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엔솔, 포드와 튀르키예 합작공장 건설 철회
SK온-포드 美 켄터키주 공장 가동 연기하기로
LFP배터리 개발 ‘박차’…내실다지기 집중 전략
[헤럴드경제=서재근 기자] 국내 배터리 업계가 글로벌 전기차 제조사들과 세운 합작공장 건설을 연기하거나 아예 설립 계획을 철회하는 등 전략 재정비에 나서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고금리 여파로 전기차 수요 둔화세가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속도 조절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과 미국 완성차 제조사 포드, 튀르키예 코치그룹은 지난 11일(현지시간) 배터리 합작공장을 설립하기 위한 3자간 업무협약(MOU)을 해지했다.
LG에너지솔루션과 포드는 앞서 지난 2월 코치그룹과 오는 2026년 완공을 목표로 튀르키예에 배터리 합작공장을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약 25GWh 규모의 배터리 공장 건설을 우선 추진하고, 향후 45GWh까지 확대할 계획이었다.
신규 투자 철회 이유에 대해 LG에너지솔루션은 “전기차(EV) 전환 속도를 고려했을 때 튀르키예에 건설 예정이던 배터리셀 생산시설에 대한 투자를 지속하기에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는 것에 3사가 상호 동의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포드와 상용차 EV 관련 배터리 공급 계획은 차질 없이 진행할 방침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기존 생산시설에서 동일한 포드 상용 EV 모델에 탑재될 배터리셀을 공급할 예정이며, 양사는 앞으로도 오랜 비즈니스 관계를 확장해 나갈 것”이라며 “오는 2035년까지 유럽 전역에 EV 포트폴리오를 제공하려는 포드의 목표에 지속해서 협력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배터리 합작공장 계획에 제동이 걸린 것은 SK온도 마찬가지다. 포드와 추진했던 테네시 공장과 켄터키 1공장은 계획대로 2025년부터 운영할 계획이지만, 2공장의 양산 시점을 2026년 이후로 미뤘다.
지동섭 SK온 사장은 지난 1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 호텔에서 열린 ‘제3회 배터리 산업의 날’ 행사에서 “포드와 탄력적으로 일정 조정 등을 협의하고 있다”며 “단기적으로 2024년 정도까지는 전기차 시장에 출렁임이 있을 것”이라며 “상황에 따라 새로 짓는 공장의 가동 시점을 일부 조정하는 등 탄력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배터리 업계뿐만 아니라 글로벌 완성차 제조사들도 속도 조절에 나섰다.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는 미시간주 전기차 전용 공장 가동 시점을 1년 연기했고, 독일 폭스바겐그룹도 최근 유럽 전기차 수요 둔화 전망을 고려해 동유럽 지역에 4번째 배터리 생산공장 설립 계획을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업체들이 숨 고르기에 나선 데는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부진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에너지 시장 조사 전문기관인 블룸버그뉴에너지파이낸스(BNEF)에 따르면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수요 증가율은 2021년 100%를 기록한 이후 지난해 68%를 기록하며 성장세가 꺾였다. 올해는 45%까지 낮아졌다.
국내 전기차 시장 상황도 마찬가지다. 올해 3분기까지 신규 등록 전기차는 11만5120대로 전년 동기 대비 2% 줄었다. 특히 수입 전기차는 1만8412대로 같은 기간 20% 감소했다.
이에 국내 배터리 업계는 외연 확장에 초점을 맞춘 공격적인 투자보다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개발 등 내실 다지기에 집중한다는 전략이다.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은 올해 배터리 산업의 날 행사에서 “돈이 문제가 아니라 공장을 짓는 인력을 감당하지 못할 수준이었다”며 “급성장 과정에서 간과한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데 이런 것들을 다지면 K-배터리가 한 번 더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SK온도 포드 합작공장 건설 지연이 오히려 내실을 다지는 기회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했다. 지 사장은 “인력을 많이 채용하면서 여러 힘든 부분이 있었는데, 오히려 숨을 고르면서 필요한 준비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며 2026년으로 계획했던 전기차용 LFP 배터리 양산을 앞당기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