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한은의 강남 작심 발언

“효율적인 통화신용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통하여 물가안정을 도모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우리나라 중앙은행인 한국은행법 1조의 목적에 관한 조항이다. 한국은행의 역할은 이처럼 법을 통해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으로 명확히 규정돼 있다. 이런 한은이 최근 서울 강남 집값 이야기를 꺼냈다. 더 정확하게는 ‘강남의 사교육’ 문제를 지목했다. 매우 이례적인 언급이어서 여전히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중이다.

지난달 서울대에서 열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한은 공동 심포지엄’에서 이창용 한은 총재의 폐회사는 그래서 더 눈길을 끈다. 이 총재는 이 자리에서 “교육열에서 파생된 끝없는 수요가 강남 부동산불패의 신화를 고착시키고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가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인 제약을 고려하지 않고 단기적으로 고통을 줄이는 방향으로 통화 및 재정정책을 수행한다면 부동산과 가계부채 문제는 지난 20년과 똑같이 계속해서 나빠지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왜 중앙은행이 뜬금없이 강남 사교육 문제를 언급하냐는 세간의 비판에 대한 나름의 해명으로 읽힌다.

오죽하면 중앙은행장이 강남 집값을 이야기했을까. 사실 서울, 특히 핵심으로 꼽히는 강남 집값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해묵은 이야기다. 이 땅의 장삼이사 모두가 나름의 해법을 제시할 수 있을 정도의 이슈가 아닐까 싶다. 수도를 이전하겠다는 생각과 그에 따른 세종시의 탄생, 지방 곳곳으로 흩어진 공공기관의 운명 모두가 강남 집값에서 출발했다. 국회의 세종시 이전 논의도 선거 때마다 등장한다.

이 총재가 미래의 화두를 던졌지만 문제는 오늘의 현상이다. 서울, 아니 강남 쏠림이 심각하다. 좁디 좁은 이 나라가 서울과 비(非)서울, 둘로 갈려버린 느낌이다. 매주 부동산원이 발표하는 집값 통계를 보도하는 뉴스 헤드라인은 이런 시장의 양극화를 담지 못한다. 서울과 경기도 주요 핵심지의 상승 뉴스가 도배되며 마치 전국 부동산시장이 회복되고 있다는 왜곡을 낳는다.

펄펄 끓는 강남불패 신화는 비단 교육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복잡다단한 고차방정식이 적용되고 있는 게 분명하다. 교육, 일자리, 인프라 등 변수가 너무 많다. 하지만 이는 반드시 풀어야 할 문제임에 분명하다. 그래서 최근 정부의 정책적 대응에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정책의 초점이 서울과 수도권에 편향돼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1기 신도시 재건축, 서울의 비아파트 정상화, 정비사업 활성화 등 공급대책은 사실상 서울, 수도권 공급정책이었다. 최근 이른바 부동산전문가로 불리는 이를 만나 ‘지방 주택시장이 살아날 방법이 있느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절망적이었다. 그는 “답이 없다”고 했다. “아이를 안 낳고, 지방은 소멸로 향해가는데 누가 지방 집을 사겠냐”고 했다. 이미 지방의 부자들은 보유자산을 팔아 서울로 포트폴리오를 집중하고 있다.

이 총재는 강남의 사교육과 그에 따른 명문대 독식을 지목했다. 한은은 서울대를 비롯한 상위권 대학의 지역별 비례선발제를 제안하기도 했다. 이 제안이 결코 정답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은이 쏘아올린 강남 쏠림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장은 환영할 만하다. 극심한 양극화를 보고만 있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다.

정순식 건설부동산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