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 지속에 가격 하락·환차손
美 달러화 강세에 160엔 돌파 전망도
미 Fed 금리인하 ‘피봇’ 기다려봐야
[헤럴드경제=유혜림 기자] 일본 엔화가치가 다시 달러당 160엔대 코앞까지 추락하자 일본에 투자했던 ‘일학개미’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이달 들어 엔화에 베팅하는 상장지수펀드(ETF)뿐 아니라 일본 주식 펀드에도 매도세가 이어지고 있다. 통상 엔화 가치가 바닥을 찍을 때마다 저점 매수세가 몰렸는데, 최근 흐름은 엔저 현상이 길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2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개인투자자들은 이달 들어 24일까지 TIGER 일본엔선물 ETF를 21억9700만원어치 순매도했다. 지난달 31억5280만원어치 순매수한 행보와는 대조적이다. 이 상품은 국내에서 엔화에 투자할 수 있는 유일한 ETF로 엔선물지수를 추종한다. 해당 ETF의 최근 3개월 간 수익률(-2.24%)은 마이너스를 나타내고 있다. 엔·달러 환율이 전날 장중 160엔선(159.9엔)에 육박하며 2개월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오를 만큼 초약세를 이어간 탓이다.
일본 증시에 상장된 미 장기채에 투자한 일학개미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현재 국내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보유한 일본 종목은 ‘아이셰어즈 미국채 20년만기 엔화 헤지 ETF’로, 7억7211만달러(약 1조713억원)에 달한다. 이 상품은 엔화로 만기 20년 이상의 미국 초장기채에 투자할 수 있어 향후 미국의 금리가 내려가면 채권 가격 상승과 더불어 환차익까지 노릴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투자자들이 대거 몰렸다.
그러나 ‘슈퍼 엔저’ 현상에 일학개미들의 평가손실이 커지고 있다. 엔·달러 환율은 이미 지난달 16일부터 심리적 마지노선인 155엔을 넘어서더니 전날 장중에는 일본 금융당국의 개입 구간으로 알려진 160엔선(159.92엔)까지 육박했다. 일본 당국은 구두 개입에 나섰지만 엔화는 이날 오전 8시께 159.7까지 오르면서 꺾이지 않는 모습이다. 실제 ‘아이셰어즈 미국채 20년만기 엔화 헤지 ETF’ 수익률은 올 들어 7.21% 떨어졌는데, 환차손까지 포함하면 원화 기준 손실은 더 늘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역대급 엔저 현상이 장기적으로 지속하자 일학개미들도 증시를 떠나는 모습이다. 그간 투자자들은 추후 엔화 가치 상승을 기대하고 환노출형 상품을 사들였는데, 엔저 현상에 최근 일본 증시까지 횡보장을 거듭한 탓이다. 이달 들어 ▷ARIRANG 일본반도체소부장Solactive(-78억9400만원) ▷TIGER 일본니케이225(-45억3000만원) ▷TIGER 일본반도체FACTSET(-43억3000만원) 등 순자산이 감소했다.
엔화 약세는 일본 증시도 압박하는 모습이다. 해외 ‘큰손’들의 이탈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일본 도쿄증권거래소에서 해외투자가들은 6월 둘째 주(10~14일)까지 4주 연속 순매도를 이어갔다. 지난해 9월 이후 최장 기록이다. 일본 증시의 투자 매력을 높이던 엔화 약세 역시 BOJ의 통화정책에 불확실성을 더하며 시장 경계감을 키웠다는 분석이다.
일학개미들의 시선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시기에 가 있다. 외환시장에서 엔화 가치 약세가 계속되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미·일의 금리 차로 엔을 팔고 달러를 사려는 움직임이 강하기 때문이다. 일본은행의 긴축 강도가 예상보다 강하지 않은 만큼 연준 동향에 촉각을 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엔화 약세 현상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하연 대신증권 연구원은 “시장 기대와 달리 일본은행이 구체적인 양적긴축(QT) 방안 발표를 7월로 미룬 상태에서 미국 금리 인하 지연 우려, 유럽 정치 불안이 확대되며 엔화 약세가 재개됐다”며 “일본 당국 개입이 예상되나 일시적으로 160엔 돌파 가능성도 열어둘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