팹리스 등 기업들 일본을 요충지로
日 정부 90조 투자로 반도체 강화
[헤럴드경제=김민지 기자] 일본 정부가 막대한 보조금으로 TSMC, 마이크론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가운데, 한국 반도체 기업들도 일본 반도체 시장 진출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일본의 반도체 재건 전략을 해외 진출 기회로 삼고 커져 가는 생태계에서 성장 가능성을 엿보는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일본에 진출한 주요 국내 반도체 기업은 오픈엣지테크놀로지, 텔레칩스, 가온칩스 등이다. 특히, 아직은 협소한 국내 시스템반도체 생태계 안에서 새로운 활로를 뚫어야 하는 팹리스(반도체 설계기업)나 IP 업체, 디자인하우스 업체들에게 일본 시장은 해외 매출 확대를 위한 요충지로 꼽힌다.
반도체 설계 지원을 담당하는 디자인하우스인 가온칩스는 2022년 말 일본 법인을 설립하고 사업을 확장 중이다. 최근 첫 성과로 일본 최대 반도체 상사 도멘디바이스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디자인하우스는 팹리스가 만든 설계도를 파운드리에 맞춰 기술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양쪽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문제는 국내 팹리스 시장이 아직 협소해 먹거리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때문에 가옵칩스는 대형 세트사가 직접 반도체를 설계하는 일본 시장을 공략했다. 소니, 파나소닉, 도시바, 후지쯔, 르네사스 등과의 협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일본 내 디자인하우스가 적다는 것도 이점이다.
국내 대표 차량용 반도체 팹리스 업체 ‘텔레칩스’는 일찌감치 일본에 지사를 설립하고 일본 매출 비중을 늘려오고 있다. 지난해 텔레칩스 해외 매출 비중은 36.5%를 기록했는데 이중 일본 시장 비중이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TSMC 공장 건설로 일본 내 반도체 생태계가 활성화되고 있어 더 큰 수혜가 예상된다.
국내 대표 IP(지적재산) 업체인 ‘오픈엣지테크놀로지’는 지난해 요코하마에 일본 지사를 설립하고, 현지 반도체 전문가로 꼽히는 타카시 야마다를 기술 영업·마케팅 총괄 이사(헤드)로 영입했다. IP 기업은 반도체 설계에 쓰이는 특정 기술 등 지적재산을 보유한 기업이다. 팹리스 업체들을 고객사로 두고 있다.
일본 정부는 자국 내 반도체 산업 부활을 위해 670억달러(약 90조원) 규모를 투자하고 있다. TSMC 공장을 유치한 데 이어 해외 팹리스 업체 영입과 첨단 반도체 R&D 거점 지원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일본 요코하마에 첨단 반도체 패키징 기술 연구센터 ‘어드밴스드 패키징 랩(APL)’을 신설하는 등 2028년까지 400억엔(약 3637억원)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다. 총 2000평 부지로 조성될 예정이며, APL에서는 반도체 패키징과 소부장 기술 개발을 추진한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최대 200억원을 지원한다.
AI 반도체 붐으로 첨단 패키징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소부장 기술 발전에 대한 필요성도 높아지고 있다. 패키징은 반도체 칩 여러개를 수직으로 쌓거나 수평으로 연결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AI 메모리인 HBM(고대역폭 메모리)에도 패키징 기술이 중요하며, 이를 그래픽처리장치(GPU)와 연결해 AI 반도체로 만드는 과정에서도 패키징이 쓰인다.
패키징 기술이 고도화되기 위해서는 재료나 소재, 공정에 사용되는 부품 및 장비의 혁신이 필수적이다. 삼성전자가 소부장 강국으로 꼽히는 일본에 R&D 거점을 마련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