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진단 완화 수혜지역 하락세 여전

경매시장에선 평균 낙찰가율도 못미쳐

[헤럴드경제=박일한 선임기자] 지난 16일 서울북부지법 경매1계. 1992년 준공된 노원구 월계동 월계2단지 39㎡(이하 전용면적)가 경매에 나왔다. 감정가 4억8000만원인 이 아파트는 이미 3차례 유찰돼 2억4576만원을 최저가로 경매를 진행했다. 응찰자는 11명이나 몰렸다. 응찰자가 제법 많았지만 낙찰가는 3억520만원을 기록했다.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은 64%에 머물렀다.

정부가 재건축을 안전진단 없이 시작할 수 있도록 하는 등 ‘1.10부동산 대책’을 내놓았지만, 수혜 아파트 인기가 시큰둥하다.

21일 경매 정보업체인 지지옥션에 따르면 정부가 규제완화 대책을 내놓은 이후인 11일부터 일주일간 서울 경매시장에 준공된 지 30년 이상(1993년 이전 준공)인 아파트가 5건 낙찰됐는데, 평균 낙찰가율은 75.4%에 머물렀다. 최근(2023년12월) 서울 아파트 평균 낙찰가율(80.1%) 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경기도와 인천도 마찬가지다. 같은 기간 준공된 지 30년 이상인 경기도 아파트가 법원 경매시장에서 12건 낙찰됐는데, 평균 낙찰가율은 82%를 기록했다. 지난달 경기 아파트 평균 낙찰가율(84.3%) 보다도 낮다. 인천의 경우는 해당 아파트가 2건만 낙찰됐는데 평균 낙찰가율이 63%였다. 지난달 인천 평균 낙찰가율은 80.6%였다.

일반적으로 경매시장에서 낙찰가율은 집값의 바로미터로 통한다. 응찰자들이 향후 해당 단지 집값 전망을 예상하고 입찰가를 정하기 때문에 집값이 오를 것으로 전망되면 낙찰가율이 오르기 마련이다.

서울 및 수도권의 준공된 지 30년 이상인 아파트 단지 낙찰가율이 평균보다 떨어지는 건 향후 매매시장에서도 시세가 내려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정부가 준공 30년 이상인 아파트 재건축 사업에서 안전진단 절차를 간소화하기로 한 이후에도 수혜 단지 하락세가 계속되고 있다. 서울은 아파트 182만7000가구 중 27.5%가 준공 30년을 넘겼고, 노원·도봉구 아파트의 60% 가까이가 여기에 해당한다. 지난 14일 오전 서울 강북구 북서울꿈의숲에서 바라본 노원·도봉구 일대 아파트 단지의 모습. [연합]

범위를 조금 넓혀 올해 준공 30년(1994년 준공)된 아파트도 마찬가지다. 지난 16일 서울남부지법에선 1994년 지어진 강서구 방학동 장미아파트 40㎡가 경매에 나왔는데, 2명이 입찰해 낙찰가율은 58%(감정가 6억2900만원, 낙찰가 3억6400만원)에 머물렀다.

경매시장 뿐 아니라 매매시장에서도 규제완화 대상지역 아파트값은 별로 힘을 못받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정부가 서울에서 재건축 규제완화 수혜지역으로 꼽은 노원구(-0.03%), 강남구(-0.01%), 강서구(-0.03%), 도봉구(-0.03%)는 이번 주(15일 조사 기준)에도 모두 아파트값이 하락했다.

경기도에서도 수혜지역으로 지목된 안산시(-0.06%), 수원시(-0.03%), 광명시(-0.15%), 평택시(-0.1%) 등의 아파트값도 모두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중 광명시는 전주(-0.05%) 보다 낙폭이 3배나 커졌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재건축을 해도 돈이 안된다는 인식이 퍼져 있는 상태여서 지금은 안전진단 완화 같은 규제완화에 시장이 반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재국 금융연수원 겸임교수는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완화, 용적률 상향 등 사업성을 높일 수 있는 추가 대책이 없다면 당분간 규제완화가 집값을 움직일 동력이 되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