로 취합하는 과정에서 작성된 것”이라며 “시장 및 아티스트 팬의 여론을 파악하기 위한 목적으로 일부 리더십(고위 임원)에만 한정해 공유됐으나 해당 문서의 내용이 매우 부적절했다”고 시인했다.
앞서 지난 2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민형배 의원은 해당 문건의 내용을 일부 공개, 파장을 일으켰다. 문건에는 미성년자가 포함된 다른 기획사 아이돌 가수 등에 대한 원색적인 외모 평가가 담겼다.
보고서에는 “멤버들이 한창 못생길 나이에 우루루 데뷔를 시켜놔서 누구도 아이돌의 이목구비 아님”, “외모나 섹스 어필에 관련되어 드러나는 경향이 두드러짐” , “좀 놀랍게도 아무도 예쁘지 않음”, “놀랄 만큼 못생겼음”, “SM의 미감이 달라짐” 등 미성년자 아이돌 그룹에 대한 평가가 담겼다. 민 의원은 당시 국정감사에서 “보고서엔 미성년자 아이돌에 대한 비인격적 인식과 태도가 담겨있어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하이브는 국정감사 이후 5일이 지나서야 CEO 명의의 사과문을 통해 “K-팝 아티스트를 향한 자극적이고 원색적인 표현이 그대로 담긴 점, 작성자 개인의 견해와 평가가 덧붙여진 점, 그 내용이 문서로 남게 된 점에 대해 회사를 대표해 모든 잘못을 인정하며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특히 전혀 사실이 아닌 역바이럴(음해성 여론 조작)에 대한 의혹까지 더해져 무고한 아티스트분들과 구성원들이 오해와 피해를 당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매우 죄송하고 참담한 심정”이라고 덧붙였다.
또 “문서에 거론돼 피해와 상처를 입게 된 외부 아티스트분들께 정중하게 공식적으로 사과드린다”며 “각 소속사에는 별도로 연락드려 직접 사과드리고 있다. 또한 회사로 인해 비난의 화살을 받는 하이브 뮤직 그룹의 모든 아티스트분들께도 진심을 다해 공식 사과를 전하고 있다”고 고개를 숙였다.
하이브의 내부 문건 논란에 산하 레이블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소속 그룹인 세븐틴의 승관은 29일 오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더는 상처를 주고받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며 자신의 생각을 적은 긴 글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그동안 벌어진 많은 일들을 지켜보며 ‘그래도 어떻게든 지나가겠지’라는 마음으로 내 마음을 삭이며 늘 그래왔던 것처럼 멤버들과 열심히 활동해 왔다”며 “하지만 이젠 상처받는 내 사람들, 나의 팬들과 나의 멤버들, 이 순간에도 열심히 활동하는 모든 동료를 위해 더는 침묵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멤버들을 포함해 K-팝이란 큰 산업 속에서 같이 열심히 일하고 있는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동료들과 친구들은, 진심으로 이 일을 순수하게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며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내가 선택한 것이고 사랑을 많이 받기에 감내해야 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상처를 받아가면서 죽기 직전까지 자신을 갉아먹으면서 어떻게든 견뎌야 하는 직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대들에게 쉽게 오르내리면서 판단 당할 만큼 그렇게 무난하고 완만하게 활동해온 사람들이 아니다”라며 “충분히 아파보고 무너지며 또 어떻게든 이겨내면서 무대 위에서 팬들에게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악착같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아이돌을 만만하게 생각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뿐만 아니라 승관은 “우리들의 서사에 쉽게 낄 자격이 없다. 비단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아티스트들에게도, 우리는 당신들의 아이템이 아니다. 맘대로 쓰고 누린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책임지지 못할 상처는 그만 주었으면 한다. 내 간절한 바람”이라며 “더는 나와 우리 멤버들, 지금도 열심히 일하는 모든 동료, 우리를 위해 진심을 다한 스태프들과 우리 팬들이 상처받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고 덧붙였다.
승관은 이 글을 통해 비판의 대상을 특정하진 않았으나 업계와 팬덤 사이에선 하이브의 내부 문건 논란 이후 나온 발언이라는 점을 염두, 모회사를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업계에 적잖은 파장을 몰고 온 이번 하이브의 내부 모니터링 문건 사건으로 이 CEO는 “해당 문서를 공유받은 리더십의 문제 인식이 부족했음을 인정하고, CEO로서 해당 모니터링 문서 작성을 즉시 중단시켰다”며 “회사의 대표로서 통렬한 반성 그리고 자성과 성찰을 통해 과거 잘못된 부분은 철저히 개선하고, 모든 K팝 아티스트의 권익과 팬 여러분에 대한 존중을 최우선으로 하여 K팝 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