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해례본에는 세종대왕이 창제한 앙증맞게 생긴 “뀨” 라는 글자가 있다. 훈민정음에서는 기본 28자와 된소리 글자 6자인 ㄲ ㄸ ㅃ ㅉ ㅆ ㅎㅎ, 총 34자에 대한 설명에서 군뀨쾌업(君 快業)이 바로 “임금(君)과 왕세자( )가 함께 이룩한 즐거운(快) 과업(業)”이라고 했다.
여기서 왕세자 (왕자)라고 불리우는 “뀨”는 일찌감치 세자책봉돼 아버지 세종과 조정 최고의 학자들 지도를 받고 성장한 큰아들 이향으로 훗날 문종이다.
어려서부터 어른들도 기억하기 힘든 복잡한 궁중의 엄격한 예의규범과, 제도적인 의례를 배우며 자란 문종은, 아버지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1443년 창제 이후 공식적으로 세종을 도와 1446년 우리글 반포를 성공리에 마무리했다” 라고 훈민정음 연구학자 김슬옹 교수는 말한다.
한국인의 정체성 1호 한글은 세상의 자연에서 나오는 모든 소리를 표기할 수 있는 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 글로, 창제 당시 기본자는 28자(자음 17, 모음 11)였다.
컴퓨터시대에 고유문자가 없는 전 세계 대부분의 7000여 언어는 영어에서 쓰는 로마 알파벳(Roman alphabet)으로 표기한다. 하지만 언어별로 다른 음가를 채택하고 있는 영어보다 우월한 글자가 바로 훈민정음이다.
위대한 세종대왕이 창제한 인류 역사상 가장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글자인 훈민정음을 가지고 있는 한국은 다른 어떤 글을 쓰는 문명보다 언어적인 경쟁력을 가진 세상이 왔다.
20세기에 한글로 개명한 훈민정음은 어떤 소리를 표기하더라도 일정한 음가를 유지할 수 있는 글이다. 또한 표현력이 넓은 한글은 세상에서 단어가 가장 많은 언어다.
1970년대에 필자가 미국에서 중학교 다니던 시절 TV에서 늦은 저녁시간에 가장 시청률이 높았던 자니카슨쇼 (The Tonight Show Starring Johnny Carson)에 한국계 코미디언 자니 윤 (Johnny Yune 1936-2020)이 출연해서 깜짝 놀랐었다. 더욱 놀란 것은 자니 윤씨가 16개 언어로 각 나라의 노래를 한글로 가사를 표기해서 배웠다는 것이었다. 영어문화권 미국 시청자들에게 처음으로 한글의 우수성을 알린 매우 인상적인 순간이었다.
미국 유학와서 밤낮으로 일하던 윤종승씨는 언젠가 낮에 일하던 직장에서 졸고 있었는데, “자니?” 라고 주인이 물어봐서 자기 미국 이름을 자니 윤(Johnny Yune) 으로 개명했다고 관객을 또 한번 웃기기도 했다.
자음과 모음, 초성 중성 종성을 각각 3개까지 결합해 모아 쓰기가 독창적이며 과학적인 한글과 컴퓨터는 하늘이 내린 천생연분 사이라고 할 만큼 한글은 컴퓨터 시대에 최적기능을 갖고있는 글자 중 체계적으로 가장 과학적인 글이다.
한글이 과학적인 언어이며 배우기 쉽다는 것은 이미 19세기부터 미국에 알려진 일이다.
조선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독립신문 발행을 도운 헐버트 박사의 미국신문 칼럼에서도 “한글은 현존하는 문자 가운데 가장 우수한 문자”라고 정의했다.
1909년 12월 일본 경찰에게 조사를 받던 안중근 의사가 “한국인이라면 헐버트를 하루도 잊어서는 안된다”는 말을 남겼을 만큼 한글을 사랑했던 호머 베절릴 헐버트 (Homer Bezaleel Hulbert 1863 ~1949)는 1886년 7월 한국에 와서 3년 만에 훈민정음을 깨우치고 “사민필지”라는 최초 한글 세계지리서 교과서를 집필했다.
