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장, 성추행 혐의 유죄 확정
제명 의결에 대해 불복 소송
1심, 제명 정당…2심, 제명 부당
대법, 제명 정당 판단
[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부하직원을 성추행한 혐의로 유죄가 확정된 농협 조협장을 제명한 것은 정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앞서 2심은 제명을 무효라고 봤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권영준)는 전직 전남 화순군 천운농협조합장 A씨가 조합을 상대로 “제명은 무효”라며 낸 소송에서 이같이 판시했다. 법원은 제명이 무효라고 판단한 원심(2심)에 대해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지적하며, 다시 판단하도록 사건을 광주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
A씨는 2019년 2월부터 7월까지 천운농협에 근무하던 부하 여직원을 6차례에 걸쳐 성추행한 혐의를 받았다. 1·2심은 유죄를 인정했다. 1심은 징역 8개월 실형을 선고했고, 2심은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 판결은 2021년 8월에 확정됐다.
유죄가 확정되자 조합은 2022년 1월께 징계위원회를 개최했다. 대의원 48명 중 37명의 찬성으로 A씨에 대한 제명이 의결됐다. 조합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조합에 손실을 끼치거나, 조합의 신용을 잃게 한 경우’를 징계사유로 A씨를 제명했다.
A씨는 제명 의결에 불복했다. 법원에 “제명을 무효·취소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A씨 측은 “징계 사유상 ‘손실’은 경제적 손실에 관한 규정”이라며 “본인의 형사 처벌로 조합의 명예가 훼손되거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는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반면 조합은 “A씨의 범죄사실과 조합의 실명이 언론에 보도돼 조합에 대한 신뢰가 저하됐다”며 제명은 정당하다고 반박했다.
1심은 A씨 측 패소로 판결했다. 1심을 맡은 광주지법 11민사부(부장 유상호)는 지난해 6월, “징계규정상 손실이 경제적 손실에 한정된다고 볼 수 없다”며 “A씨에 대한 범죄사실 보도로 조합 내부에 성범죄가 근절되지 않는다는 인식을 줄 것임을 종합하면 조합의 손실로 평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반면 2심은 A씨의 손을 들어줬다. 2심을 맡은 광주고법 2민사부(부장 양영희)는 지난 2월, 이같이 판시했다. 2심 재판부는 “제명사유의 존재 여부를 판단할 땐 조합의 목적달성을 어렵게 하거나 공동의 이익을 위해 제명이 불가피한 정도에 해당하는지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이어 “농협의 정관상 ‘신용'은 경제적 신용을 의미하는 것으로 제한해 해석해야 한다”며 “농협 측에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봤다. 그러면서 “A씨가 처벌받았다고 해서 조합의 신용이 훼손되는 것도 아니므로 제명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2심 판결은 대법원에서 깨졌다. 대법원은 제명이 정당하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농협의 존립 목적은 경제적 이익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문화적 영역을 포함한 조합원들의 지위 향상에 있다”며 “이러한 목적에 저해되는 행위도 제명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사전적 의미에 따르면 신용은 믿음성의 정도를 의미한다”며 “A씨의 성추행으로 조합의 신용을 잃게 했다면 경제적 신용 하락 여부와 관계없이 제명 사유가 발생했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런데도 제명이 무효라고 판단한 원심(2심)엔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다시 판단하도록 사건을 광주고법에 돌려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