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빌보드 ‘핫 100’ 8위·英 오피셜 4위
K-팝 女 최고 성적으로 새 역사 달성 중
영미 팝 시장·K-컬처 소구 세대 공략
뻔뻔하고 쾌활한 곡·쉬운 구조로 인기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채영이가 좋아하는 랜덤 게임’은 세계인의 게임이 됐다. 미국 뉴욕과 독일의 클럽부터 인도네시아의 쇼핑몰까지 ‘아파트’ 떼창 시대다. 이 곡의 인기를 증명하듯 ‘아파트’는 현재 세계 차트에서 K-팝 최초, 최고 기록들을 만들어가고 있다.
29일 미국 빌보드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미리 공개한 차트에 따르면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듀엣곡 ‘아파트(APT.)’가 메인 싱글 차트인 ‘핫 100’의 8위로 데뷔했다. K-팝 여성 아티스트 최고 순위다. 종전 최고 기록은 로제가 속한 블랙핑크의 ‘아이스크림’(13위)이었다.
두 사람이 부른 이 곡은 빌보드의 또 다른 주요 차트인 ‘글로벌 200(미국 포함)’과 ‘빌보드 글로벌(미국 제외)’에서는 1위에 올랐다. ‘아파트’가 두 차트를 석권하며 세계적인 팝스타 브루노 마스는 이들 차트에서 1, 2위를 동시에 석권한 최초의 아티스트가 됐다. 2위에 오른 곡은 하반기 최고의 인기곡 중 하나로 꼽히고 있는 브루노 마스와 레이디 가가가 함께 한 ‘다이 위드 어 스마일(Die with a smile)’이다.
로제는 ‘핫 100’ 8위에 오르자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르겠다”며 “내 꿈이 현실이 됐다. 블링크를 비롯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이 성취는) 브루노마스를 위한 것이다”라는 소감을 남겼다. 로제의 인사에 브루노 마스도 “너무 행복하다”고 답을 달았다.
로제의 ‘아파트’는 앞서 지난 25일(현지 시간) 공개된 영국 오피셜 최신 차트에선 4위로 안착했다. 로제는 이 차트에서도 K-팝 여성 솔로 가수 사상 최고 순위를 경신했다. 역대 최고 순위를 기록한 곡은 한국인 DJ 겸 음악 프로듀서 페기 구가 ‘(잇 고스 라이크) 나나나’(IT GOES LIKE) NANANA)가 세운 5위였다.
로제가 지난 18일 세계적인 팝스타 브루노 마스와 함께 선보인 ‘아파트’는 공개와 동시에 전 세계에서 빠르게 ‘대박’ 조짐을 보였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전 세계에서 강력한 파급력과 브랜드 파워를 가진 지닌 두 사람이 만난 곡이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성취가 예견됐다”고 했다.
‘아파트’의 음원은 일찌감치 전 세계를 석권했다. 세계 3대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인 스포티파이 글로벌 차트, 애플 차트, 유튜브 차트에서 모두 1위에 올랐다. 이 세 차트를 모두 석권한 팝스타는 로제가 처음이다. 게다가 이 곡은 중국 최대 점유율의 음원 사이트 QQ뮤직에서도 1위에 올랐다. 스포티파이 미국 톱 송 차트에서도 1위에 안착, K-팝 최초이자 최고 순위를 기록했다.
미국 빌보드를 비롯해 각종 음원 차트에서 거둔 이 성적들은 K-팝이 강력한 팬덤을 등에 업고 다운로드와 실물 음반에서만 강세를 보인다는 편견을 완전히 뒤집은 사례로 평가된다. 스트리밍은 대중적 인기의 지표이기 때문이다.
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는 이 곡을 “아주 잘 만든 영리한 곡”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그는 “우리에게 익숙한 응원가 느낌의 곡으로 한국인에겐 워낙 ‘아파트 게임’이 친숙하나 해외에선 아파트의 의미는 모르나 재미있는 발음과 중독성이 강해 현재의 인기를 이끌게 됐다”며 “‘아파트 아파트∼’로 시작하는 도입부가 챈트(Chant·하나 또는 두 개의 음조로 특정 단어를 반복하는 노래)처럼 반복해 강력한 중독성을 안긴다”고 말했다.
로제가 직접 참여한 ‘아파트’는 한국에서 널리 알려진 ‘아파트 게임’에서 착안한 곡이다. 로제는 “‘아파트 게임’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게임으로, 간단하면서 재미있고 분위기를 띄우는 데 최적이다. 어느 날 밤 스튜디오에서 함께 작업하던 스태프들에게 게임 방법을 알려 주고 다같이 즐기는 모습을 보며 곡 작업을 시작했고, 브루노 마스가 합류해 이 곡이 완성됐다”고 설명했다.
