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진·손경민 볼드아키텍츠건축사사무소 소장 인터뷰
연면적 99㎡, 골목길 행인 고려 저층부 비워내
네 명 취향 담은 다세대주택 ‘서래마을 네 남매의 집’
모든 층에 마당 조성해…각 세대 복층구조로 지어
공공 프로젝트 집집마당도…입주자·기존 주민 융화
[영상=윤병찬PD]
[헤럴드경제=신혜원 기자] 길을 지나는 이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길 바라며 놔뒀던 건축사사무소 앞 벤치에선 능동 주민들의 정겨운 삶의 대화가 오고갔다. 동네 주민들의 상담소 겸 쉼터가 된 건축사사무소의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두 명의 건축주가 문을 두드렸다. 사무소에서 도보 1분 거리 건물을 매입했다는 이들의 리모델링 상담은 대지면적 66㎡(20평) 땅에 올라선 4층 협소주택 프로젝트의 시작이 됐다.
서울 광진구 능동 어린이대공원 인근 주택가 막다른 골목 초입에 위치한 4층짜리 협소주택은 볼드아키텍츠건축사사무소가 설계한 결과물이다. 최근 광진구 사무소에서 만난 신성진, 손경민 볼드아키텍츠건축사사무소 공동소장은 “건축물 연면적도 99㎡(30평) 정도 수준으로 작지만 신경이 굉장히 많이 쓰인 작업이었다”고 회상했다.
두 소장이 지난 2018년 함께 시작한 볼드아키텍츠건축사사무소 운영 초창기 맡게 된 능동 협소주택 프로젝트는 당초 지하 1층~지상 2층 건물을 리모델링하는 작업이었다. 그러나 인허가 과정에서 리모델링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4층 규모 상가주택으로 신축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공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써야 하는 도심 속 협소주택 특성상 주차공간은 제외했다. 건물 바로 앞에 공영주차장이 있는 게 건축주와 사무소에겐 다행인 지점이었다. 단조롭지 않은 지붕 모양은 정북 방향 일조권 사선제한(주거지역에서 건축물을 짓는 경우 주변 건물 일조권 확보를 위한 높이 규제)을 적용하면서도 최대한 공간 활용에 손해가 없도록 설계했다.
건물 앞 좁은 골목길을 지나는 행인에 대한 배려도 설계에 담았다. 손 소장은 “저희가 대지 경계까지 건축물을 채워 설계를 하게 되면 기존 이용자분들이 왔다갔다 하시기에 불편이 커지는 부분이 있었다”며 “저층부를 조금 비워내 주변 분들이 보행로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일상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건축’을 추구하는 볼드아키텍츠건축사사무소가 작업한 또다른 프로젝트로는 서울시 서초구 반포동 다세대주택 ‘서래마을 네 남매의 집’이 있다. 스튜디오포마건축사사무소와 협업해 완성한 이 프로젝트는 ‘네 명의 자식에게 주택을 똑같이 나눠주고 싶다’는 건축주의 요구를 바탕으로 설계가 진행됐다. 지하 1층~지상 4층으로 조성된 네남매의 집은 하나의 대지에 각자의 삶의 방식에 맞는 네 채의 집을 짓기 위한 섬세한 고민이 묻어났다.
신 소장은 “처음에 건축주 분과 미팅을 할 때 호기스럽게 ‘모든 분께 마당을 드리겠다, 면적은 똑같이 해드리겠다’고 말씀드리기도 했다”며 “네 분의 취향을 반영할 수 있도록 평면이나 구성을 상의해가며 네 채가 다 다른 형태를 가질 수 있도록 했고 모든 층에 마당을 조성했다”고 말했다.
네 남매를 위한 집은 각각 복층 구조로 지어졌고 하부층은 거실, 주방으로 상부층은 개인방으로 구성했다. 이러한 서래마을 네 남매의 집은 볼드아키텍츠건축사사무소에게는 첫 서울시 건축상 수상작이 됐다.
서울시를 비롯해 여러 지방자치단체의 공공건축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두 소장은 근린생활시설, 놀이터, 도서관, 주민센터 등 다양한 용도의 공공프로젝트도 진행해왔다.
볼드아키텍츠건축사사무소를 대표하는 공공프로젝트는 단연 ‘집집마당’이다. 지난 2021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신진건축사부문 우수상을 수상한 집집마당은 서울 중랑구 면목동 일대에 조성된 7개 테마의 서울시 공동체주택 마을 거주자들을 지원하는 허브 역할을 하는 근린생활시설이다. 공동체주택은 입주자들이 생활방식을 공유하고 함께 살아가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조성된 곳으로 집집마당에서 이들을 위한 교육 및 모임이 진행되고 있다.
