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정유사 등에 횡재세 도입 추진하기로
정부·여당 반대에도 총선 전 논의 속도낼 가능성
정유사들 “적자때 외면 흑자 내니 재개” 당혹
“사업구조상 부적합…이중과세 우려도”
[헤럴드경제=김은희 기자] 정유사들이 3분기 대폭 상승한 실적을 거두면서 야권이 9개월여 만에 ‘횡재세(초과이득세)’를 다시 꺼내 들어 과도한 입법 논란이 일고 있다. 정유업계는 올해 상반기 적자를 낼 때는 외면하고는 흑자를 내니 바로 횡재세 논의를 재개해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경제학자들은 횡재세가 장기적으로는 한국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횡재세 이슈를 다시 수면 위로 올린 것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이 대표는 지난 1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유가 상승, 고금리 때문에 정유사와 은행이 사상 최고의 수익을 거두고 있다”며 “민생 위기를 극복하고 민생 고통을 분담할 수 있도록 횡재세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발의돼 있는 횡재세 관련 법안을 연내 처리하겠다는 게 민주당의 계획이다.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국회에는 정제업자 등에 대한 초과이득세를 신설하는 내용을 담은 법인세법 일부개정안이 3건 발의돼 있다. 세부안이 조금씩 다르지만 소득금액이 직전 3개 사업연도 평균 소득금액보다 일정 이상 많을 때 초과금액의 20~50%를 법인세에 추가 납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정치권의 적극적인 움직임에 정유업계는 반발하고 있다. 에너지 시장은 경기 사이클이 클 수밖에 없는 업종인데 수익이 확대될 때마다 횡재세 주장이 나오는 게 불합리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국제 유가나 제품가격 변동에 따라 정유사의 손익은 일정하지 않다. 유가가 하락했던 2020년 약 5조원의 손실을 기록한 바 있고 재고평가이익도 유가 흐름에 따라 언제든 손실로 전환될 수 있다.
올해만 봐도 2분기에는 국내 정유 4사(SK이노베이션·GS칼텍스·S-OIL·HD현대오일뱅크)가 연결 기준 합산 535억원의 적자를 냈다. 최근 유가와 정제마진 하락, 글로벌 경기 악화 등의 영향으로 4분기 실적도 3분기와 비교해 저조할 것으로 업계는 예측하고 있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일시적인 호실적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며 “올여름 적자를 낼 때는 아무 얘기가 없다가 실적이 괜찮아지니 바로 횡재세 얘기를 꺼냈다. 합리적인 조세 기준에 맞춰 숙고한 논의인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아울러 민주당이 해외 횡재세 도입 사례를 제시하고 있지만 이는 해외 석유사와 국내 정유사의 사업구조 차이를 간과한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원유를 직접 시추해 판매하는 유럽·미국의 석유사와 달리 국내 정유사는 원유를 수입한 뒤 정제해 판매하고 있어 유가가 오르면 오르는 대로 비싼 값에 원유를 사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 이러한 지적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법안 검토보고서에서도 제기된다. 김경호 전문위원은 “초과이익세는 기본적으로 지하자원 채굴사업자가 독점적 지위에 의해 막대한 이익을 얻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 부과하는 세금으로 국내 정유업의 수익구조에 부과하는 것이 적합한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면서 “국내 정유사는 최근 정제마진이 크게 하락했듯 고수익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이중과세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정유사가 법인세를 납부 중이므로 추가 과세는 과세형평성에 반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반도체, 화학 등 초과이익을 기록한 업종에 대해 정부가 추가과세를 한 적은 없다.
특히 민주당이 과세 대상 업종을 정유사, 은행을 넘어 제약, 보험 등으로 확대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시장경제 기능을 왜곡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각에선 횡재세 도입으로 부담이 커진 정유사가 석유제품 가격을 인상할 경우 고물가 상황이 악화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우리나라 5대 수출품 중 하나인 석유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악화됨으로써 수출 부진 등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봤다.
석병훈 이화여대 교수는 “경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기업이 이윤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주장은 직관적이라 정치적 지지를 받겠지만 경제학적으로 보면 한국 경제에는 부정적”이라며 “이윤 극대화가 목적인 민간 기업에 횡재세를 부과하면 어느 기업이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비용 절감을 위해 노력하겠냐. 기업 혁신이 줄고 일자리 창출이 주는 등 장기적으로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