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서울 영등포구에서 공공자전거 ‘따릉이’로 출퇴근하던 직장인 한모(31) 씨는 얼마 전 사고를 낼 뻔 했다. 자전거 도로로 갑자기 튀어나온 보행자를 보고 급히 브레이크를 밟아 다행히 충돌은 면했지만 팔뚝과 종아리에 찰과상을 입었다.
보도와 색으로 구분된 자전거 도로는 그나마 다니기 수월한 편. 폭이 좁은 보행자 자전거 겸용 도로에서는 앞서가는 보행자의 걸음에 맞춰 속도를 늦추거나 이리저리 피하는 ‘곡예 운전’을 해야 했다.
실제로 자전거를 즐기는 이들 중 상당수는 한강이나 하천변에 집중돼 있다. 자전거를 생활화하려면 시내 및 도로 주행이 필수. 하지만 정작 시내로 자전거를 끌고가면 사고 위험이 곳곳에 있다.
도시 탄소 저감의 일환으로 전세계 대도시들이 자전거 친화적인 교통 정책을 펼치는 가운데 서울만이 한강 등 하천변 위주의 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녹색전환연구소에서 지난달 발간한 ‘파리와 암스테르담 사례를 통한 서울시 자전거 정책의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기준 서울시에서 자전거의 교통수단 분담률은 1.5%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자전거 분담률 26%(2017년), 프랑스 파리 11%(2023년)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그만큼 각 도시의 교통 분야에서 나오는 온실가스 배출량은 차이를 보였다. 서울시의 교통 분야에서 나오는 온실가스는 889만9000톤으로 전체의 18%를 차지했다. 암스테르담과 파리는 각각 87만톤(17%), 70만톤(14.5%)로 조사됐다.
특히 파리의 자전거 이용률 증가는 극적이다. 지난 4월 파리지역연구소에 따르면 2023년에는 처음으로 파리 시민의 자전거 이용률(출퇴근 11.2%)이 자동차(4.3%)를 앞지르기까지 했다. 자전거 이용률 자체만 봐도 2010년 3%에서 약 14년 만에 세 배 가까이 늘었다.
파리에서 자전거 이용이 이처럼 늘어난 건 2026년까지 도시 전체를 100% 자전거 도시로 전환하겠다는 목표에 따른 정책의 영향이다. 연구소는 “노후 휘발유 및 디젤 자동차 금지 정책과 주차 공간 및 도로 축소를 비롯해 자전거 등에 대한 투자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녹색전환연구소도 서울 시내 자전거 이용을 늘리려면 도로 등 인프라를 확충하려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봤다. 정책의 의지는 곧 예산에서 드러난다. 서울시의 연간 1인 당 자전거 예산은 5378원. 암스테르담(1만4372원)과 파리(3만4882원)의 3분의 1, 7분의 1 꼴이다.
보행자와 마찰이 많은 생활권 자전거 도로는 약 15년 전 수준에 머물러 있는 곳도 있었다. 자전거도로는 ‘간선 자전거 도로’와 ‘생활권 자전거 도로’로 구분되는데, 생활권 자전거 도로는 주로 주거지와 지하철역, 지역 상권을 연결한다.
녹색전환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서울 시내 25개 자치구 중 마포구는 2004년 이후로 자전거 이용 활성화 계획을 수립하지 않았다. 용산구 역시 2009년 이후로 자전거 이용 활성화 계획이 없었다. 자전거 이용 활성화 계획은 법적으로 매년 혹은 5년 단위로 세워야 한다.
계획에 그친 곳들도 있었다. 강남·강동·광진·성동·송파·양천·영등포 7개 구는 올해 자전거 도로 신설 구간 계획이 있었지만, 실제 계획을 위해 올해 자치구 예산에 반영하지는 않았다.
녹색전환연구소는 “자치구 추진 정책은 대부분 표지판, 공기주입기, 보관대 확충이 대부분”이라며 “자치구가 관리하는 대부분의 도로들이 폭이 좁은 경우가 많아서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 간 갈등이 생기기 때문에 도로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교통 정책이 조정되지 않고는 자전거 도로 인프라 확충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