3층 규모 집집마당은 면목동 일대 기존 주민들과 외부인의 융화에 초점을 맞춰 설계가 이뤄졌다. 1층은 건물 바로 앞 버스정류장과 어우러지는 개방형 구조를 택했고, 1층 내부에는 조그마한 마루를 설치해 사람들이 쉬다갈 수 있도록 했다. 1층에서 옥상까지 올라가는 계단도 외부에 노출되게끔 조성해 개방감을 높였다.
손 소장은 “공동체주택은 입주자 신청을 받고 테마에 맞는 지원자들이 입주를 하게 되는 것인데 사실상 외부인들이 들어오기 때문에 기존 주민과의 융화에 신경썼다”며 “건물을 보면 계단이 부각돼 있는데 건물을 오가는 사람들이 외부로 드러나게 돼 있고 거기서 하는 활동들이 쉽게 눈에 보였을 때, 사람들이 느끼는 공공건축물에 대한 벽이 사라지고 더 잘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2층을 연결하는 입체 가로 및 계단실은 개방성을 부여함과 동시에 여러 개의 길이 만나는 마을로 들어가는 일종의 관문 역할도 한다. 건물 입면 재료로는 빛이나 시간에 따라 회색빛, 핑크빛을 띠는 알루미늄 패널을 택했다. 벽돌 또는 화강석으로 조성된 주변 건물들과 어우러지면서도 계절에 맞게 함께 변해갈 수 있는 재료를 찾은 결과다.
신 소장은 “집집마당은 건물 그 자체보다 전체 도시단위에서의 건물을 본 것”이라며 “집집마당의 1층, 2층, 3층이 하나의 길에 있는 집이라고 보고 설계를 한 것이고 그게 적층돼 있는 형태”라고 부연했다.
집집마당 뿐 아니라 손 소장이 자신의 아이가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를 상상하며 작업한 ‘꿈을 담은 놀이터-서울 사근초’ 또한 이들에게 기억에 남는 공공프로젝트다. 손 소장은 “보통의 학교 놀이터는 디자인돼 있는 기성제품을 선택해 설치할 수밖에 없는데 아이들의 놀이공간을 바꿔보자라는 취지에서 시작된 프로젝트”라며 “당시 아이가 한참 밖에서 야외활동을 할 나이였기 때문에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작업했다”고 말했다.
사근초 놀이터는 그저 놀이터가 아니라 아이들의 등하굣길 통로이자 학부모들의 쉼터로 만들겠다는 아이디어가 반영됐다. 손 소장은 “이전에는 아이들이 놀이터 옆 나무 뒤편 구석길을 통해서 학교 본관으로 등교를 했었는데 놀이터를 가로질러서 갈 수 있도록 고민했다”며 “나무 그늘이라든지 아이들이 앉아있기만 해도 기분 좋은 공간을 제안하려 했고 아이 하교를 기다리는 학부모들이 잠시 앉아 쉴 수 있는 공간도 상상하며 만들었다”고 했다.
이처럼 적지 않은 공공프로젝트를 수행하며 공공건축가 활동도 병행하고 있는 이들은 공공건축이 발전하기 위해선 모든 사람이 주인이 될 수 있는 건축을 해야한다고 말한다. 신 소장은 “공공건축은 모든 사람이 주인인데 주인이 없는 건축을 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먼저 바뀌어야할 부분”이라며 “여러 공공 건축주를 만나보면 의지를 갖고 진행하시는 분들이 계실 때 결과가 항상 좋았다”고 했다. 이어 “제도적으로 필요한 부분이라면 건물이 지어지기 전에는 운영사가 결정되지 않는데 이러한 구조가 운영사와 설계사가 머리를 맞대서 건물을 조성할 수 있도록 개선돼야 한다”며 “지금은 공사가 끝난 후 사용자가 들어오면서 설계한 부분을 고친다든지 맞지 않는 프로그램이 운영된다든지 이런 부분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민간과 공공 등 작업 분야에 한계를 두지 않고 활동하고 있는 볼드아키텍츠건축사사무소는 각기 다른 스타일을 지닌 두 공동소장의 시너지를 통해 차이점이 발현될 수 있는 건축을 하는 것을 지향점으로 삼고 있다. 신 소장은 “작업 방식에 있어서 저희들의 차이점이 맞물려 좋은 건축물을 만드는 방향으로 가는 것에 관심있다”며 “시너지를 통해 이 땅에, 이 도시에 맞는 건축을 하는 게 우리에게 유효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손 소장은 “공공이든 민간이든 저희의 디자인이 건축주의 의도와 매치가 되고 디자인적인 발전과정을 일으켜나갈 때 계속해서 볼드다운 건축물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