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에는 전력 수요 ‘마이너스’
전력회사가 전기 사들여 버리는 셈
가파른 보급 속도에 ESS 보급 못 따라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전세계가 기후 변화의 재앙을 막기 위해 신재생에너지 전환에 총려글 다하고 있는 가운데 신재생에너지 선두 지역으로 꼽히는 미국 캘리포니아는 너무 많이 보급된 태양광 발전 시설로 골치를 앓고 있다. 각 가정이 태양광으로 만들어내는 발전량이 많다보니 전기 수요가 많지 않은 봄철에는 전기가 버려지고 있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2022년 한해 동안 캘리포니아 주에서 240만메가와트(㎿)의 전기가 버려졌는데 그중 95%가 태양광 발전으로 생산된 것이었다. 이는 1년 동안 캘리포니아 주에서 생산되는 발전량의 1%에 해당하는 양으로 무시할 수 없는 규모다.
버려지는 전기는 대부분 태양이 강해지는 낮시간 주 내 주택 옥상에 설치된 태양광 전지판에서 생산된다. 국립재생에너지 연구소는 태양에너지가 널리 보급된 상황을 가정해 모델링한 결과, 이미 주어진 전력망에 태양광 발전이 대규모로 보급됐을 때 순부하(전력수요에서 재생 가능 에너지를 뺀 수치)는 ‘U’자 형태를 띈다는 것을 발견했다. 태양광 발전으로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전기 대부분을 생산할 수 있는 한낮에는 전력 수요가 제로를 넘어 마이너스로 내려가면서 전력회사가 각 가정에서 사들이는 전기가 더 많아지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오리 곡선(duck curve)’로 불렀다. 곡선의 모습이 마치 오리의 배 형상 같다는 의미다.
태양광 발전 보급이 빨라질수록 오리곡선은 거대하고 깊은 협곡 모양을 띄게 됐다. 문제는 초과 생산된 전기는 저장되지 못하고 버려진다는 것이다. 아직 에너지저장장치(ESS) 보급이 미미해 남은 전기를 저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의 전력망 운영사 CAISO의 클라이드 루턴 재생에너지 통합 책임자는 “주 정부가 전력망에 더 많은 태양광 발전을 공급할 준비를 해왔지만 주거용 태양광이 들어올 속도를 과소평가했다”고 전했다. 2014년 2.26㎿에 불과했던 캘리포니아 주의 태양광 발전 설비 용량은 10년만에 14.96㎿로 6배 이상 증가했다.
결국 주정부는 옥상에 태양광 패널을 가진 주민이 전력망에 전기를 판매할 때 지불하는 비용을 줄이는 방안을 택했다. 기존에는 1킬로와트시(㎾h)당 0.2~0.3달러를 지불했지만 지난해부터는 버려지는 전기는 제외하고 실제 전력망에 도움이 되는 전기에 대해서만 보상하기 시작했다. ESS를 설치해 전력 수요가 높은 초저녁이나 아침에 전력망에 전기를 공급하면 보다 많은 돈을 돌려받을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주민들과 태양광 설비 업자들은 이같은 변화로 태양광 보급 사업이 위축될 수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컨설팅 업체 우드 맥켄지는 올해 캘리포니아의 주거용 태양광 설치가 약 40%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일부 주 정치권도 이번 결정을 뒤집으려고 하고 있다.
CAISO는 잉여 전력을 인근주에 판매하기 시작했고 ESS 보급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인근 지역으로 전기를 송전하기 위한 송전선 확충에도 착수했다.
최근 바이든 행정부는 저소득층 90만가구에 옥상 태양광 설비를 보급하기 위해 70억 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한바 있다. WP는 “캘리포니아의 경험은 재생에너지가 증가함에 따라 각 주 정부가 어떤 대비를 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