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사람 콧속에서 남세균 독소 유전자가 검출되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를 확인했다” (임도훈 대전충남녹색연합 자연생태팀장)
봄에서 가을철마다 전국의 강과 호수를 뒤덮는 녹조. 녹조가 퍼진 물에 피부에 닿거나 마시면 인체에 해로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 녹조가 물이 아닌 공기 중을 통해서도 인체에 유입됐다는 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녹조의 원인인 유해 남세균 독소가 무려 콧속에서 검출됐다.
환경단체 낙동강네트워크와 환경운동연합, 대한하천학회 등은 지난 7일 낙동강 인근에 거주하는 농민과 어민, 현장 활동가들 22명 중 11명에게서 남세균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와 이승준 부경대 식품영양학 교수 등이 낙동강으로부터 2㎞ 이내에서 거주하는 주민과 농업 종사자, 낙동강 어업 종사자, 현장에서 녹조를 조사하던 활동가 등 총 102명을 대상으로 지난 8월20일부터 9월12일까지 조사한 결과다.
이중 코로나19 PCR 검사를 하는 부위, 즉 비인두를 검사한 22명 중 11명의 콧속에서 남세균의 유전자가 검출됐다.
연구진은 녹조에 노출된 시간이 길수록 남세균이 검출되는 경향이 있다고 봤다. 낙동강 권역에 거주하는 17명 중 10명(58.8%)에게서 남세균이 검출됐다. 타 지역에 거주하고, 일정 시간 낙동강에서 체류한 4명 중에는 1명(25%)에게서 남세균이 나왔다. 낙동강에 아예 방문하지 않은 대조군 1명에게서는 남세균이 검출되지 않았다.
콧속에서 남세균이 검출된 11명에게서는 일부 호흡기 질환 증상이 나타났다. 재채기를 호소하는 경우가 11명 중 8명(73%)으로 가장 많았고, 콧물이나 코막힘 증상도 나타났다. 1명은 후각 이상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외에 눈 가려움증이나 눈물 분비(5명) 피부 가려움이나 따가움, 피부 발진(4명), 두통(3명) 열감(1명) 등의 증상이 관찰됐다.
연구 책임자인 계명대 동산병원 김동은 교수는 “에어로졸 형태의 남세균이나 독소가 호흡을 통해 코로 들어올 경우 급성 염증 반응을 일으킬 수 있으며, 알레르기 비염이나 기관지 천식 같은 호흡기 질환이 발생할 수 있고 기존 질환이 악화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해외에서는 에어로졸(공기 중에 떠 있는 고체나 액체 상태의 작은 입자) 형태가 인체에 녹조 독소가 들어오는 중요한 경로가 될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에어로졸 속 녹조 독소는 코에 머물지 않고 기관지나 혈관으로 이동할 수 있다고 한다.
단체들에 따르면 미국 마이애미 의대 한 전문가는 녹조 에어로졸에 장기간 노출될 경우 치매, 파키슨병 같은 질환 유발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녹조 에어로졸을 “조용한 살인자(silent killer)로 불러야 한다”고 설명했다.
강이 흐르지 못하게 하는 보가 녹조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됐다. 지난 8월 보 수문을 개방한 금강 세종보 구간에서 녹조가 만들어 내는 대표적인 독소인 마이크로시스틴 농도가 0.48ppb로 측정된 데 비해 강 흐름이 막힌 낙동강 강정고령보에서 농도가 1만5000ppbd에 달했다는 이유다.
단체들은 “단순하게 비교할 때 흐르는 금강과 흐르지 못한 낙동강의 녹조 농도 차이는 3만1250배에 달했다”며 “마이크로시스틴은 소량이라도 생식 독성을 띠고 있어 미국, 프랑스 등에선 기준을 엄격히 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후변화가 녹조를 심화할 거란 전망도 나왔다. 기온과 수온이 높아지면 남세균이 번식하기 유리환 환경이 돼서다. 국립환경과학원은 “기후변화로 열대성 유해 남세균이 낙동강 등 국내 수계에 출현 가능성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단체들은 녹조가 사회재난으로 확산하고 있다며 강의 고유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공기와 먹거리 등 우리 환경 곳곳에서 녹조 독소가 검출되고 있다는 사실은 국내외에서 학술적으로 이미 검증이 끝났다”며 “우리 강을 존속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선 오염 물질 총량 관리 강화와 함께 강의 흐름을 회복하는 실질적 대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