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집값 좌우할 5대 변수 진단 ⑤매수여력
가계부채 76% 고소득층, ‘시장 영향 제한적’
신혼부부 등 무주택자 주택구매력 회복
‘내집 보유한다’ 89.6%...주택보유의식 더 높아져
[헤럴드경제=박일한 선임기자] “집을 팔려는 사람만 많아요.” KB국민은행이 이달 중순 전국 회원 중개업소 6000여곳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2.7%가 이렇게 답했다. 매도자와 매수자가 비슷하다는 응답(15.7%)을 제외하면, ‘사려는 사람이 더 많다’는 응답은 1.5%에 불과했다. 이는 집값이 크게 떨어졌던 올 1월과 비슷한 상태다. 매수자들이 줄면 집값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주택시장에 집을 살 사람들이 사라졌다. 올해 중순까지 급매물을 사려고 돌아다니던 주택 수요자들이 8월 이후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거래량만 봐도 그대로 나타난다. 8월 3988건까지 늘었던 거래량은 9월 3400건, 10월 2337건, 11월 1812건, 12월 538건(27일까지 신고 기준) 등으로 계속 줄었다.
수요가 없으면 매물은 쌓인다. 부동산 빅데이터 기업 아실에 따르면 지난 11월 중개업소에 나온 서울 아파트 매물은 8만채 이상까지 폭증했다. 최근 전셋값 상승 분위기에 따라 전세로 돌리는 물건이 생기면서, 최근 아파트 매물수는 7만5000~7만6000채 수준이다. 연초 4만5000~4만6000채와 비교하면 3만채나 많다.
주택수요 움직임은 2024년 주택시장을 좌우할 가장 큰 변수다. 내년 서울 및 수도권을 중심으로 입주량이 급감하지만 주택 수요가 더 줄면 집값은 반등하기 어렵다.
내년 집값이 하락할 것으로 내다보는 전문가들은 2024년에 금리가 떨어지고, 각종 규제완화 정책이 시행돼도 매수세가 살아나긴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 가계부채가 역대 최대치로 치솟고, 무주택자들의 구매력이 최악으로 떨어진 상태여서 매수여력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실제로 가계부채 문제는 꽤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가계대출 규모는 11월 말 기준 1091조9000억원으로 올해만 33조9000억원 늘었다. 사상 최대 규모다. 이중 주택담보대출(전세자금대출 등 포함)만 845조3000억원이다. 전체 가계대출의 77%나 된다. 올해만 46조6000억원 많아졌다.
가계부채 증가는 정말로 매수세를 크게 약화시킬까. 결론부터 말하면 투자수요는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대부분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다만 실수요자들은 상황이 조금 다를 수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7월 발표한 가계부채 관련 자료(장기구조적 관점에서 본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과 영향 및 연착륙 방안)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소득 상위 20%에 해당하는 ‘5분위’가 우리나라 전체 가계대출의 53%를 차지한다. 4분위와 합하면 전체 가계부채의 76%가 상위 40%인 4·5분위 대출이다.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대출 접근성이 높고 대출규모도 훨씬 더 많아서다. 이에 비해 소득수준이 낮은 하위 40%인 1·2분위 대출 규모는 전체 가계부채의 11%에 불과하다. 3분위까지 합해도 26% 수준에 머문다.
이는 우리나라 가계부채 상태가 생각만큼 심각하지 않을 수 있다는 방증으로 평가된다.
한국은행은 “우리나라는 LTV(주택담보인정비율)가 서울의 경우 35% 수준으로 낮게 유지되고 있고, 대출 잔액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고소득 차주의 상환 능력이 양호하다”면서 “(높은 가계부채가) 자산가격 하락(집값 하락), 금리상승 등이 금융시스템 전반의 건전성 악화로 확산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판단했다.
