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14일 기재위 국정감사에서 강조
“가계부채 증가 요인…금리인하 속도 신중히 결정할 것”
[헤럴드경제=홍태화 기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추가적 기준금리 인하에 대해 ‘신중론’을 펼쳤다. 내수 회복이 지연되면서 성장 불확실성이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금융여건 완화가 가계부채 증가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여전히 크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대체로 올해 내 추가적인 금리 인하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위원들의 시각도 대부분 비슷하다. 빨라야 내년 하반기는 돼야 2%대 기준금리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14일 한은에서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향후 통화정책은 물가, 성장, 금융안정 등 정책 변수들 간의 상충(trade-off)을 면밀히 점검하면서 앞으로의 금리인하 속도 등을 신중히 결정해 나갈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내수 회복이 지연되면서 당초 예상보다 (성장) 전망 경로의 불확실성이 커진 것으로 판단된다”면서도 “국내외 금융여건 완화가 가계부채 증가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에는 여전히 유의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내수 경기를 살리기 위해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이번달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인하(3.50%→3.25%)했지만, 집값과 가계부채 문제를 감안하면 연이은 금리 인하는 힘들 것이란 관측과 일견 부합하는 발언이다.
가계대출 비율 안정적 관리 노력 지속…1월까지 추가 인하 어렵다
한은도 이날 국정감사 업무현황 보고서에서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금리인하 이후 금융여건 완화 기대가 커진 가운데 주택시장 전개 양상 등에 따라 향후 가계대출 상황의 불확실성이 높은 만큼 정부 대책의 효과를 계속 점검해 나가면서 가계부채 비율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금통위원들의 시각도 비슷하다. 이 총재는 지난 11일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하를 결정한 직후 간담회에서 “저를 제외한 금통위원 여섯 분 가운데 다섯 분은 3개월 후에도 3.25%가 유지되는 것이 적절하다는 견해를 밝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9월 빅컷을 단행한)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0% 이상으로 뛰어 기준금리도 5%포인트 이상 올린 데 비해 우리나라는 물가 상승률이 최고 5% 정도에 그쳐 기준금리도 3%포인트만 올렸다”며 “따라서 우리도 미국처럼 0.5%포인트씩 떨어지겠구나, 돈 빌려도 문제없겠구나,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시각이 유지된다면 다음 달 28일 열리는 올해 마지막 금통위원회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금리 인하가 추가로 단행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실제로 가계부채 증가세는 억제됐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한은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예금은행의 가계대출(정책모기지론 포함) 잔액은 1135조7000억원으로 8월 말보다 5조7000억원 늘었다.
주택 구입 목적 개별 주택담보대출은 5대 은행에서 9월 한 달 동안 하루 평균 3451억원 새로 취급됐다. 8월(3596억원)보다 4%가량 적지만 추석 연휴 사흘을 빼면 평균 3934억원으로 8월에 이어 역대 최대 기록을 경신했다.
이자 부담으로 내수 위축되지만, 미국처럼 금리 내릴 순 없어
다만, 부진한 내수와 안정된 물가는 여전히 향후 금리 인하를 기대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은은 이날 “민간소비는 높은 물가수준, 가계부채 증가와 고금리 등으로 인한 원리금 상환 부담, 소득개선 지연과 여타 구조적 요인 등에 영향 받아 그간 더딘 회복세를 나타냈다”며 “가계부채가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원리금 상환 부담이 소비여력 개선을 제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물가에 대해선 “글로벌 물가상승률은 둔화 추세를 지속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미 연준 등 주요국이 금리인하 기조로 전환했다”며 “(우리나라)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유가 하락 등의 영향으로 당분간 2%를 밑돌겠으나, 연말 이후 2% 내외에서 안정된 흐름을 이어갈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대체로 우리나라의 추가 기준금리 인하는 일러야 내년 초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봤다. 그 보폭은 미국의 절반 수준으로 전망했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우리나라는 미국처럼 금리를 많이 올리지 않았기 때문에 올해 한번 내린 것이 최대한이고 추가적인 인하는 없을 것”이라며 “내년에 미국이 기준금리를 1%포인트 내리더라도 우리는 이러한 보폭을 따라가선 안되며 0.25%포인트 수준으로 한 번에서 두 번 정도 내리는 것이 합당하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창용 총재도 금통위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이 미국처럼 0.5% 포인트씩 기준금리를 내릴 상황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은 바 있다.
최근 3년간 주담대 2건 이상 받은 가계 32.5%
한편 최근 3년 동안 신규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10가구 중 3가구 이상이 2건 이상 대출을 받은 다주택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이 한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2021~2023년) 2건 이상 주담대를 받은 가계의 비율은 평균 32.5%로 집계됐다.
연도별로는 2021년 34.2%, 2022년 32.0%, 2023년 31.2% 등으로 매년 30%선을 넘었다. 전체 신규 주담대 취급액으로 실제 대출금액을 추정하면 2021년 335조6000억원, 2022년 324조2000억원, 2023년 332조원 등이다.
가계부채와 주담대는 부채 상위 20%인 부채 5분위가 전체 가계부채의 78.1%, 주담대의 93.7%를 차지하고 있었다.
차규근 의원은 “주담대 중에서도 2건 이상 주담대를 받은 다주택자들이 32%를 차지하고 있다”며 “고소득층이 실거주 목적이 아닌, 금융대출을 받아 부동산 투기 이득을 누리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런 금융 불평등이 자산 불평등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정부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