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는 서울, 광주에서 문학가로 성장
맨부커때 얼떨결에 고을잔치, 노벨상엔 어떨까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조선의 노벨 문학상 감이라 불러도 손색없는 송강 정철은 '관동별곡'을 집필하기 전에 장흥출신 백광홍(1522~1556)의 '관서별곡'을 벤치마킹한다.
백광홍이 평안도 평사에 부임하면서, 평안도와 경기북부 등지의 삶과 정취,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그린 작품이다.
“벽제에 말 가라 임진에 배 건너, 천수원 도라드니, 송경은 고국이라.(중략) 감송정 돌아들어 대동강 바라보니, 심리파광과 만중연류는 항하에 어리었다.”
개성을 지나, 안개 사이로 버드나무 가지가 겹겹이 쌓인 모습과 작은 파도가 일렁이는 평양 대동강 풍경 등을 묘사하면서 군주에 대한 충성심도 담았다. 정철은 백광홍의 30년 후배이다. 백광홍이 장흥의 문학을 열었다면, 정철은 가사문학면을 보유한 담양 등지에서 활약했다.
장흥은 문림(文林)이다. 호국의 의향(義鄕)이기도 하다. 장흥은 진작 노벨상을 받아도 되었을 이청준을 낳고, 노벨 문학상에 빛나는 한강의 아버지 한승원을 낳았다. 한강은 광주에서 자라고 학창시절을 보냈고 문학가로서의 자질은 서울에서 완성했다. 한강이 아버지의 장흥 DNA를 이어받았음은 물론이다.
한승원-이청준의 후배 향토문인 이동규는 장흥의 아름다운 풍경은 시(詩)가 되고, 인정 어린 삶은 소설이 되었다고 했다. ‘시 아닌 것, 시인 아닌 사람이 없는 곳, 소설 아닌 것, 소설 아닌 사람이 없는 곳’이라는 것이다.
한승원의 또 다른 후배 문인 이대흠은 ‘당신의 이름을 지우려고 문지른 자리에 강(탐진강)이 생겼습니다. 손끝하나 스쳤을 뿐인데 숲이 운다고 합니다’라며 장흥의 자연에 가장 애틋한 감성을 입혀, 풍경과 삶을 하나로 묶었다. 문학가 이대흠은 천관문학관, 장흥수문캠핑장 관리인 등을 하면서 낮은데로 임했다.
신상리 동편 선학동 해변은 진작에 노벨문학상을 받았어야 했을 이청준 소설 ‘선학동 나그네’의 영화버전(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작품) ‘천년학’의 주무대이다. 주홍빛 지붕에 다락방을 높게 올려 2층 모양새인 가옥은 충무공이 12척으로 세계 해전사에 빛나는 대승을 기약하던 회진 바다를 내려다 본다. 공지선을 따라 학처럼 그려지는 선학동의 모습이 또렷하다. 근처엔 ‘아제아제 바라아제’의 한승원 생가가 있다.
아름다운 소등섬 북쪽으로 10여분만 차를 달리면, 한승원 문학산책로가 있는 여닫이 해변을 만난다. 썰물 때 갯벌 쪽으로 나가보면 해넘이 풍경이 일품이다. 넘어가는 석양의 반영은 바닷물에 닿았다 조각배 돛대에 스친 뒤 갯벌을 훑어, 주홍 물감 번지듯 아련하게 내 마음에 파고든다.
한승원은 딸 한강이 자신을 뛰어넘었다는 고백을 한 적 있다. 이번에 받은 노벨상 만큼 이나 권위있는 맨부커상을 받았을 때이다.
한강 작가의 맨부커 수상 당시 동네 친구와 어른 몇몇에게 대포한잔을 모시겠다고 했는데, 그만 입소문이 퍼져나가 장흥군민 잔치가 되었다는 정담은 지금도 회자되는데, 노벨상을 받았으니 한승원의 집 기둥뿌리가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