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한달 만에 리더십에 상처입은 이시바

대외정책 기조 유지되도 집중도 저하 우려

한일 고위급 “지속적인 교류 활성화 노력”

정치적 혼란기 접어든 日…한일 관계 ‘현상유지’ 전망
23일 일본 가시와시에서 열린 총선 캠페인에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일본 집권 여당이 중의원(하원) 총선거에서 단독 과반 확보에 실패하면서 정치적 혼란기에 접어들었다. 정상 간 리더십으로 이끌었던 한일 관계는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의 리더십에 타격을 입은 만큼 향후 과감한 발전을 이루기보다는 현상 유지에 들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29일 나온다.

465석의 중의원을 뽑은 이번 총선에서 이시바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은 191석, 연립 여당 공명당은 24석을 얻어 과반인 233석에 미치지 못하는 215석을 확보했다. 자민당·공명당이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놓친 것은 옛 민주당에 정권을 넘겨준 2009년 이후 15년 만에 처음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새로 취임한 역대 총리 중 최단기간에 중의원 조기 해산과 총선을 결정한 이시바 총리의 리더십은 취임 한 달여 만에 상처를 입게 됐다. 이론상으로는 정권 교체도 가능할 수 있는 상황이다. 당장 이시바 총리에 대한 신임 문제가 대두되고 있고, 집권 여당은 야당과의 협력 구도를 고심하고 있다.

일본 정계가 혼란의 시기에 접어들면서 한일 관계에 대한 관심도가 이전보다 현저히 약화될 전망이다. 윤석열 대통령 집권 후 한일 관계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전 일본 총리와의 정상 간 리더십으로 이끈 측면이 크다. 다른 총리 후보자들에 비해 역사 인식이 온건하다는 평가를 받은 이시바 총리의 리더십 약화로 외교, 특히 한일 관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기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일 관계는 후속 조치 등 양자 현안이 산적하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현장인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당시 일본 정부가 약속한 추도식 개최도 불분명한 상황이다. 한국 정부로서는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앞두고 양국 관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 수 있는 시기에 일본 측의 적극적인 자세를 이끌어야 하는 것도 부담이다.

윤석정 국립외교원 교수는 “이번 중의원 선거 결과는 일본 정국이 어디로 갈지 가늠이 잡히지 않는 상황”이라며 “내년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에 일본 측의 과감한 행동을 바라는 우리 정부의 입장과 달리 일본측은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어려울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일본 여야가 모두 한일 관계 개선 기조를 평가하고 있기 때문에 방향성은 유지될 것이라고 봤다.

윤 교수는 “여당인 자민당이나 야당인 입헌민주당이나 국민민주당 모두 비중은 달라도 대외정책상으로 방향성은 비슷하기 때문에 기조는 유지될 것”이라면서도 “아베 신조 전 총리와 같이 강력한 지도자가 있어야 한국과도 과감한 협의가 가능한데, 무언가 확고하게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은 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전날 일본 총선 직후 한일 간 첫 고위급 교류가 이뤄졌다. 한일중 고위급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 도쿄를 방문한 정병원 외교부 차관보는 전날 후나코시 다케히로(船越健裕) 일본 외무성 외무심의관과 만났다.

양측은 최근 한일 양국 간 활발한 교류·협력을 환영하고, 향후 지속적인 교류 활성화를 위해 외교당국 차원에서도 계속 노력해 나가자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또한 내년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이 양국 관계를 한 단계 더 도약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되도록 계속해서 착실히 준비해 나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