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재우 기자] “‘국민들 호주머니를 털어서 해외에 꼴아 박아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당연히 제기될 수 있다.” (지난 3월 KT 주주총회, A주주)
“앞으로 그 사업은 철수하는 것으로 절차를 밟고 있다.” (김영섭 KT 대표)
KT가 르완다 정부와 추진했던 ‘4세대 이동통신(4G) 롱텀에볼루션(LTE) 사업(4G 사업)’이 결국 정리 수순으로 가고 있는 가운데, 투자금 회수 전망에 먹구름이 끼었다. 르완다 정부가 당초 KT에 약속했던 4G LTE 독점사업권을 회수하면서 ‘출구 전략’이 불가피해졌다.
급기야 KT-르완다 정부 합작법인인 KTRN이 현지 법원에 제기한 독점사업권 정책 중단 가처분신청은 ‘기각’됐다. 이 와중에 KT의 LTE 망 구축비용 ‘약 1000억원’은 물론, 지난해까지 KTRN 당기순손실 규모도 ‘3100억원’을 훌쩍 넘었다. 당기순손실은 급증하는 추세다.
KT는 르완다 정부에 ‘풋옵션’ 권리를 행사하는 식으로 투자금을 회수할 방침이지만, 전문가들은 “독점사업권을 보호하기 위해 풋옵션은 충분치 않다”며 KT-르완다 정부간 계약이 미흡했던 것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독점권 회수한 르완다, KTRN 가처분신청 ‘기각’= 7일 헤럴드경제가 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3년 9월 KT는 르완다 정부와 합작법인 ‘KTRN’을 설립하고, 4G 사업을 진행했다.
KT는 KTRN에 약 1000억원(약 8000만달러)를 투자해 LTE 망을 구축했고, 르완다 정부로부터 오는 2038년까지 4G 도매 독점권을 보장 받았다.
문제는 지난해 3월 발생했다. 르완다 정부가 KT의 도매 독점권을 4G 확산 부진의 원인으로 지목하며 KTRN에 부여한 주파수 할당 실무협의 등 도매 독점권 회수를 공식화했다. 같은 해 7월 르완다 정부는 KTRN에 4G 독점 라이선스 취소를 통지했다.
KT로서는 날벼락이었다. KTRN은 도매 독점권 회수가 공식화 된 지난해 3월 르완다 현지 법원에 정책 중단을 위한 가처분신청을 진행했으나 이마저도 기각됐다. KT에 남은 선택지는 사실상 사업 정리밖에 남지 않았다.
지난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김영섭 KT 대표가 “(KTRN) 정리 과정을 밟고 있다”고 답한 게 괜한 말이 아니었던 셈이다.
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은 “KT가 르완다 시장 상황과 수요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섣불리 계약을 체결한 것이 아니냐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계륵된’ KTRN, 투자금 회수 늦어지며 적자 ‘급증’= KT로서는 당혹스러운 결과다. 무엇보다 KT는 LTE 망 구축에 약 1000억원을 투자했고, 지난 2014년 이래 적자를 거듭하던 KTRN 당기순손실 약 3113억원 등을 따져보면 적절한 투자금 회수 없이 발을 빼기란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KT는 르완다 정부를 상대로 보상 방안으로 풋옵션 권한을 행사할 방침이지만, 전문가들은 “풋옵션 자체가 독점권을 대체 하는 게 아니”라며 KT-르완다 정부 간 계약에 의문부호를 제기한다.
쉽게 말해 KT가 르완다 정부의 계약 파기 등 변수에 따른 안전장치를 제대로 마련했느냐는 것이다.
KT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KTRN 당기순실은 ▷2014년 –190억원 ▷2015년 –287억원 ▷2017년 –228억원 ▷2018년 –292억원 ▷2019년 –317억원 ▷2020년 –346억원 ▷2021년 –288억원 ▷2022년 –275억원 ▷지난해 –576억원 등 총 3113억원이었다.
특히 KT와 르완다 정부가 줄다리기를 하던 사이 지난해 당기순손실은 크게 늘었다. 김 대표가 밝혔던 “과거와 같이 대규모 발생하는 건 줄여가고 있다”는 발언과는 정반대 모습이다. 달러 가치 대비 르완다 화폐 가치가 급락한 결과라는 게 KT의 설명인데, 르완다 내부 상황에 따라 악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KT는 투자금 회수 주된 방안으로 풋옵션을 거론하고 있다. KTRN의 지분을 르완다 정부에 매각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르완다 정부와의 협상 자체가 여의치 않아 보일뿐더러 단순히 풋옵션을 보장 받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 민간자문위원회 위원을 역임한 송기호 변호사는 “KTRN은 현지에 공장을 짓는 차원이 아니라 르완다 정부로부터 독점권을 받은 것인데, 이 경우 정부 정책 변화에 따라 계약이 한 순간 물거품 될 가능성이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단순히 르완다에 공장 짓는 등 진출한 게 아니라 (독점권) 인허가가 핵심이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침해되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를 마련했어야 했다”며 “‘정부가 직접적으로 배상한다’는 조항이나 국제법적으로 정부가 책임지게 하는 ‘국제중재조항’이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은 “낙하산 이석채 전 회장 시절 국가기간사업자인 KT가 진행한 계약에 구멍이 뚫렸던 셈”이라며 “르완다 정부와 협상 와중에도 당기순손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만큼,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KT 측은 “르완다 정부가 주주간 계약을 위반한 상황이며, 르완다 정부와 현안에 대해 계속 협의하고 있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