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5개 손보사 실손보험금 통계 뜯어보니
치료목적 불분명한 비급여주사제 5년새 3.4배↑
비급여 항목 중 지급실손보험금 2위 됐을듯
독감유행 편승한 비싼 주사제 과잉처방이 문제
“실손보험 20만원 한도 맞춰 돈벌이 수단 활용”
손해 늘어난 보험사들, 보험사 지급심사 강화
금감원도 현황파악…“문제 인지하고 고민 중”
[헤럴드경제=강승연 기자] #. 직장인 A씨는 아침 출근길에 오한을 느껴 점심시간에 회사 근처 이비인후과를 방문했다. 급성 기관지염 진단을 받은 A씨는 복용약 처방을 기다리며 “수액 하나 맞고 가라”는 의사의 권유를 받았다. 치료 목적의 수액은 실손보험 처리가 된다는 설명에 수액을 맞았지만, 이후 실손보험금을 청구한 보험사로부터 수액 의료비는 보상이 안 된다는 안내를 받았다.
최근 독감 유행 등의 영향으로 비타민주사, 마늘주사 등 영양수액을 포함한 비급여주사제에 지급되는 실손의료보험금이 늘고 있다. 치료 목적이 크지 않은 비급여 항목으로 나간 비급여주사제 보험금만 최근 5년 사이 3배 이상 급증했을 정도다.
비급여주사제로 인한 실손보험금 누수가 심각하다고 판단한 보험사들은 관련 보험금 지급 심사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금융감독당국도 문제를 인지하고 대응방향을 고심하고 있다.
치료목적 불분명한 비급여주사제 실손보험금 5년새 3.4배↑
29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실손보험시장 상위 5개(삼성화재·현대해상·DB손해보험·KB손해보험·메리츠화재) 손보사가 지난해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 진료로 처방된 비급여주사제에 대해 지급한 실손보험금은 총 4143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해당 금액은 암 치료(C코드), 입원 의료비, 비급여주사료 5만원 미만 등 치료 목적이 분명한 경우는 제외하고, 면역력 증진 등 치료와는 직접적 관계가 없는 목적으로 처방된 비급여주사제만 취합한 것이다. 급여 항목과 더한 전체 비급여주사제 지급보험금은 4997억원에 달했다.
치료 목적이 불분명한 비급여 항목의 비급여주사제에 지급된 실손보험금은 매년 증가세다. 2018년 1202억원에서 2019년 1689억원, 2020년 2017억원, 2021년 2108억원, 2022년 2538억원, 2023년 4143억원으로 늘어났다. 최근 1년 사이 63.3%, 5년 사이 244.7% 폭증했을 정도다.
이들 5개사의 시장점유율이 2022년 기준 76.4%라는 점에 기반해 단순 계산해 보면, 지난해 비급여 항목 관련 비급여주사제에 지급된 업계 전체 실손보험금은 적어도 5400억원 수준일 것으로 추정된다.
비급여주사제 관련 실손보험금 지급액은 이미 2022년 4104억원으로 비급여 항목 중 물리치료, 백내장수술에 이어 3번째로 많았다. 최근 백내장수술 관련 지급보험금이 감소세임을 고려하면 지난해엔 역전하고 2위로 올라갔을 가능성이 있다.
독감 유행 타고 비싼 비급여주사제 처방…“돈벌이 수단 활용” 비판도
비급여주사제 관련 실손보험금이 이처럼 늘어난 데는 최근 독감 유행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5개 손보사가 지난해 호흡기질환과 관련된 비급여 항목에 지급한 실손보험금은 3686억원으로 1년 전보다 107.8% 급증했다. 이 가운데 독감 관련 비급여 항목 지급보험금은 931억원으로, 11배(1036.0%) 폭증했다.
여기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일상회복으로 마스크 착용이 줄어든 것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대비 호흡기질환과 독감 관련 비급여 항목 지급보험금 증가율은 각각 39.8%, 211.7%에 그쳤다. 감기 관련 비급여 항목 지급보험금도 2019년 대비 증가율(85.1%)보다 2022년 대비 증가율(155.7%)이 컸다.
보험업계에서는 최근 독감 유행에 편승해 비싼 비급여주사제를 과잉 처방하는 병원이 많아졌다고 의심하고 있다. 최근 독감 증세 때문에 내과에 갔다가 5만원짜리 수액을 맞은 30대 직장인 B씨는 “독감 검사 3만원에 수액 비용 7만원까지 10만원을 내고도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주변에는 20만원 넘게 냈다는 지인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독감 증세가 심해 영양제 처방이 필요한 환자가 있을 수 있는 만큼, 비급여 항목 관련 비급여주사제 지급보험금이 증가했다는 것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아니다”라며 “다만 코로나19가 끝나고 면역력이 약해져 독감·감기 환자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실손보험 통원한도 20만원에 맞춰 비급여주사제를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하는 병원들이 있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비급여주사제 과잉처방, 보험사·가입자 손해로 고스란히…금감원도 고민
비급여주사제 과잉처방은 고스란히 보험사의 손해로 이어지고 있다. 한 손보사의 경우, 지난해 호흡기질환 관련 손해액이 2109억원으로 전년 대비 107.2% 증가했다. 이 가운데 12세 이하 손해액은 124.1% 급증한 1380억원에 달했다. 2022년 손해액 증가율이 32.6%(12세 이하 51.2%)였던 것에 비해 상승 폭이 커진 것이다.
이에 보험사들은 최근 일제히 비급여주사제와 관련한 보험금 심사 강화에 나섰다. 비타민B·비타민C·아미노산 등 다빈도 사용 주사제에 대해서는 치료 목적이 불분명한 경우 의료비를 보상하지 않고 있다. 비급여주사제 과다처방으로 인한 보험금 청구를 모두 받아들이면, 실손보험금 누수로 이어져 가입자에게도 손해가 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비급여주사제 보험금 청구가 급격하게 늘어나 확인해 보니, 질병 치료 목적이 아니라 피로·숙취 해소를 위해 맞던 수액을 독감·감기 환자에도 처방하고 있었던 것”이라며 “관련 심사가 강화된 만큼, 병원에서 실손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며 수액을 맞으라고 권유하더라도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금융감독원도 현황을 파악하고 있다. 환자의 ‘의료쇼핑’으로 문제가 되는 도수치료처럼 모럴해저드(도덕적해이)로 볼 만한 사안인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심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고, 대응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