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중공업 대덕연구소 르포
2019년부터 자율운항·무인화 본격 개발
지난해 1500㎞ 구간 선박 자율운항 성공
“가장 앞선 유럽과는 3년 미만 기술 격차”
〈그 회사 어때?〉 세상에는 기업이 참 많습니다. 다들 무얼 하는 회사일까요. 쪼개지고 합쳐지고 간판을 새로 다는 회사도 계속 생겨납니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도, 수년을 하던 사업을 접기도 합니다. 다이내믹한 기업의 산업 이야기를 현장 취재, 데이터 분석 등을 통해 쉽게 전달해드립니다.
[헤럴드경제(대전)=한영대 기자] 최근 찾은 대전시 유성구에 위치한 삼성중공업 대덕연구소 디지털동. 가상현실(VR) 등 각종 선박 스마트 장비가 전시된 공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단연 ‘자율운항 선박 조종석’이었다. 핸들과 모니터가 설치돼 있는 등 자율운항 실증 선박에 있었던 조종석을 그대로 구현한 것이다.
모니터에는 실증 당시 선박이 자율운항 기술을 통해 이동한 경로, 센서를 통해 탐지한 다른 선박 위치 등이 상세히 표시돼 있었다. 김성준 삼성중공업 자율항해연구파트 프로(부장)는 “자율운항 선박은 센서를 통해 전달되는 정보 등을 종합해 주변 상황을 인지한 후 항해한다”고 설명했다.
조종석 바로 옆에는 ‘스마트십 컨트롤 센터’ 데모실이 꾸며져 있었다. 데모실에는 한 눈에 담기 힘들 정도로 큰 스크린과 조이스틱, 키보드 등이 설치돼 있었다. 스마트십 컨트롤 센터는 자율운항 선박이 해상에 있을 때 육상에서 간단한 조작을 통해 자율운항 선박 상황을 체크하는 역할을 한다. 김 프로는 “기술이 더욱 발전되면 회사에 있는 직원 1명이 여러 대의 자율운항 선박 상황을 점검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삼성중공업은 2019년부터 자율운항·무인화 기술을 본격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2010년대 초반부터 연구에 들어간 HD현대보다 시작이 늦었다. 삼성중공업은 HD현대를 추격하고자 시스템 개발에 더욱 집중했다. 오랜 연구 끝에 개발한 삼성중공업 스마트십 시스템 ‘에스베셀(SVESSEL)’은 빅데이터를 토대로 최적 운항 계획 수립, 선박 안전성, 연료 소모량 등을 알려 준다.
삼성중공업은 현재까지 총 4차례에 걸쳐 자율운항 실증에 성공했다. 지난해 6월에는 경남 거제에서 대만 가오슝까지 1500㎞에 이르는 한국·남중국해 구간에서 자율운항을 진행했다. 실험 당시 실제 선박과 90회 만났는데 안전 우회에 성공했다. 당시 자율운항에 나선 선박은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건조된 1만5000TEU(1TEU=6m 길이 컨테이너 1개)급 컨테이너선이다.
김 프로는 “처음에는 바다도 아닌 실내 수조에서 약 2m 크기의 모형선을 통해 자율운항 테스트를 시작했다”며 “현재 삼성중공업의 자율운항 기술은 HD현대랑 비슷한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국제해사기구(IMO)는 자율운항 선박을 총 4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1단계는 선원의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수준에 그치지만 마지막 4단계에서는 완전 무인화가 이뤄져야 한다. 삼성중공업은 현재 2단계(선원이 승선하지만 일부 자율이 가능하고 선박 원격 제어를 할 수 있는 수준)까지 개발을 완료한 상황이다. 무인화 기술 개발을 시작한 지 약 5년 만에 이룬 성과이다.
삼성중공업 자율운항 기술은 선주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김 프로는 “선주들로부터 먼저 연락이 오고 있다”며 “선주들이 삼성중공업 기술에 대해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중공업은 올해 건조하는 선박에 자율운항 기술을 적용할 예정이다. 이르면 2년 뒤 삼성중공업 자율운항 기술을 지닌 선박이 본격적으로 운항에 나서게 되는 것이다. 향후에는 자율운항 기술을 다른 조선사에도 판매할 계획이다. 자율운항 선박의 안전성을 우려하는 시선에 대해서는 “현재 해양사고의 약 80%는 사람에 의해 발생하고 있다”며 “자율운항 시스템이 선박에 안정적으로 적용되면 안전한 항해가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자율운항 기술을 개발하는 과정은 쉽지 않다. 김 프로는 “자율운항 기술이 더욱 완벽해지기 위해서는 다양한 환경에서 선박 실증이 이뤄져야 한다”며 “문제는 자율운항에 사용될 수 있는 선박은 제한적이고, 실증을 위해 선주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과정도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난관이 있음에도 자율운항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미래 선박 시장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서이다. 과거에는 선박을 납기 기간에 맞춰 건조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했다면, 현재는 선박에 적용될 수 있는 신기술에 대해 선주들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김 프로는 “시장은 변화하고 있는데 삼성중공업이 만약 해외에서 개발된 자율운항 기술에만 의존하게 된다면, 선주들이 삼성중공업을 찾지 않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삼성중공업 목표는 크게 2가지이다. 첫째는 자율운항 분야 선두 국가인 유럽과의 격차를 줄임과 동시에 후발주자인 중국을 따돌리고, 둘째는 IMO에서 규정한 4단계인 완전 무인화를 이루는 것이다.
삼성중공업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현재 국내 연안에 선박 11척(소형선 5척, 대형선 6척)을 대상으로 자율운항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지속적인 실험을 통해 선박이 마주할 수 있는 외부 변수를 최대한 많이 수집하기 위한 것이다.
김 프로는 “자율운항 분야에서 유럽이 우리나라보다 일찍 시작했지만, 현재 삼성중공업과 유럽 간 기술 격차는 3년 미만”이라며 “삼성중공업은 자율운항 분야에서 패러다임을 쫓는 걸 넘어 선도하는 기업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자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