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반영 회계처리 LP, 펀드 평가 불리한 PE
기존 포트폴리오 공개매수→상폐 사례 증가
공정가치가 능사? 이해관계자간 평가법 합의 도출 요구
[헤럴드경제=심아란 기자] 사모펀드(PEF) 운용 업계에서 상장기업이 본질가치와 달리 ‘미운 오리’ 취급을 받고 있다. 다양한 변수로 형성되는 주가가 투자 기간 동안 펀드 성과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탓에 신규 투자를 기피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출자자(LP)의 회계처리 기준인 ‘상장사=주가’ 공식을 두고 업계 내 의견도 분분한 상황이다.
29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의 락앤락, MBK파트너스의 커넥트웨이브 등은 증시를 떠나기 전 마지막 작업에 한창이다. 두 곳의 PEF는 상장사 포트폴리오 기업을 소유하다가 엑시트(투자금 회수) 이전에 공개매수로 잔여 지분을 사들이고 포괄적주식교환을 통해 상장폐지를 추진 중이다. 앞서 한앤컴퍼니도 동일한 방식으로 쌍용C&E를 증시에서 내렸다.
PE가 기존 포트폴리오의 구주 매수에 자금을 투입하는 기조는 ‘시가 평가’ 부담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구주 거래는 회사로 유입되는 자금이 없어 기업가치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락앤락과 커넥트웨이브, 쌍용C&E 모두 업황 부진으로 경영 실적이 위축되고 주가 역시 고점 대비 낮아진 상태다.
시장 관계자는 “국내에서 채택하는 회계기준상 LP들은 상장법인의 자산가치를 시장가격 기준으로 평가한다”며 “시가가 언제나 회사 공정가치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저평가될 때가 많고 투자한 PE 입장에서는 펀드 성과 평가에서 불리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자본시장법 제238조에 따르면 PE와 같은 집합투자업자의 재산 평가는 시가를 원칙으로 하고 신뢰할 만한 시가가 없는 경우 공정가액이나 장부가격으로 회계처리할 수 있다. 상장사는 ‘주가’에 국한되는 반면 비상장사는 보다 복합적인 근거로 가치를 설명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로 인해 PE 사이에서 상장 기업의 투자를 주저하는 분위기가 확인된다. 경기 민감도가 높은 소비재나 기술기업 등을 펀드에 담을 경우 평가손실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PE는 인수금융을 일으키는데 투자 기업의 주가가 폭락할 경우 담보비율을 유지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경영 실적 개선, 배당과 자기주식 매입과 소각에 따른 이익 공유만으로 주가가 ‘관리’되지 않는 것도 한계다.
우수한 트랙레코드를 쌓아도 한 건의 투자로 흔들리면 LP의 출자사업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기대하기 어렵다. 금융기관이 보수적인 투자 기조를 유지하고 있어 인수금융 대주단 꾸리기도 난제 중 하나다. PE는 작년 말 기준 드라이파우더(미집행 약정액)가 37조5000억원으로 역대 최대 투자 여력을 지니고 있어도 ‘상장사는 투자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운 운용사도 적지 않다.
현재 시장에서 인수합병(M&A) 매물로 언급되는 상장사로는 ▷한양증권 ▷케이카 ▷롯데손해보험 ▷하나투어 등이 꼽힌다. 금융회사인 한양증권과 롯데손해보험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각각 0.4배, 0.7배로 순자산 가치가 시총에 온전히 반영돼 있지 않다. 케이카와 하나투어는 과거 고점 대비 실적은 개선됐지만 주가는 떨어져 펀더멘털과 시가 간 일부 괴리를 보인다.
물론 현재로선 대안으로 언급되는 공정가치 평가가 능사는 아니다. 공정가치에는 ‘장밋빛 미래’가 반영될 수밖에 없어 ‘몸값 부풀리기’ 지적에서 자유롭지 않다. 공정가치를 평가하는 외부 평가기관이 PE가 의뢰한 자산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가치가 평가절하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게다가 주요 LP 가운데 시가가 없는 대체자산을 장부가로 처리하는 곳도 상당수다. PEF 제도가 도입된 지 20년을 맞이한 만큼 자산 평가법을 두고 이해관계자 사이에 기준점을 확립하는 움직임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