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부터 5대 시중銀 MCG 제한
취약층 ‘발등의 불’...일부지점 혼란
“이제는 방공제 없이 LTV 80% 대출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디딤돌 대출 준비하시는 분들 서두르세요”(정책대출 관련 커뮤니티)
정부의 가계대출 관리 강화 기조가 취약계층을 위한 정책대출까지 손을 뻗고 있다. 저소득층과 청년들이 주로 이용하는 디딤돌 대출의 한도가 직접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취약계층의 주거안정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금융당국은 구입자금뿐 아니라 버팀목대출과 같은 전세대출까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적용 대상에 포함시키는 방안 등도 검토 중이다.
▶하루아침에 디딤돌대출 한도 수천만원 줄어=17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주요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은 모두 주택도시기금대출 중 디딤돌 대출 취급을 일부 제한한다. 신한·하나·우리·농협은행은 21일부터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자격심사 신청일 기준 디딤돌 대출의 한도를 일부 제한하며, KB국민은행은 지난 14일부터 이미 시행 중이다.
디딤돌 대출은 주택가액 5억원 이하 집을 대상으로 최대 2억5000만원(신혼가구 및 2자녀 이상 가구는 4억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정책금융 상품이다. 한도 내에서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의 최대 70%(생애최초구입은 80%)까지 대출이 가능하도록 설계돼 있다. 대출금리는 연 2.25~3.15%로 매우 저렴하며 고정금리 또는 5년단위의 변동금리 중 선택할 수 있어 서민의 주거안정을 돕는 대표적인 대출상품으로 꼽힌다.
하지만 국토교통부는 최근 시중은행에 이 디딤돌 대출 취급을 일부 제한하도록 협조를 요청했다. 이 대출을 실행할 때는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세입자에게 보장되는 최우선변제금에 해당하는 소액임차보증금인 이른바 ‘방 공제’(서울은 5500만원)를 차감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모기지신용보증(MCG) 가입을 통해 소액임차보증금액을 공제하지 않고 대출금을 내줬는데, 이를 제외해 대출 규모를 줄이도록 한 것이다.
아울러 생애최초주택 마련에 대해서는 기존에 적용하던 ‘LTV 80%’기준을 70%로 낮추도록 했다. 준공 전 신축아파트를 담보로 하는 후취담보 대출도 한시적으로 중단돼 완공 예정인 새 아파트에 입주하려고 하는 경우 디딤돌 대출을 받을 수 없게 된다.
하루아침에 한도를 수 천만원씩이나 깎이게 된 금융소비자들은 반발하고 있다. 30대 K씨는 “사후자격심사까지 적격된 상태에서 서류를 제출하고 오는 길인데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어쩔 뻔 했느냐”며 “한도가 수천만원이 깎였으면 이번에 이사를 아예 못했을 것”이라고 안도했다.
일부 은행지점에서는 혼돈도 감지됐다. 또 다른 금융소비자 G씨는 “오늘 오전에 통화했을 때만 해도 은행원이 공문같은거 금시초문이라더라”며 “신규주택 구입이 걸려있는 문제라 직접 가봐야겠다”고 말했다.
▶은행자체 주담대는 순감하지만...정책대출로 효과 가리는 ‘착시’있어=정부가 디딤돌 대출과 같은 정책대출까지 한도를 제한하고 나선 것은 연말까지 가계대출 증가 목표치를 맞추기 위한 의지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시중은행의 자체 가계대출은 순감하고 있지만, 디딤돌 대출과 같은 정책대출로 인해 그 효과가 보이지 않는 ‘착시현상’이 있다는 게 은행권의 설명이다.
실제 지난 15일 기준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731조5444억원으로 전 달 말(731조5444억원) 대비 5773억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한 달에 5조원씩 쑥쑥 증가하던 직전과 비교하면 증가세가 대폭 잦아든 것이다.
이는 주담대 잔액이 줄어든 데 기인한다. 같은 날 5대 시중은행의 주담대 잔액은 574조5494억원으로 전 달 말(574조5764억원)과 비교하면 270억원 줄었다.
한 시중은행의 고위 관계자는 “각종 조치를 취한 결과 모든 은행들의 주담대 잔액은 ‘순감’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하지만 디딤돌 대출 등 정책대출의 접수분이 워낙 많아 전체로 보면 그 효과가 상쇄되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해당 정책대출의 주 이용자가 취약계층이라는 점이다. 디딤돌 대출의 대상은 대출대상이 부부합산 연소득 6000만원 이하인 자·세대인데, 여기에는 주로 사회초년생·저소득층이 해당된다. 이들은 사소한 한도 변화에도 신규주택 구입에 지장이 생기는 등 민감도가 높은 경향을 보인다.
앞선 관계자는 “대상 고객의 소득기준이나 아파트 가격기준을 낮췄다기 보다는 방수공제를 적용하라고 협조요청이 들어왔기 때문에(엄청난 한도 변화가 있는 건 아니다)”면서도 “결국은 가계대출 잔액을 조금이라도 더 줄여보자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전세대출이나 정책대출에 DSR 적용 여부 등을 검토하기 위해 주요 은행들에게 수도권과 비수도권, 소득 수준별 DSR 산출을 정교화해달라고 요청해둔 상태다. 이는 전세·정책대출에 DSR 적용 검토를 위한 준비단계로써, DSR 적용을 수도권·비수도권, 소득수준 별로 차등화하는 방안을 비롯해 다각도 검토가 이뤄질 전망이다.
홍승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