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만에 발매한 정규 20집 ‘20’
새로운 창법, 실험과 트렌드 사이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가왕은 여전했다. 늘 예상치 못한 음악과 찾아오는 ‘혁신가’였고, 지치지 않고 새로운 세계를 찾아 나서는 ‘탐험가’였으며,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 닦는 수행자였다. ‘하루의 쉼’도 사치라 여겼고, ‘이정도면 됐다’며 만족하는 법이 없어 그는 언제나 시도하고 부딪히는 ‘청춘’이었다.
“앞만 보고 달려왔던 길이, 어딜 찾아가고 있는지, 까마득히 멀어지는 날들, 행여 낯선 곳은 아닐지”(정규 20집 타이틀곡 ‘그래도 돼’) 싶더라도 스스로를 믿었다. 이 곡에 대해 조용필은 “나와는 연관이 없는 곡”이라며 ”패자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의 스무번째 정규앨범의 타이틀곡 ‘그래도 돼’는 “가왕이 걸어온 음악 여정과 그가 살아온 인생을 향한 노스탤지어를 느끼게 한다”(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평가가 나온다.
가왕 조용필(74)이 돌아왔다. 2013년 ‘헬로’(Hello) 이후 11년의 시간을 들여 내놓은 정규음반 ‘20’은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유일하게 ‘가왕’으로 불리는 보컬리스트 조용필의 다채로운 음색을 만날 수 있는 음반이다. 신보엔 2022~2023년에 앞서 발표한 ‘찰나’, ‘세렝게티처럼’, ‘필링 오브 유’(Feeling Of You), ‘라’를 포함해 신곡 3곡이 수록됐다.
이번 음반엔 조용필의 깊은 고심이 담겼다. 20집은 정규음반 치고는 곡수가 많지 않다. 절반에 달하는 곡이 미리 선공개된 음악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세 곡을 더하는 준비기간이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10월 초까지 녹음을 하며 마지막 한 곡을 넣으려 했지만, 곡의 성향이 기존 곡들과 달라 다음에 내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즉, 이 음반은 사운드, 분위기, 창법, 스타일 등 한 곡 한 곡의 어우러짐을 섬세하게 고민해 내놓은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타이틀곡은 ‘그래도 돼’다. 현재 이 곡은 3040 세대의 힐링송으로 자리하고 있다. 국내 최대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멜론에 따르면 ‘그래도 돼’를 가장 많이 듣는 세대는 30대(34%)였다. 40대가 26%, 50대가 28%, 20대가 16%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30~40대 청취 비율이 50%에 달한다. 가왕의 청년시절에 대한 기억도 없을 세대가 그의 음악을 가장 많이 듣고 있는 것이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타이틀곡 ‘그래도 돼’는 세계적인 팝록 트렌드와 대곡의 편성, 희망찬 메시지를 가진 젋은 노래”라며 “이기는 일보다 지는 일이 많은 시대를 위로하는 것은 물론 조용필이 걸어온 세월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 노래”라고 평했다. 임희윤 대중음악평론가도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최고의 위치에 선 ‘어른’이 들려주는 메시지에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받을 수 있는 노래”라고 했다.
음반은 전체적으로 가왕의 변신과 새로운 시도에 방점을 둔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2013년 ‘헬로’ 이후 꾸준히 해외 작가진과 협업, ‘젊은 시선’의 음악에 집중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임희윤 평론가는 “조용필은 그 시대마다 각각의 환경에 주어지는 최고의 사운드, 최고의 편곡, 최고의 멜로디와 화성 진행을 담아낸 좋은 팝을 목표로 만드는 아티스트”라며 “1980년대의 ‘단발머리’와 1990년대의 ‘꿈’, 2010년대의 ‘바운스’에 이르기까지 이 시대와 어우러지는 잘 만든 팝을 늘 선보여왔다. 이번 음반에 수록된 곡들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고 말했다.
‘최고의 팝’을 만들기 위해 조용필이 고심하며 도전하고 있는 부분은 ‘창법의 변화’다. 그는 스스로도 “집과 스튜디오만 오간다”고 할 정도로 음악에만 전념하며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다. “가수는 늘 연습하고 공부하고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 가왕의 생각이다. 조용필의 측근들에 따르면 그는 명실상부 ‘가왕’이라는 수식어를 달 수 있는 유일무이한 존재임에도 “자신의 목소리에 대한 아쉬움과 부족함을 고민”한다. ‘최고의 목소리’로 칭송받음에도 ‘하나의 곡’을 완성하기 위해 수도 없이 연습과 녹음을 반복하는 이유다.
조용필은 “무수히 연습하며 이 곡에 이 창법이 어울리는지 아닌지를 판단한다. 하다 못해 스마트폰으로도 녹음해 작은 스피커로 듣고 또 들어본 뒤에 본격적으로 창법을 결정한다”며 “이런 과정을 거쳐 실험하고 연구하는 것이 재밌다”고 했다.
담백하면서도 섬세한 ‘그래도 돼’부터 목소리를 변형해 부른 ‘라’, 보컬리스트 조용필의 음색으로 정면승부한 ‘왜’에 이르기까지 그는 이번 음반에서도 부단한 노력으로 지문 같은 목소리를 지우고 고쳐 새로운 색을 입혔다. 임희윤 평론가는 “기존 K-팝에서 들어보지 못한 허스키한 음색과 아이돌 보컬에선 나오진 않는 청량함이 공존하는 것이 조용필의 목소리”라며 “특히 ‘그래도 돼’의 경우 사운드와 메시지, 음표 하나하나의 섬세하고 디테일한 가창이 훌륭하다. 한국인이라면 누구가 알고 있는 인장 같은 목소리이나 조용필이라는 이름과 선입견을 지우고 들으면 더 회자될 곡”이라고 했다.
스스로 ‘마지막’일 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스무번째 음반엔 조용필의 음악 여정을 관통해온 도전과 욕망, 보컬리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로의 관록이 담겼다. 다만 전문가들은 “적당한 실험성과 트렌드 사이에서 접점을 찾은 음반”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음반으로 말하는 음반 아티스트인 가왕에게 이보다 더 높은 수준의 앨범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이러한 기대를 갖는 것이 가왕에 대한 당연한 예의”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번 음반의 가장 큰 의의는 70대의 조용필이 멈추지 않고 새로운 음악을 냈다는 데에서도 찾아진다.
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는 “조용필은 지난 반세기 동안 늘 다양한 음악을 해왔다”며 “트렌디한 사운드를 추구하는 것은 물론 일렉트로닉 장르로의 확장, 현재 대중음악계에서 중요하게 활동하는 한국 작사가들과의 고른 협업을 통해 젊은 세대와 기성 세대를 아우르는 곡들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