을사늑약의 불법성과 무효성을 국제사회에 알리려 했던 헐버트는 고종의 밀서를 받아, 비밀리에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장에 파견되었던 제4의 헤이그 특사이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 언어의 말살 정책이 있었다. 1912년 4월에 공표한 보통학교용언문철자법대요(普通學校用諺文綴字法大要)에서 서울지역 말을 표준말로 정하면서 아래아(·)를 폐지하고 변화된 한국말에 맞추어, 조선어학회에서 1933년에 발표한 한글 맞춤법에서는 기본자를 24자(자음 14, 모음 10)로 단순화 했다.
한글 맞춤법에서 버린 4 글자: 자음 옛이응, 여린히읗, 반시옷, 모음 아래아 이외에도, 우리 표준말 음운에 없다고 생각해서 버린 순경음 자음 4개, 순경음 비읍 , 순경음 미음 ㅱ, 순경음 쌍비읍 ㅹ, 순경음 피흡 ㆄ 이 있으며, 반설경음(ㄹㅇ )이 있다.
놀랍게도 순경음과 반설경음에는 한국말에 흔하지 않은 영어 발음을 표기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 예를 들어 순경음 비읍(ㅸ) 은 영어발음에 있는 v 발음을 표기할 수 있다.
세계화 시대에 순경음 비읍과 같은 특정 글자와 현재 사용하지 않는 글자로 아래아(·), 반치음(ㅿ), 옛이응(ㆁ), 여린히읗(ㆆ) 4개는 외국어 학습용으로 매우 활용적이며 잠재력 또한 뛰어나다.
“영어 알파벳 B는 ‘ㅂ’, V는 ‘ㅸ’로 적으면 헷갈리는 영어 발음을 쉽게 구별할 수 있다” 라고 훈민정음을 연구해온 김슬옹 교수는 말한다.
영어발음을 더욱 정확하게 표기할 수 있다는 것은 한국 지식인들의 국제적인 경쟁력을 향상하는 것 뿐만 아니라, 글자가 없는 외국어들이 미래에는 로마 알파벳보다 더욱 정확한 표기법인 한글을 선택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우리 현대 한글 단어에서 보이듯이, 한글의 무서운 힘은 어떤 언어의 단어도 한국말에 편입시킬 수 있는 능력에 있다.
외국 단어를 한국화하는 외래어 표기법은 한글 사용하는 데만 쓸 수 있고, 외국어 발음에는 취약한 점이 그동안 한국의 외국어 교육에서의 결함이었다면, 훈민정음 표기법으로 외국어 발음을 원어민들 수준으로 더욱더 다가갈 수 있는 가능성이 다분히 보인다.
한국말에서 무분별한 외래어는 오히려 우리 순수언어의 오염이자, 깊이없는 단순한 외래어 단어 이해로, 외국어 사용에서는 오히려 부족한 문해력으로 보일 수 있다.
한글에 없는 단어를 순수 우리말로 계속 만들어가는 노력과, 가능하면 우리의 정체성을 침해하는 수준의 무분별한 외래어 사용을 지양하는 것은 전세계 한국말을 쓰는 8000만 인구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외국 단어를 정확하고 멋진 순수 우리말로 소개하고, 한글이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도록 우리 언어를 혁신해 가면서도 한글의 정체성을 더욱 확고하게 하는 한글을 우리나라 공식 언어로 대한민국 헌법에 수록하는 행동을 실천할 때는 바로 지금이다.
세계 7000여 언어 중 매년 없어지는 언어 대열에서 우뚝 서서 우리말을 지키는 현명한 대처를 할 책임은 우리 세대에게 있다.
언어는 안 쓰면 사라진다. 우리가 사투리나 방언이라고 경시하면서 쓰지 않는 단어 또한 우리말이다. 일제강점기에 서울 경기지역 단어만 “표준어”라고 법으로 규정했던 지난 112년간의 왜곡된 학습에서 벗어나는 것이 20세기 초반에 시작한 일제의 언어 말살 정책으로부터 우리가 진정으로 해방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