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실손 가입연령 75세 제한인데
유병자실손만 가입·보장연령 확대
2014년 출시후 10년동안 개편 전무
고령층 의료비 보장 도입 취지 퇴색
정부가 과잉진료와 급격한 보험료 인상의 주범으로 꼽히는 실손의료보험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을 예고했다. 4000만명이 가입해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리는 실손보험이 고금리·고물가 등 대내외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국민의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제도개선을 하겠다는 게 골자다.하지만 정작 실손보험이 필요한 고령층, 유병자 가입자는 보장 사각지대에 몰렸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실손보험가입률은 60대 66.3%였다가 70대에 26.5%로 크게 줄어든다. 80세 이상은 1.1%에 불과했다.
특히 한국은 2025년 초고령사회로 진입을 앞두고 있어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의료비 때문에 파산하는 노년층이 증가할 수 있다는 우려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65세 이상의 건강보험 진료비 지출액은 2018년 31조8235억원에서 2022년 45조7647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노후실손보험·유병력자실손보험이 따로 있지만, 이들 상품 또한 비정상적인 비급여 구조로 멍들어가고 있다. 처음 도입 취지와 맞지 않게 보험사들과 소비자들의 외면으로 시장 축소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실손보험 개편에 맞춰 보장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위한 고민도 함께 할 때다.
“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고령층의 의료비 보장을 목적으로 출시된 ‘노후실손의료보험(노후실손)’의 존재 의미가 퇴색하고 있다. 2014년 출시 이후 10년 동안 한 번도 개편되지 않아 보험사와 가입자 모두에게 외면을 받고 있다. 올해 유병자 실손보험이 90세까지 확대된다면 노후실손의 경쟁력은 더욱 낮아질 전망이다. 일반 실손보험도 가입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한데, 단지 연령이 높아 가입하지 못하는 가입자들은 어쩔 수 없이 비싼 유병자 실손을 가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10년동안 그대로 노후실손보험, 개편 의지 없나
16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실손보험은 크게 개인실손, 단체실손, 노후실손, 유병력자실손으로 나뉜다. 개인실손은 건강한 0세~70세의 소비자가 개별적으로 심사를 거쳐 가입하는 상품으로 통상적으로 가입하는 일반실손이고, 단체실손은 직장 등에서 개별 가입자에 대한 심사 없이 단체로 가입하는 상품이다. 노후실손은 건강한 50세~75세 고령층이 가입하는 상품으로 소비자의 자기부담이 다소 높지만 보험료는 저렴하다. 유병력자실손은 가입심사가 완화돼 경증 만성질환자가 가입 가능한 실손이다.
이 중 노후실손보험은 2014년 8월 고령층의 의료비 보장을 위해 출시됐다. 가입 연령을 65세에서 75세로 늘리고, 고액 의료비 보장을 중심으로 보장금액 한도를 확대했다. 특히 자기부담금이 일부 늘어난 대신 기존 실손의료보험료의 70~80% 수준에서 가입할 수 있게 해 장벽을 낮췄다.
하지만 시장 규모는 여전히 미미한 실정이다. 노후실손보험 보험금 지급액은 2022년 기준 148억원에 불과해 전체 12조8868억원의 0.11% 수준이다. 시장성이 떨어져 보험사들과 가입자 모두에게 외면받고 있다.
고령층 대상이지만 가입 나이가 75세까지로 한정돼 있고, 인수 심사가 일반 상품과 다르지 않아 가입이 쉬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 상품인 2~3세대는 55~60세까지 가입 연령 제한이 있었지만, 최근 판매하고 있는 4세대 일반 실손보험은 가입 연령이 70세까지 높아져 노후실손에 가입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손보업계 관계자는 “노후실손보험은 가입심사에서 문제없을 정도로 건강한 편인데 단순히 연령 때문에 가입이 어려운 소비자들이 가입할 유인이 있었지만, 현재는 일반실손보험 대비 가입가능 나이가 5세 차이밖에 나지 않아 사실상 의미가 없어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손보업계도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해 지난해 초 노후실손보험 개편을 계획한 바 있다. 고령자가 병원에 갈 때 동행해 행정 업무를 대행하고 정서적 안정감을 제공하는 ‘병원 에스코트’, 홀로 지내는 노인의 안부를 확인하고 이상 징후 등을 살피는 ‘케어콜’ 특약 등을 고려했다. 하지만 특약 개발이나 가입 연령 확대만으로는 가입 메리트를 키우기 어렵다고 판단해 결국 없던 일로 됐다.
나이 많으면 실손보험도 못 드나요?…보장 사각지대 몰리는 노년층
이에 노후실손보험의 존속가치는 점점 더 사라지고 있다. 올해 보험사들은 노후실손보험료를 20%대까지 올렸다. 손해보험협회 공시실에 따르면 DB손해보험은 24.4%를 인상했고, 삼성생명은 19.9%를 올렸다. 이 밖에도 메리츠화재 15.4%, 롯데손보 17%, 삼성화재 8.8%, 현대해상은 7.7% 올려받았다. 손해율은 경과 손해율 기준 60~80%대다. 적자는 보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일반 실손보험보다 손해율(받은 보험료 대비 지급한 보험금)이 양호한 노후실손보험의 두 자릿수 인상률은 과도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당국의 주도로 출시됐지만, 실효성이 떨어지자 뒷전으로 밀린 전형적인 ‘탁상행정의 결과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유병자실손보험이 개편되면 노후실손을 찾는 가입자들은 더욱 줄어들 전망이다.
이병래 손해보험협회 회장은 올해 기자간담회에서 “유병력자 실손 가입률을 높이고 소비자 편의가 확대될 수 있도록 상품 개편을 지속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손보협회는 만성질환자가 투약 여부 심사 없이 가입할 수 있도록 유병자실손보험을 개편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노후실손보험의 시장이 축소돼 모수가 작아지면 비급여 지급 상승에 따른 손해율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라며 “대부분 고령자는 병력이 있을 테니 유병자실손을 개편하면 가입 메리트는 생길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보험료 수준은 높을 수 있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유병자실손 개편을 보다 폭 넓게 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