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유리병과 페트병, 캔 중에 뭐가 좋을까?”
유리나 알루미늄, 플라스틱 등 용기에 따라 똑같은 음료라도 맛이 미묘하게 달라진다. 소재 별로 탄산이 새어나가거나 온도가 유지되는 정도가 달라서다. 용기의 소재는 맛뿐 아니라 환경에도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캔보다 유리병이 더 좋은지, 페트병은 캔보다 얼만큼 온실가스를 더 배출하는지 등을 알 길이 없다는 데 있다. 맛이나 가격뿐 아니라 환경적 영향까지 고려해 선택하고 싶은 소비자들은 기후정보를 더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방법만 안다면 간단한 사칙연산 등을 활용해 탄소발자국을 계산해낼 수 있다고 한다. 이에 평소 스스로의 탄소발자국을 궁금해 하던 시민들이 모였다.
비영리 민간 연구소 기후변화행동연구소는 지난 9일 ‘시민탄소발자국계산단’이 조사한 결과를 공유했다. 지난 6월 18일부터 지난달 9일까지 시민 약 20명이 네 차례에 걸쳐 연구에 참여해 총 17가지 사례의 탄소발자국을 계산했다.
탄소발자국(Carbon Footprint)은 개인이나 기업, 국가 등이 어떤 활동을 하거나 제품을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의 총량을 가리킨다. 원료를 채취, 운송, 생산, 유통, 소비, 폐기까지 모든 과정을 계산한다.
기후변화행동연구소는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에서 개발한 탄소배출계수를 우선 적용했다. 또 제조, 운송, 사용 단계에서 데이터 수집에 한계로 제조 전 및 폐기 단계 위주로 탄소발자국을 계산했다. 제조 전 단계에서는 제품의 소재를 생산할 때 나오는 온실가스를 구한다. 가령 캔의 제조 전 단계라면 알루미늄 광석을 채굴하고, 운반 및 처리하는 과정의 탄소발자국인 셈이다.
일회용품의 경우 플라스틱 소재의 탄소발자국이 대체로 높았다. 플라스틱칫솔과 대나무칫솔의 탄소발자국은 각각 개당 45.7gCO₂eq(이산화탄소 환산톤), 11.0gCO₂eq으로 계산됐다. 플라스틱칫솔이 대나무칫솔보다 약 4배 탄소발자국이 높은 것이다.
기후변화행동연구소는 “플라스틱칫솔 무게 자체라 대나무 칫솔의 2배인 데다 주요 소재인 플라스틱 자체의 탄소발자국이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캔 사이다와 페트병 사이다는 용량이 같을 때 페트병의 탄소발자국이 2.4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알루미늄캔은 단일 소재로 중량만 곱해 탄소발자국을 계산한 반면, 페트병은 병 외에 뚜껑(HDPE)과 라벨(PP)의 소재와 무게에 따라 다른 값을 적용했다.
유리병이나 텀블러 등 다회용품과 일회용품을 비교했을 때는 오래 사용해야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효과가 나타났다.
맥주 용기를 갈색유리병, 투명유리병, 캔, 페트병 등 4가지로 나눠 조사한 결과, 투명맥주병의 탄소발자국이 1564.3gCO₂eq(500㎖ 3병 기준)로 가장 높았다. 뒤이어 갈색맥주병(500㎖ 3병 기준) 1424.9gCO₂eq, 페트병(1.6ℓ 1병 기준) 129.7gCO₂eq, 캔(500g㎖ 3병 기준) 103.6gCO₂eq로 나타났다.
투명유리병의 경우 12번, 갈색맥주병은 11번 이상 다시 사용해야 페트병보다 탄소발자국이 낮아졌다. 유리병은 별다른 변형 없이 세척만 잘 하면 계속 다시 쓸 수 있어 친환경적인 재사용 소재로 주목 받았다.
시민탄소발자국계산단이 제조 전 및 폐기 단계의 탄소발자국만 따졌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유리병의 탄소발자국을 낮추려면 재사용 횟수를 늘려야 한다는 이야기다. 주류 업계에 따르면 유리병은 평균 5~10회 재사용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독일의 경우 유리병을 최대 40회까지 재사용한다고 한다.
텀블러 역시 사용 기간이 늘어날수록 일회용컵과 탄소발자국의 격차를 벌렸다. 시민탄소계산단은 400㎖ 들이 일회용 플라스틱 컵과 300㎖ 플라스틱 텀블러, 325㎖ 스테인리스 텀블러를 대상으로 조사했다.
하루만 사용한다고 가정하면 일회용 플라스틱컵의 탄소발자국은 (45.8gCO₂eq)은 스테인리스 텀블러(709.4gCO₂eq)의 0.1배, 플라스틱 텀블러(120.7gCO₂eq)의 0.4배에 불과했다.
기간을 6개월으로 늘리면 일회용 플라스틱컵의 탄소발자국은 스테인리스 텀블러보다 12배, 플라스틱 텀블러보다 65배 높은 것으로 계산됐다. 2년 간 같은 텀블러를 사용한다면 일회용 플라스틱컵이 스테인리스 텀블러와 플라스틱 텀블러보다 탄소발자국이 각각 46배, 228배 높아졌다.
기후변화행동연구소는 기후행동을 하려면 탄소발자국과 같은 정확한 기후정보가 필요하다고 봤다. 체중 조절을 할 때에 음식이나 운동 별 칼로리를 따지듯 소비나 행동에 따라 탄소발자국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들은 시민들을 대상으로 탄소발자국 계산법을 교육하고 일상에 적용할 기회를 늘려가겠다는 계획이다. 이윤희 기후행동변화연구소 부소장은 “대규모 행사에서 버려진 일회용품이라든지 제로웨이스트샵에서 절감한 일회용품 등 기후행동에 따른 탄소발자국의 차이를 구하는 활동 등을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