㉙ 충북 단양 구인사(救仁寺)
대한불교 천태종 총본산
정용식의 내 마음대로 사찰 여행
사찰은 불교의 공간이면서, 우리 역사와 예술의 유산입니다. 명산의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사찰들은 지역사회의 소중한 관광자원이기도 합니다. 치열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휴식을 얻고자 할 때 우리는 산에 오르고 절을 찾습니다. 헤럴드경제는 빼어난 아름다움과 역사를 자랑하는 사찰 100곳을 소개하는 ‘내 마음대로 사찰 여행 비경 100선’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휴식을 위해서, 또는 수양을 위해 절을 찾는 이들이 많다.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사찰이 전국에 100여곳쯤 된다. 누군가는 수행 체험 프로그램을 기대하기도 하고 고즈넉한 자연 속 절에서 휴식을 얻고자 하는 사람도 있다. 십수년 전 여름, 혼자 강원도를 유랑하다 유명세를 탄 백담사에 들러 묵으려 했으나 이미 만석이라, 우리나라에서 최대의 절이라고 소문난 단양 구인사로 발길을 돌렸던 적이 있다. 큰절답게 숙소가 많아 휴식 목적으로 이틀간 머물며 소백산 기운을 받았다. 이번에 충북 단양 구인사를 두 번째로 찾았다. 그 사이에 국내 최대 규모라는 성보박물관(불교천태중앙박물관)이 절 초입에 들어서 있었다.
구인사는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사찰이다. 절 초입에서 작은 셔틀버스를 타고 일주문과 천왕문, 템플스테이 숙소를 지나 종무소 앞까지 갔다. 보행로도 잘 정비된 덕에 오르막길을 20여 분 걸어갈 수도 있다.
중국에 온 듯…이색적 한국 최대 사찰
구인사는 소백산 백자동(栢子洞) 계곡에 자리 잡은 절로, 천태종의 총본산이다. 원각 상월(圓覺上月, 1911~1974)스님이 1945년 5월 ‘억조창생구제중생 구인사(億兆蒼生救濟衆生救仁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 당시엔 칡넝쿨을 얽어 만든 초가 법당이 절 건물의 전부였으나 현재는 한옥 기와를 얹은 대형건물 50여 동이 좁은 계곡을 따라 빼곡히 들어찰 정도로 커졌다.
현대에 와서야 설립되고 융성한 절이어서 건물 대부분이 콘크리트 양식을 바탕으로 큼직하게 지어졌다. 단청을 비롯한 건물의 장식적 요소들도 여느 고찰들과 견주면 찬란하며 어딘가 이국적인 인상을 준다. 첫 방문자들은 소백산 계곡에 웅장한 건축물들이 들어선 모습에 놀라며, 마치 중국의 어느 절에 와 있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5층짜리 대법당 설법보전(說法寶殿)에만 1만 명이 동시에 들어간다고 하고, 전체 절 건물을 통틀어 5만6000여 명을 한꺼번에 수용 가능하다고 한다.
절의 가장 높은 지점에서 아래를 보면 울창한 산과 수십 동의 건물이 중첩된 풍광을 만끽할 수 있다. 구인사가 자리 잡은 터는 풍수지리적으로 금계포란(금빛 닭이 알을 품음)형의 명당으로 여겨진다. 설법보전과 내부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광명당(대강당)을 비롯해 관음전, 삼보당, 천태역대조사전, 설선당, 향적당, 총무원 청사 등이 콘크리트 계단으로 이어진다. 깊은 계곡의 산세를 훼손하지 않고 제한된 부지 안에서 절을 확장하다보니 시각적으로 유난히 더 건문들이 커보이는 느낌이다.
설법보전은 5층에만 법당이 있고 나머지 층에는 승려와 일반 신도들을 위한 수행처, 기도실이 마련돼 있다. 일부 불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은 기도실과 강당 등으로 활용된다. 지금의 설법보전 자리에는 80여년 전 상월스님이 지은 최초의 법당, 초가집이 있었다.
