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손인규 기자]“택배 아저씨, 전화 말고 문자주세요”
대학생 A씨는 전화가 오면 받지 않는다. 모르는 번호면 당연, 아는 번호라고 해도 가능하면 안 받다가 문자나 톡을 보낸다. 심지어 부모님과 전화도 불편하다고 호소한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전화를 걸거나 받는 것에 불편함을 넘어 긴장과 두려움까지 호소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콜 포비아(Call phobia)’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구인구직 아르바이트 전문 포털 ‘알바천국’은 최근 MZ세대 1496명을 대상으로 콜 포비아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 35.6%가 콜 포비아 증상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지난해 동일 조사(29.9%)보다 5.7%p 늘었다.
특히 이런 콜 포비아는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이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중 여성의 45.7%가 콜 포비아가 있다고 답한 반면 남성은 20.9%에 그쳤다. 여성의 75.9%가 전화보다 텍스트 위주의 소통 방식이 편하다고 답했다.
콜 포비아를 겪는 사람은 오는 전화도 두렵지만 거는 전화도 어렵다. 홍보대행사에 다니고 있는 여성 B씨(29)는 “회사에서 맡는 첫 업무가 자료 보냈다고 기자에게 전화를 하는 것인데 사실 이게 가장 어렵고 하기 싫은 일”이라며 “전화를 하면서도 ‘제발 받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생각한다. 전화를 안 받으면 이후에 문자로 보내는데 이게 훨씬 편하다”고 말했다.
실제 유명인 중에도 콜 포비아를 겪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가수 아이유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누구하고도 전화하는 것이 어렵다. 엄마랑 통화를 하더라도 조금 불편하다”고 말한 바 있다.
댄서 허니제이도 한 고민 프로그램에 나와 “전화받기가 너무 두렵다. 전화가 오면 가슴이 답답해진다”고 말했다.
알바천국 조사에 따르면 전화 통화의 가장 큰 어려움은 ‘생각을 정리할 틈 없이 바로 대답해야 하는 점(60.0%)’이 꼽혔다. 이와 함께 ▷생각한 바를 제대로 말하지 못할 것이 걱정돼서(55.9%) ▷문자, 메시지 등 비대면 소통이 훨씬 익숙해서(51.6%) ▷상대방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할 것이 걱정돼서(29.5%) ▷할 말이 떨어졌을 때 침묵이 불안해서(24.2%) 등이었다.
이들은 전화가 오면 ‘받기 전에 높은 긴장감과 불안감을 느낀다’거나 ‘전화 통화시 심장이 빠르게 뛰거나 식은땀이 나는 등 신체 변화가 있다’고 답했다. 이에 절반 이상이 전화가 오면 시간을 끌거나 받지 않는다고 했다.
이에 콜 포비아를 겪는 10명 중 4명 정도는 ‘모르는 번호의 전화는 받지 않는다’고 답했다. 전화 통화를 최소화하고 이메일, 문자 위주로 소통(28.8%), 전화 통화를 하기 전 미리 대본 작성(28.4%) 등으로 대처한다고도 했다.
이런 콜 포비아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 8월 미국 CBS NEWS는 ‘Z세대의 90%가 전화 통화에 걱정을 느낀다’는 보도를 한 바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콜 포비아는 정신의학적 문제는 아니기 때문에 치료까지 필요한 증상은 아니라고 한다. 콜 포비아 극복을 위해서는 자신이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상대와 전화로 간단히 안부 묻기 등 짧은 대화로 시작해 조금씩 시간을 늘리는 것이 좋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