대출 규모가 압도적으로 큰 4·5분위 고소득층은 대부분 유주택자다. 이들은 시장 상황에 따라 투자수요로 돌변해 주택시장을 크게 움직인다. 다만 2024년엔 예상되는 주택시장 침체 상황을 고려해 투자수요가 적극 나서긴 힘들 것이란 관측이 많다.
관건은 무주택자 비율이 높은 1~3분위 계층이 주택수요자로 나설지 여부다. 일단 내년부터 대출 여력이 추가로 생기는 계층이 있다. 무주택 신혼부부다.
정부는 새해부터 ‘신생아 특례 대출’을 최대 5억원까지 지원하기로 했다. 대출 신청일 기준 2년 내 출산(2023년 1월1일 이후 출생 포함)한 무주택 가구에 대해 최저 1.6% 금리로 제공한다. 올 상반기 특례보금자리론 효과로 집값이 반등했던 것처럼 신생아 특례대출을 활용해 급매물을 찾는 신혼부부가 늘면 주택시장에 회복 기대감이 커질 수 있다.
새해부터 결혼과 출산을 할 때 증여세가 대폭 공제되는 것도 무주택 신혼부부에겐 내집마련 기회가 될 수 있다. 국회는 내년 1월부터 결혼하는 자녀에게 부모가 줄 수 있는 비과세 증여 한도를 1억5000만원까지 늘리기로 했다. 기존엔 5000만원만 공제됐다. 양가로부터 증여를 받는다면 최대 3억원을 비과세로 증여받을 수 있다.
각종 지표를 보면 무주택자들의 주택구매력은 회복하는 중이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서민들의 주택을 살 능력을 뜻하는 전국 ‘주택구매력지수(HAI)’는 지난 9월 기준 137.1로 1월 123.8 보다 높아졌다. 이 지수는 지난해 10월 81.5까지 떨어졌다가 빠르게 높아지는 추세다.
HAI는 우리나라 중간 정도의 소득을 가진 가구가 대출을 받아 중간 수준의 주택을 산다고 가정할 때 현재 소득으로 대출원리금 상환에 필요한 금액을 부담할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낸다. 100보다 높을수록 중간정도의 소득을 가진 가구가 중간 가격대 주택을 구입하는 데 무리가 없다는 뜻이다.
최근 발표된 2022년 주거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자가보유율은 61.3% 수준이다. 집이 한 채도 없는 사람은 아직 38.7%나 된다.
집이 있어도 아파트 거주 가구는 절반 수준밖에 안된다. 우리나라 전체 가구 중 아파트 거주 비율은 51.95%(수도권은 52.3%)다.
우리나라는 ‘아파트공화국’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아파트 선호 의식이 압도적으로 높다. 비아파트 거주자들은 여건만 된다면 언제든 아파트로 이사하고 싶어 한다.
아파트 선호 의식은 소득별 거주 유형에 그대로 드러난다. 전국 기준 고소득층은 76.85%가, 저소득층은 33.22%가 아파트에 산다. 소득이 높아질수록 아파트로 이사한다는 의미다.
주택보유의식은 더 높아졌다. 우리나라 전체 가구 중 ‘내 집을 보유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중은 89.6%나 된다. 2021년 88.9%에 비해 더 높아졌다. 그러니 정부에게 요구하는 가장 필요한 주거지원 프로그램 1위는 ‘주택구입자금 대출지원(34.6%)’이다. ‘전세자금 대출지원(24.6%)’이나 ‘장기공공 임대주택 공급(11.6%)’, ‘월세보조금 지원(11.5%)’ 등으로 응답한 가구도 당장은 집을 살 여력이 못되지만 언젠간 내 집 마련을 하겠다고 계획한다.
내년 주택시장은 어떻게 달라질까. 시장 회복 기대감을 가진 무주택자 중 일부가, 유주택자 중에서도 아파트로 옮기고 깊은 비아파트 거주가구가, 대출 및 증여 여건 변화로 자금 여력이 생긴 신혼부부가 어떻게 움직일 지에 정답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