‘우연히’ 태어났다지만, 사실 ‘아파트’는 철저하게 전략적으로 기획된 곡이다. 이 노래에는 지금의 팝 음악과 K-컬처를 소구하는 세대의 트렌드가 모두 담겨있다. 쉽고 간결한 멜로디, 따라하기에 적합한 중독성 강한 반복 구호 등이 그렇다.
특히 ‘아파트’는 현재 미국에서 ‘MZ(밀레니얼+Z세대)들의 YMCA’로 불리며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는 채플 론의 ‘핫 투 고’와 구조가 닮았다는 게 전문가의 평가다. 김도헌 평론가는 “레크레이션 같은 ‘핫 투 고’처럼 ‘아파트’ 역시 함께 따라 부르며 놀 수 있는 콘셉트라는 공통점이 있다”며 “진지하고 통속적인 컨트리 음악이 대세이나 젊은 세대 사이에선 다소 생뚱맞으면서 쾌활하고 어떻게 보면 뻔뻔하기까지 한, 재밌고 신선한 아이디어의 음악을 찾고 있었고 그 지점을 공략한 것이 인기 요인”이라고 봤다.
쉽고 간결한 이 곡을 출중한 역량의 두 아티스트가 불렀다는 ‘의외성’ 역시 ‘아파트’의 흥행 요인이다. 특히 로제는 그간 세계 무대에서 블랙핑크가 보여준 당당한 자신감, 고급스러운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지점을 공략했다. 팬덤 블링크만이 알 수 있을 만한 로제의 본모습과 평소 성격이 노래와 뮤직비디오에서 묻어나자 반응은 더 폭발적이다.
정민재 평론가는 “앞서 솔로로 데뷔한 제니와 리사가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다소 힘이 들어간 곡을 들고 나온 반면, 로제는 힘을 빼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곡을 냈다”며 “이것이 도리어 재밌는 선택이자 용기로 작용했다”고 봤다. 여기에 ‘레트로 음악’의 강자인 브루노 마스가 평소 들려준 감미롭고 로맨틱한 노래를 벗어난 점도 그의 팬들에게도 환기가 되고 있다. 전문가들이 이 둘의 만남을 ‘윈윈’으로 보는 이유다.
김도헌 평론가는 “뻔뻔하고 쾌활한 분위기와 멜로디를 담은 새로운 팝 음악에 대한 갈망, 한국의 문화코드를 담은 신선한 아이디어가 호기심을 자극하는 곡”이라며 “이를 익숙한 노래 구조로 풀어내 팝 시장의 수요에 기민하게 대응한 최고의 성취”라고 평가했다.
‘아파트’의 인기는 전 세계에서 확인되고 있다. 뮤직비디오는 공개 24시간 만에 2500만 뷰, 5일 만에 1억뷰를 돌파하더니, 공개 10일차인 현재 1억 8000만뷰를 넘겼다. 국내 인기 급상승 동영상과 인기 급상승 음악 1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대한민국 트렌딩 1위, 미국 트렌딩 1위에 모두 올랐다. K-술게임의 흔적이 틱톡, 유튜브 쇼츠를 지배하고, 신축 ‘아파트’의 인기에 구축 ‘아파트’를 부른 가수 윤수일까지 소환돼 회자되며 “재건축에 성공했다”는 밈까지 돌 정도다.
노래의 화제성이 높아지자 반대 급부로 억지스러운 논란도 따라온다. 일본에선 로제의 ‘아파트’가 현지 싱어송라이터 사와이 미투가 부른 ‘미안해, 착한 아이로 있을 수 없어’와의 유사성 의혹이 제기됐다. 하지만 이 곡은 브루노 마스와 로제를 비롯해 총 11명의 작가진이 참여했고, 1981년 토니 베이즐이 발표한 ‘헤이 미키’를 인스폴레이션(기존에 존재하는 곡을 토대로 새로운 곡을 만드는 것)한 곡이라 표절로 보긴 어렵다는 게 전반적인 시각이다.
난데없이 ‘금지곡’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태국에선 같은 그룹의 리사를 로제가 이겼다며 난데없이 ‘보이콧(거부)’ 운동까지 일었다. 말레이시아에선 이 곡의 일부 내용이 “서구의 부적절한 행동을 조장한다”며 “아파트가 유혹의 장소로 사용, 이는 동양 문화의 가치관과 상하는 행동을 정상화한 것”이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전 세계 곳곳의 반응은 ‘아파트’의 엄청난 인기에 대한 반작용이자 방증이다. 정민재 평론가는 “현재 ‘아파트’의 상황은 실질적 감상의 히트곡으로 싸이의 ‘강남스타일’ 이후 역대 최대, 최고 수준의 인기 K-팝이 등장한 것”이라며 “향후 추이를 지켜봐야겠지만, 이러한 흐름이라면 ‘올해의 노래’에도 오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