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8월의 일이었다. 한 피겨스케이팅 선수 어머니가 작은 한숨을 내쉬며 기자에게 말했다. “대회가 코앞인데 마음 놓고 훈련할 연습장이 없네요.” 태릉빙상장은 발암물질이 기준치의 20배나 검출돼 선수들을 모두 철수시킨 상황이었다. 과천빙상장과 롯데월드 아이스링크 등을 오가며 토막 훈련을 했는데, 이마저도 일주일에 2~3일은 온전히 빌릴 수가 없어 일반인들과 부대끼며 훈련을 해야 했다. 바로 2014 소치올림픽에서 2회 연속 금메달에 도전하는 김연아였다. 그의 자서전 ‘김연아의 7분 드라마’를 읽으면 당시의 힘들었던 심경이 그대로 전해진다. “링크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이 끊임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플래시가 여기저기서 터져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었다.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 나와 경쟁할 다른 선수들은 자기 혼자 또는 선수들끼리만 있을 링크에서 집중해서 훈련하고 있을 텐데’하는 생각이 들자 너무 서러워서 눈물이 복받쳤다.”
7년도 더 된 이야기다. 김연아는 그 사이 한국 피겨 위상을, 팬들의 눈높이를 상상도 못할 만큼 끌어올렸다. 그때만 하더라도 ‘올림픽’, ‘세계선수권’, ‘금메달’이라는 단어들은 적어도 피겨라는 종목에선 딴 나라 얘기였다. 하지만 4년 전 밴쿠버올림픽에서 김연아는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운 아름다운 연기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사실 밴쿠버올림픽 직전에도 김연아를 향해 많은 물음표가 던져졌다. 과연 주니어 시절 자신보다 앞섰던 동갑내기 일본 선수 아사다 마오를 이길 수 있을까. 아사다의 트리플악셀(3회전 반 점프)이란 걸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 그런 ‘필살기’ 없이도 김연아가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까. 김연아가 우승할 경우 기대할 수 있는 경제적 효과는? 대한민국 브랜드 가치는?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에 미치는 영향은? 많은 사람이 계산기를 두드리며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그는 거짓말처럼 이 모든 것을 다 이뤄냈다.
그랬던 김연아가 다시 무대에 오르려 하고 있다. 4년 전엔 분명 개인적인 목표가 있었다. 여덟살 때인 1998년 나가노올림픽에서 미셸 콴을 보면서 처음 가슴에 품었던 올림픽 금메달 꿈. 하지만 지금은 개인적인 영달이나 명예는 의미가 없다. 김연아 이후 아무 것도 준비되지 않은 한국 피겨의 막막한 현실에 마지막 남은 힘을 보태고자 그는 다시 무대에 오른다.
그러나 정작 우리의 시선은 4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김연아의 연기가 더 완벽해지길 바라고, 당연히 아사다 마오쯤은 이겨야 하고, 금메달은 물론 세계 최고기록도 세워줬으면 좋겠고…. 욕심이다. 그는 이미 우리에게 넘치도록 많은 걸 줬다. 다시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 선물 그 자체다.
지금 김연아는 우리에게 손을 흔들며 마지막 인사를 하려 한다. 여왕에게 박수를 보내야 할 때? 바로 지금부터다. 금메달을 따는 순간으로 박수를 아껴두지 말자. 그래서 그가 모든 연기를 끝내고 퇴장할 때까지, 등을 돌리고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진심으로 고마웠노라고 박수를 쳐주자. 그것이 김연아가 우리에게 준 선물에 대한 마지막 감사인사일 것이다.
조범자 엔터테인먼트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