큰 절임에도 법당을 제외하곤 불상을 보기 힘든 점도 독특하다. 대신 사천왕상이나 코끼리탑 등의 불교를 상징하는 조각품이 여기저기 많이 있다.
천태종은 토속신앙을 배척한다. 이에 산신각, 칠성각 등이 없고 여러 부처님과 더불어 천태종의 역대 법사들을 중요하게 모신다. 천태종 총본산으로서 구인사는 기도 열기가 높아 말사 신도들이 많이 찾아오기도 해서 기도실인 설법보전의 3·4층은 주말마다 불자로 가득 찬다고 한다.
절을 거닐다 보면 장독대를 보게 된다. 절에는 된장, 고추장이 익고 있는 독이 300여개가 넘는다. 상주하는 수백 명의 스님뿐 아니라 신도와 등산객 등 공양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단 얘기다. 예전에 방문했을 때 점심 공양만 수천 명, 아침·저녁엔 수백 명이 식사하는 걸 보고 놀란 기억이 있다. 공양은 나물을 얹고 고추장에 비벼먹는 비빔밥인데 재료는 대부분 농사지어 얻은 소출로 충당한다고 한다. 숙박하며 기도하는 신도들이 많아 24시간 개방되는데 간혹 휴대전화 전파가 끊기는 곳도 있었다. 창건한 지 60여년 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단일 사찰로는 국내 최대의 신도 수를 보유하고 있는 구인사는 단일체계의 400여곳의 사찰과 300만명 이상의 신도를 거느리고 있다.
구인사 역대조사전이란 건물에는 한국 천태종의 삼존조사(불교의 법맥을 잇는 중요한 승려를 뜻하는 말)가 봉안되어 있다. 용수보살(龍樹菩薩), 천태 지의(天台智顗)대사, 대각국사 의천이다. 지의대사의 오른쪽으로 혜문(慧文)과 혜사(慧思) 등 중국 천태종의 16조사가, 의천국사의 왼쪽으로 제관(諦觀) 등 한국 천태종의 17조사가 봉안되어 있다.
중국 천태종은 597년 지의대사가 교종과 선종을 하나로 융합해 개창했다. 천태 지의를 ‘천태대사’라고도 불렀고, 종문의 이름도 천태종이라 했다. 11세기 고려 문종의 넷째 아들인 대각국사 의천이 송나라에 유학하여 천태종 고승들을 만난 뒤 돌아와 1097년 해동 천태종(海東 天台宗)을 창종했다. 그러나 조선 세종 때 불교종파를 통폐합하면서 천태종은 선종에 폐합되어 사라졌고, 숭유억불정책을 펼친 조선 중후기까지 부흥하지 못하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광명전 위쪽 광장에 들어서면 금빛으로 빛나는 3층 건물인 대조사전이 나온다. 금박 단청을 입은 화려하고 인상적인 건물이다. 건물 외면은 3층처럼 보이나, 내부는 통층 형태로 법주사 팔상전의 구조와 닮았다. 건물 안에는 창건주인 상월좌상을 두고 있다. 구인사의 중심 전각으로 전통건축에 해박한 장인들이 건축에 참여했다. 특별히 개발한 금빛 기와를 사용해 지금과 같이 화려하고 웅장한 위용을 갖췄다. 대조사전 앞 광장 전체도 각종 불교 상징 조각물들이 자리 잡고 있어 방문객의 눈을 즐겁게 한다.
상월스님은 1911년에 태어나 15세에 출가했고 중국과 티베트 곤륜산, 오대산의 문수도량과 아미산의 보현성지 등 3년간 중국을 순례했다.
천태종과 한국불교
천태종은 1966년 8월 30일 애국불교·대중불교·생활불교라는 3대 지표와 종단설립 요건을 갖춰 총무원과 종 의회를 구성하고 종헌, 종법을 제정한 후 중창을 선포했다. 1967년 종단을 정부에 등록하고 1969년 중앙신도회를 구성해 과거의 천태종을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상월원각대조사를 중창조로 삼았다. 상월조사는 1974년 6월 17일 세수 64세, 법랍 50세로 입적했다. 현재 구인사 주봉인 수리봉 정상부에 지어진 ‘적멸궁’에 모셔져 있다. 그의 유언에 따라 매장됐다.
