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위법 경계선상' 간호사 진료지원 제도화
의협·약사회 즉각 반발…간협 “국민에게 의료정상화 희망”
[헤럴드경제=박로명 기자] 여야가 간호사의 진료지원(PA) 업무를 제도화하는 간호법안을 잇달아 내놓자 의·약사단체와 간호사단체가 곧바로 상반된 입장을 내놓으며 보건·의료직능 간 갈등이 재점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의·약사 단체는 해당 법안이 타 직능의 고유한 업무를 침범한다고 반발한 반면에 간호사단체는 의정갈등 상황에서 의료정상화의 희망을 보여준다고 환영했다. 시민사회에서는 이 법안이 자칫 직능 간 갈등을 초래해 간호법안 제정을 위한 정상적인 논의를 가로막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23일 정치권과 보건의료업계에 따르면 국민의힘은 지난 20일 '간호사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간호법)을 당론 발의했다. 이 법안은 의사 인력이 부족한 현실을 고려해 전문 간호사뿐 아니라 일반 간호사도 일정 요건 아래 진료지원(PA)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지난 19일 간호법안을 발의하고 20일 의원총회를 통해 간호법안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간협은 숙원이었던 간호법안 발의를 두고 "의사들의 집단 이기주의에 불안한 국민에게 의료 정상화의 희망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의사와 약사 단체는 실제로 간호사 업무 범위를 문제 삼아 즉각 간호법안 철회·수정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여야의 간호법안이 "특정 직역의 권리와 이익만을 대변하는 간호사 특혜법"이라고 반발했다.
아울러 "간호법안은 전문간호사의 무면허·불법 의료행위를 조장하고, 헌법상 포괄 위임 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며 "전문간호사와 간호사에게 현행 의료법 체계를 벗어난 무면허 의료 행위를 하게 하는, 국민 건강을 외면한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의협은 "간호직역을 포함한 모든 보건의료 인력의 처우 개선이 필요한 것은 인지하고 있다"며 "소모적인 분쟁만 야기하는 간호법 논의를 중단하고, 보건의료 인력 모두의 처우 개선을 위해 국회와 정부가 나서라"고 요구했다.
대한약사회는 "보건의료인 각자의 면허 체계 안에는 독자적인 업무 범위가 있다"며 "국민의힘 법안은 간호사가 진료 지원 업무를 수행하는데 타 직능의 고유 업무에 해당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어 또다시 불필요한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간호법은 간호 업무와 간호사 인력 지원을 위한 체계를 마련하기 위한 것인데 타 직능과의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조문이 들어가는 것은 입법 과정을 저해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약사회는 "간호사법의 제정 의도가 다시 한번 보건의료계의 직능 갈등으로 퇴색되지 않고 국민 건강을 위한 법률이 되기 위해 국회에서 세심하게 검토해 달라"고 촉구했다.
정치권이 간호사법을 잇달아 다시 내놓은 이유는 최근 전공의 사직으로 인한 의료 공백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PA 간호사를 제도화하겠다는 의도다.
그간 '임상전담 간호사'라고도 불리는 PA 간호사들은 병원의 요구에 따라 수술장 보조, 검사시술 보조, 응급상황 시 보조 등 위법과 탈법의 경계선상에서 의사의 일부 역할을 대신해왔다. 법안이 통과되면 법적으로 인정받는 간호사의 업무 범위가 더욱 명확해질 수 있다.
그러나 PA 간호사가 오히려 직능 간 갈등을 유발해 보건의료업계의 혼란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시민단체 건강돌봄시민행동은 이날 낸 성명에서 "간호사와 다른 직능 간 갈등을 초래할 것"이라며 "현행 의료법·약사법·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과 상충해 대다수 직능과의 갈등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단체는 "의료기사 업무인 검사, 의사 업무인 진단, 약사 업무인 투약 등 면허 업무 침해를 허용했는데 어떤 직능이 보고만 있겠나"라며 "이러한 입법은 직능 간 갈등을 부추겨 오히려 간호법 제정을 위한 정상적인 논의를 가로막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