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과수, 2019년~2023년 급발진 감정 364건

급발진 인정 건수는 ‘0’…EDR 신뢰성 문제 여전

일각선 ‘국과수 감정’ 기피하는 분위기도 관측

“베테랑이 교통사고 더 많이 낸다”…15년차 60% vs 1년차 2.5%
2일 오전 전날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한 서울 시청역 인근 교차로에서 경찰이 완전히 파괴된 차량 한 대 주변을 통제하고 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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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이용경 기자] 최근 5년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서 급발진 의심 사고 감정이 이뤄진 360여건 가운데 차량 급발진이 인정된 사례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청역 역주행 사고 운전자의 급발진 주장이 아직까지 설득력을 얻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다만 일각에선 국과수 감정 결과를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과수 아닌 제3의 공신력 있는 기관이나 감정인을 찾는 경우도 관측된다.

9명의 사망자와 7명의 부상자를 낸 시청역 역주행 사고 운전자 차모(68)씨는 지난 4일 진행된 첫 경찰 피의자 조사에서도 사고 당시와 마찬가지로 ‘급발진’을 사고 원인이라 재차 주장했다. 현재 경찰은 정확한 사고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조사를 진행하는 한편 차씨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

경찰은 가해 차량인 제네시스 G80과 피해 차량인 BMW, 소나타의 블랙박스 영상, 호텔 및 사고 현장 주변의 CCTV 영상 등을 국과수에 보내 정밀 감식·감정을 의뢰한 상태다. 특히 경찰은 G80의 액셀 및 브레이크 작동 상황이 저장된 EDR(사고기록장치) 자료를 국과수에 보냈는데, 앞서 EDR 기록을 자체 분석한 경찰은 운전자 차씨가 사고 직전 액셀을 강하게 밟았다는 1차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지금껏 국과수 감정에서 단 한 번도 차량 급발진이 인정된 경우는 없었다. 국과수 통계인 ‘2019~2023년 급발진 의심 사고 관련 감정 건수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에는 117건의 급발진 의심 사고에 대한 국과수 감정이 이뤄졌다. 감정 건수는 2019년 58건에서 2020년 57건, 2021년 56건, 2022년 76건으로 줄곧 증가했지만, 그 가운데 급발진이 인정된 건수는 한 건도 없었다.

더구나 ECU(전자제어장치) 소프트웨어 결함 가능성에 따른 EDR 기록의 신뢰성 문제는 지속해 논란인 상황이다. 이 때문에 이번 시청역 역주행 사고처럼 다수의 인명 피해를 낸 경우는 아니더라도, 차량 급발진 사고를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국과수 감정을 기피하며 제3의 기관이나 감정인을 통해 급발진 여부 조사를 별도 의뢰하는 경우가 속속 관측되고 있다.

지난 4월 서울 여의도의 한 아파트 단지 주차장에서 입주민의 벤츠 차량을 빼주다 12중 추돌 사고를 낸 아파트 경비원 안모 씨(77)는 차주인 해당 입주민과 함께 차량 급발진 사고를 주장하며 메르세데스벤츠와 벤츠코리아,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당초 12중 추돌 사고를 조사했던 경찰은 급발진 여부를 밝히기 위해 국과수에 감정을 요청한 상황이었으나, 안씨 측 변호사는 지금껏 급발진 인정 사례가 한 차례도 나오지 않은 국과수 감정을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해 소송과 동시에 증거보전 절차를 신청했다.

이에 따라 소송에선 국과수 감정 결과가 아닌, 법원이 선정한 감정인의 감정 결과에 따라 급발진 여부 판단이 이뤄지게 됐다. 현재 이 재판은 독일에 있는 벤츠사에 소장 송달이 길어지면서 기일 지정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일부 전문가들은 국과수 감정을 보다 체계적으로 보완하거나 이 같은 감정을 도맡을 독립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12중 추돌 사건을 대리하고 있는 하종선 법률사무소 나루 변호사는 “차량 소프트웨어와 관련된 자료를 분석하고 검증해 낼 수 있는 인력과 시설을 갖춘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처럼 한국도 국토교통부로부터 독립된 행정위원회를 신설할 필요성이 있다”며 “소프트웨어 설계를 분석해 낼 수 있는 기관을 신설해 사고 원인을 정확하게 밝혀내고 차량 소비자들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우게 될 가능성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