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 투자 ETF 76%→65%

해외 투자 ETF 54조원 폭풍 성장

“신상품도 美성장주 일색”...ETF 국내 비중 역대 최저

올 들어 국내 투자자의 ‘투자 이민’ 현상이 심상치 않다. 올 하반기 출시된 ETF(상장지수펀드) 신상품 역시 미국 테마로 쏠리면서 소비자뿐만 아니라 상품 공급자 사이에서도 ‘국장 외면’ 현상이 심화되는 모습이다. 이에 국내 시장에 투자하는 ETF의 비중이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의도 증권가에선 “한국 ETF 시장이 악순환 고리에 빠졌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24일 금융정보업체 코스콤에 따르면, 22일 기준 국내 상장된 전체 ETF 순자산(162조7009억원) 중 국내 자산을 기초로 한 ETF 비중은 65.3%(106조2723억원)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국내 ETF 비중은 2021년 말 74.2%, 2022년 말 73.4%, 2023년 말 76.3%로 75% 안팎을 유지해왔다. 그런데 올해는 10개월여 만에 비율이 10%포인트 넘게 줄면서 65%선으로 뚝 떨어졌다. 이 같은 추세가 유지될 경우 국내 ETF 비중은 50%대로 진입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반면, 해외 ETF는 폭풍 성장 중이다. 국내에 상장된 ETF 중 해외 자산을 기초로 한 ETF의 순자산은 54조6358억원으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올 2월 초 30조원을 넘어서더니 5월 말 40조원 돌파, 지난달 20일 50조원대로 첫 진입했다. 불과 한달사이에 4조원 가량이 몰린 것이다. 이에 해외 자산에 투자하는 ETF 비중은 연초 23.2%에서 33.6%로 불어난 상태다. 올 들어 해외 투자 ETF 순자산이 2배 가까이 커지는 동안 국내 투자 ETF는 단 16.4% 증가하는 데 그쳤다. 한국 ETF의 성장은 사실상 해외 ETF가 주도한 셈이다.

최근 해외 ETF로의 투자 쏠림이 심해진 이유는 국내 증시에서 실망한 투자자들이 늘어난 데 있다. 펀드평가사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연초 이후 해외 주식형 ETF의 평균 수익률은 21.75%에 달한 반면 국내 주식형 ETF는 마이너스(-3.39%)를 기록했다. 이에 같은 기간 ETF 순자금 유입 순위 10위권에는 국내 채권형 ETF(3개)를 제외하고 주식형 ETF가 하나도 없었다. 주로 S&P500·나스닥100·필라델피아반도체 등 미국 지수에 투자하는 상품들이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전문가들은 미국 반도체 등 특정 종목군에 과도하게 쏠린 국내 ETF 성장의 민낯이 드러났다고 입을 모은다. 국내 증시 수익률이 좋지 않으니 해외 상품만 쏟아지고, 국내 증시를 떠받치던 개인 수급도 해외 ETF를 통로 삼아 빠져나가면서 국내 ETF의 수익률은 더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밸류업’ 정책을 둘러싼 시장 실망감도 발목을 잡는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 증시는 반도체를 제외하고 주도주가 그리 뚜렷하지 않은 데다 최근 외국인 투자자들이 삼성전자를 과매도하면서 국내 수급 상황 역시 여의치 않다”면서 “밸류업 ETF 역시 모멘텀을 만들어주는 장치일 뿐 시장 펀더멘탈 개선까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유혜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