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시대에 한국어교육의 미래 [헤럴드광장]
조현용 경희대 교수

1. 인공지능의 시대에 외국어교육

▷인공지능(AI)의 시대, 가상현실의 시대가 급속히 우리 속으로 들어오면서 외국어교육의 미래는 어두워지고 있다. ‘어둡다’고 표현했지만 인류에게는 오히려 밝아졌다고 할 수도 있겠다. 외국어를 배우지 않아도 다른 언어권 사람과 마음껏 소통하고, 다른 언어로 된 책이나 영상을 즐기며, 세계 어느 곳이든 말의 부담없이 쉽게 여행을 떠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세상에서 외국어교육은 도대체 어떤 유용성 또는 의미가 있을까.

2. 조선어교육을 포함해야

▷한국어교육의 미래를 이야기하기 전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다. 한국어교육이라는 말 자체가 편견의 산물이며, 한쪽 면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한국어교육을 영어로 하면 ‘Korean Language Education’이다. 이 말에는 한국어라는 말이 없다. 무슨 말인가 하면 ‘Korean Language’에는 조선말 즉 북한어도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한국어교육이 완전해지려면 조선말 교육도 포함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한국어교육을 연구하는 사람 대부분은 조선어교육에 대하여 관심이 없다. 심지어는 중국의 한국어 학자들조차 북한어에 대한 관심이 적다. 중국의 조선어과의 대부분은 남한말만 가르친다. 이는 후에 한국어만 배운 사람이 북한 사람과 이야기할 때 문제가 될 수 있다.

소통에서 작건 크건 차이가 발생하여 오해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는 마치 미국영어, 영국영어, 남아공 영어 등의 차이와도 비교될 수 있으며 아르헨티나, 멕시코, 스페인의 스페인어 차이와도 비교될 수 있다. 남한과 북한의 교류가 끊어지면 소통의 차이가 심해질 것이므로 북한의 조선어교육에 관해서도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한중 수교, 한러 수교, 한국과 동구권 수교 이전에는 중국도, 러시아도, 동구권 국가도 모두 조선어교육 위주였다. 따라서 수교 초기만 하여도 북에서 조선말을 배운 사람들이 남한에서 한국말로 소통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지금 현재는 남북한의 경제력이나 위상 차이에 의해서 한국어를 배우는 학습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게 현실이나 향우 한국어교육의 완전한 모습을 위해서는 조선어교육의 현황을 비롯하여, 제시하고 있는 어휘, 문법, 문화 등에 대한 연구도 폭넓게 이루어져야 한다.

3. 한국어교육과 치유

▷인공지능이나 가상현실의 유용성에도 불구하고 외국어를 배울 필요가 있을까? 이 점에 대하여 대답하기 위해서는 다시 ‘외국어학습’의 장점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과거에 외국어학습이 단순히 소통을 위한 욕구, 또는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는가? 그렇지 않다. 외국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기쁨을 얻고, 만족감을 느꼈으며, 새로운 언어로 새로운 내용을 배우면서 심리적인 치유를 받는 경우도 많았다.

미지의 세계를 새로운 언어로 탐구하는 기쁨은 인공지능을 통한 소통과는 비할 수 없다. 외국어로 탐구하기 때문에 여러 번, 자세하게 살피게 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통찰을 얻기도 한다. 마치 현재를 살면서도 옛글로 고전을 읽고, 한문이나 라틴어를 배우는 이유와 같다. 소통을 위해서라면 옛글, 라틴어, 한문을 학습할 이유가 없다. 그 글이나 말로는 소통할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가수나 배우가 쓰는 말을 배우고, 좋아하는 노래의 가사나 드라마의 대사를 직접 내가 배운 말로 해석해 보고, 따라해 보고 싶은 동기가 외국어 교육 속에 있다. 그렇게 배운 말은 숙달도, 정확도와 상관없이 만족도가 높다. 외국어 학습 과정 자체가 치유의 과정이다. 점점 고연령층의 한국어 학습자가 늘고 있다는 점이나 한국어가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국가에서 한국어 학습 만족도가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4. 가치교육과 시민성 교육

▷외국어학습의 새로운 방향으로는 상호문화교육과 가치교육을 잇는 것이다. 근대 이후 언어교육은 마치 산업혁명 이후의 세상처럼 빠른 소통을 목표로 달려왔다. 따라서 듣기와 말하기는 최고의 목표점이나 도달점처럼 인식되었다. 정확히 듣고, 정확히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삶과 문화’는 관심 밖에 있었다. 그 후에 문화교육에 대한 자각이 일어난다. 언어와 문화의 교육이 이루어진 것이다. 즉 목표언어와 함께 목표 문화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그 방향은 일방향이었다. 목표문화를 습득하여 목표언어 사용에 도움을 주는 것을 목표로 하는 방향이었던 것이다. 언어와 마찬가지로 문화도 상호적이다. 따라서 목표문화의 습득만으로는 올바른 소통이 어렵다. 서로의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는 자각은 상호문화교육의 발전으로 이어진다. 한편 상호문화교육의 궁극적 목표로 한 가지 관점이 추가된다. 그것이 바로 ‘가치’다. 외국어를 배우고 그 언어를 잘 알고, 그 문화를 잘 알아서 소통하려고 하는 목표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 생긴 것이다.

사실 이에 대한 대답은 오래전에 이미 주어진 것이었다. 한문이나 라틴어를 배우는 사람은 문자, 언어, 문화를 아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언어를 통해서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서 배우는 과정이었다. 당연히 언어교육의 교재가 중요했다. 한문을 배우는 이는 소학이나 명심보감, 사서삼경 등을 배우며 삶의 지침을 마련한 것이다. 이는 라틴어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언어교육은 곧 가치교육이었던 셈이다.

현대 언어교육에서는 시민성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문화교육의 방향을 확대하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는 DEI를 중심으로 교육을 시도하고 있다. 이와 같은 교육은 넓은 의미에서 가치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언어교육, 문화교육, 상호문화교육, 상호문화 시민성교육의 방향을 나선형으로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미래의 언어교육에서는 상호문화 시민성교육에 대한 요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민, 난민 등의 문제와 종교, 남녀, 빈부 등의 차별의 문제가 한국어교육에서도 등장하게 될 것이다. 한국어교육 속에 남아있는 차별적 요소, 편견의 요소를 치우고 인권이 존중되는 교육으로 방향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5. 생태주의적 접근

▷생태주의의 창시자로 이야기되는 크로포트킨의 경우는 상호부조론을 내세운다. 이는 진화의 원리인 적자생존을 보완하는 논리이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돕는 자 역시 살아남는다. 적자의 주요한 조건 중의 하나도 돕는 자일 수 있다. 사회를 이루는 주요 요건이 서로 돕는다는 점이다. 한국어교육은 이러한 상호부조론에 바탕을 둔 교육 현장이어야 한다.

생태주의에 의해서 교육 현장의 모습은 다양하게 바뀔 수 있다. 우선 학생 상호 간에 협조가 일어날 수 있도록 수업의 방식을 전환하거나 강조할 수 있다. 협력 수업이 일어나는 것이다. 또한 선생님과 학생 간의 관계도 상호조력자로 바뀌어야 한다. 일방향적인 접근은 곤란하다. 선생님과 선생님, 선생님과 학부모, 학부모와 학생의 경우도 생태주의의 입장으로 생각해 보면 변화가 불가피하다. 교재의 내용도, 평가의 방법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조현용 경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