천태종은 부처님의 40년 설법을 담은 법화경(묘법연화경)을 근본경전으로 삼고 구인사를 총본산으로 하여 2대 종정 남대충 대종사(임기 1974~1993)와 3대 종정 김도용 대종사(1993~현재)가 뜻을 받들어 현대의 대한불교 천태종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
이 불교 종단은 스스로 복을 짓는 적극적인 태도를 지향한다. 재가자(일반불자)들도 스스로 깨달음을 추구하는 동시에 중생 구제의 선업을 쌓으면 복을 받는다고 가르친다. 1990년대까지는 승려들에게도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수행하는 주경야선(晝耕夜禪)의 실천을 강조하며 자립적 사원경제를 운영했다. 여승들은 삭발하지 않으며 화장하지 않고 매장하는 풍습을 지킨다.
불교는 참선과 불경에 대한 구체적인 해석과 실천론의 차이로 여러 종파로 나뉜다.
1967년 결성된 한국불교종단협의회는 비구승(결혼 불가) 중심의 조계종·천태종·관음종, 대처승(아내를 둠) 중심의 태고종·미타종·법연종·진각종 등 30개 종단으로 구성됐다. 한국 불교를 이끄는 대표적인 종단인 조계종은 약 3000여 곳의 사찰과 2000만 명의 신도를 두고 있다.
조계종은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이 창시했는데 ‘먼저 참선을 통해 인간의 마음이 곧 부처라는 것을 깨닫고 난 뒤에 수련을 꾸준히 한다’는 돈오점수(頓悟漸修) 선종 사상을 바탕으로 ‘금강경’을 근본경전으로 한다. 천태종은 ‘경전의 가르침과 단박에 얻은 깨달음을 같이 수양한다’는 교관겸수(敎觀兼修) 교종 사상을 바탕으로 법화경을 근본경전으로 한다. 참선과 불경을 중시하는 것은 두 종단의 공통점이다.
태고종은 태고 보우국사를 종조로 하여 1970년 창시됐다. 대처승 종단으로 1940년 창종된 미타종, 1992년 법연사를 창건하고 창종한 법연종, 머리를 깎지 않은 밀교계 대처승 중심의 진각종은 1963년 시작됐다. 관음보살을 본존불로 신앙하는 관음종은 1965년 창종되었고, 종단중 유일하게 비구니로만 구성된 보문종은 1966년부터 창시되었다.
주변의 관광 포인트
단양은 남한강과 그 지류 계곡의 기암이 만들어내는 비경으로 유명하다. 단양 내 8곳의 명소를 흔히 ‘단양팔경’이라 한다. 시간의 제약으로 팔경을 전부 방문하기 어렵다면 구인사 가는 길목 정자에서 잠시 남한강을 바라보는 것으로도 좋겠다. 구인사에서 10여분 내려오면 온달산성과 온달동굴 등이 있고 고구려 테마파크인 온달관광지도 있다. 여기서 ‘연개소문’, ‘태왕사신기’ 등 여러 사극을 촬영했다.
구인사 경내엔 시외버스 정류소가 있다. 여기서 버스를 타면 가까이는 단양공영터미널, 멀리는 동서울터미널까지 이동할 수 있다. 중앙고속도로 신림, 제천, 남제천, 북단양, 단양IC 다섯 군데 주변 관광지 표지판에 구인사가 포함돼 있어 외진 곳에 있는 절이긴 하나 찾아가기 어렵지 않다.
국내서 가장 큰 절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소백산 구인사를 방문하고 나니 불현듯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단어가 뇌리를 스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책 100권에 들어간 독일 출신의 영국 경제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에른스트 프리드리히 슈마허의 수상집 제목이다. ‘큰 것이 더 좋다’라는 물량주의와 속도주의, 규모의 경제를 지향해온 우리에게 ‘인간은 작은 존재이므로 작은 것이 아름답다’ 며 작은 것의 가치와 인간중심 사상을 제시하며 주목받았다.
글·사진 = ㈜헤럴드 정용식 상무
정리 = 박준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