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상의, 전 세계 보조금 정책 1만건 분석해보니

2015년 584억달러 → 2024년 9월 5060억달러

직접 자금 지원 ‘재정보조금’ 코로나19 이후 6배↑

특히 반도체, 바이오 등 첨단산업 분야 지원 급증

한국은 간접 금융지원 방식의 지원이 대부분 차지

다들 자국 산업 키우려고 보조금 10배 키웠는데…한국은 아직도 ‘쥐꼬리 지원’
[챗GPT를 이용해 제작함]

[헤럴드경제=김은희 기자] 글로벌 첨단산업 주도권 경쟁과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자국 제조업을 지원하기 위한 세계 각국의 보조금 정책이 최근 10년간 약 10배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전 세계가 보조금 경쟁 시대에 돌입한 것이다.

특히 반도체, 바이오 등 첨단산업 분야의 재정보조금이 급증한 것으로 파악됐다. 우리나라도 직접보조금 지급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29일 대한상공회의소가 스위스의 민간 무역정책 연구기관인 GTA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세계 각국이 발표한 제조업 보조금은 2015년 584억달러에서 2023년 5502억달러, 2024년 9월 기준 5060억달러로 10배 수준까지 늘었다.

보조금 정책은 특히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가 확산한 2020년을 기점으로 급증했다. 코로나19 이전 5년간(2015~2019년) 5142억달러에서 이후 5년간(2020~2024년 9월) 1조9728억 달러로 3.8배 증가했다.

다들 자국 산업 키우려고 보조금 10배 키웠는데…한국은 아직도 ‘쥐꼬리 지원’
10년간 전세계 제조업 보조금 정책 수 및 규모 추이 [대한상공회의소 제공]

유형별로 보면 지난 10년간 제조업 보조금으로는 정부대출이 6365억달러(25.6%)로 가장 많았다. 기업에 직접 자금을 지원하는 재정보조금이 5862억달러(23.6%)로 뒤를 이었으며 ▷수출기업에 대한 무역보증과 대출인 무역금융 2377억달러(9.6%) ▷구제금융·정부출자 등 자본투입 1912억달러(7.7%) ▷대출보증 1074억달러(4.3%) 순이었다.

이중 재정보조금은 코로나19 이후 눈에 띄게 늘었다. 2020~2024년 9월 기준 재정보조금은 4995억달러(25.3%)로 코로나19 이전 5년에 비해 약 6배 증가했으며 증가액 비중이 가장 컸다. 상위 5개 규모 보조금 유형 중 재정보조금을 제외한 정부대출, 무역금융 등은 모두 비중이 감소했다.

실제 주요국은 재정보조금을 크게 늘리는 추세다. 미국의 재정보조금은 코로나19 이전인 2015~2019년 28억달러 수준에 불과했으나 코로나19 이후인 2020~2024년 1048억달러로 37배 증가했다. 2022년 발표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과학법(CHIPS)의 영향이 컸다.

유럽연합(EU)의 경우 코로나19 전후 5년의 재정보조금 규모가 168억달러에서 828억달러로 늘었다. 코로나19 전에는 재정보조금 규모가 적었던 일본(4억→665억달러)과 독일(5억→584억달러), 프랑스(0억→349억달러) 등도 코로나19 이후 재정보조금 규모가 큰 폭으로 증가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간접 금융지원 방식의 지원이 제조업 보조금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우리나라의 지난 10년간 상위 5개 제조업 보조금 유형을 보면 무역금융이 775억달러로 1위를 기록했다. 정부대출이 556억달러로 그 뒤를 이었으며 ▷대출보증 131억달러 ▷수출지원 98억달러 ▷현물지원 77억달러 순이었다.

다들 자국 산업 키우려고 보조금 10배 키웠는데…한국은 아직도 ‘쥐꼬리 지원’
각국의 주요 반도체 산업 보조금 현황 [대한상공회의소 제공]

수혜산업별로 보면 지난 10년간 재정보조금 정책은 반도체, 바이오, 이차전지, 디스플레이 등 첨단산업 분야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반도체 분야는 재정보조금이 2015~2019년 197억달러에서 2020~2024년 9월 1332억달러로 6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국가별로 보면 미국이 399억달러로 가장 규모가 컸으며 일본(308억달러), 중국(171억달러), EU(133억달러), 인도(106억달러) 등이 뒤를 이었다.

미국은 반도체과학법을 통해 반도체 기업 유치에 힘을 쏟고 있고 중국은 2014년부터 반도체 산업 지원을 위한 투자기금을 조성·지원해 왔으며 최근 3차 기금조성 계획을 발표했다. 일본, EU, 인도 등 주요국도 반도체 생산공장 유치를 위해 다양한 보조금 정책을 펼치고 있다.

바이오 분야 재정보조금은 같은 기간 73억달러에서 944억달러로 13배가량 급증했다. 이는 코로나19 백신 개발 등 지원을 위해 중국(174억달러), 프랑스(142억달러), 독일(120억달러) 등 여러 국가가 집중적으로 보조금 정책을 시행한 결과로 풀이된다.

이차전지 분야는 2020~2024년 9월 총 523억달러의 보조금이 책정됐으며 미국(179억달러), EU(85억달러) 등이 주를 이뤘다. 디스플레이 분야도 2020년 이후 총 397억달러의 재정보조금이 발표됐는데 중국이 159억달러로 가장 많았고 일본이 74억달러, EU가 68억달러를 각각 발표했다.

다들 자국 산업 키우려고 보조금 10배 키웠는데…한국은 아직도 ‘쥐꼬리 지원’
산업별 재정보조금 추이 [대한상공회의소 제공]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산업정책의 귀환’ 보고서를 통해 세계적인 보조금 흐름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충격에 대응하기 위해 각국 정부가 보조금을 늘리며 시작됐으며 미·중 갈등,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공급망과 경제안보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경쟁이 심화됐다고 분석했다.

김현수 대한상의 경제정책팀장은 “우리나라도 첨단산업에 대한 대출, 인프라 구축 등 다양한 지원 정책을 실행하고 있지만 기업에 직접 보조금을 지급해 과감한 투자에 나서게 하는 글로벌 흐름에 맞출 필요가 있다”며 “최근 출범한 국회 민생협의체에 반도체와 같은 첨단산업 법안이 의제로 오른 만큼 국가전략 차원에서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지원 정책이 도출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