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넘어 한반도정세까지 전략적 협력
경제난 北, 식량·유류도 거래품목 포함
푸틴 “극동·북러관계 솔직한 의견 교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북러정상회담이 막을 내렸지만 국제사회를 향한 김 위원장의 ‘관심 끌기’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국제사회는 핵·탄도미사일 도발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국제무대에서 ‘왕따’ 신세에 놓여있던 북한과 러시아 정상 간 만남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북한이 러시아에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활용할 탄약과 포탄 등 재래무기를 제공하고, 러시아가 북한에 군사정찰위성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비롯한 대량살상무기(WMD)와 연관된 진전된 기술을 이전하는 등 ‘악마의 거래’가 성사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전문가들은 경제난을 겪고 있는 북한이 식량과 유류 등도 러시아와의 거래 품목에 포함시킬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북러정상회담 이후에도 러시아에 머물며 일정을 이어갈 예정이다.
러시아 현지 매체들은 북러정상회담 뒤 푸틴 대통령이 “김 위원장이 민간·군사장비 생산시설들이 있는 콤소몰스크나아무레에를 비롯해 블라디보스토크 등을 방문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하바롭스크주에 위치한 콤소몰스크나아무레에는 산업도시로 북러정상회담이 열린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1170㎞가량 떨어져 있다.
특히 수호이(Su)-27과 Su-30, Su-33 등 옛 소련제 전투기와 2000년대 개발된 4.5세대 전투기 Su-35, 그리고 2020년 실전배치된 첨단 5세대 전투기 Su-57 등을 생산하는 유리 가가린 전투기 공장과 잠수함 등 군함 건조 조선소가 자리하고 있다. 김 위원장의 부친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과거 이곳을 찾아 전투기 공장을 둘러본 바 있다.
김 위원장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태평양함대사령부와 극동연방대학교 등을 찾을 예정이다.
이와 관련 푸틴 대통령은 “바쁜 일정이 북한 지도자를 기다리고 있다”며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태평양함대의 역량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김 위원장은 생태학 및 교육과 관련된 몇 가지 문제로 극동연방대와 해양생물학 시설이 있는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산하 시설들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수행단에 북한군 서열 1·2위인 리병철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과 박정천 당 군정지도부장, 그리고 강순남 국방상과 함께 김명식 해군사령관과 김광혁 공군사령관이 포함됐다는 점에서 김 위원장의 러시아 전투기 공장과 태평양함대사령부 방문 계기에 양국 간 해·공군 영역에서의 협력이 구체화될 가능성이 높다.
김 위원장은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도 따로 만날 것으로 보인다.
앞서 러시아 현지 매체는 김 위원장이 북러정상회담 뒤 오는 16일 쇼이구 장관과 만날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최소 16일까지는 김 위원장의 일거수일투족에 국제사회의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는 셈이다.
김 위원장이 북한 최고지도자 전용열차인 ‘1호 열차’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평양으로 돌아가는 시점이 더욱 늦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같은 동선이 보여주듯 김 위원장의 이번 방러 목적은 우선적으로 양국 간 군사협력 확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김 위원장은 북러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러시아의 서방에 맞선 ‘성전’으로 규정하면서 “제국주의와 맞서 싸우는 데 함께 하겠다”고 밝혀 러시아가 필요로 하는 탄약과 포탄 등 재래무기 지원 의사를 내비쳤다.
푸틴 대통령은 북러정상회담에 앞서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북한의 인공위성 개발을 도울 지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래서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이라며 북한이 내달 세 번째 발사를 예고한 군사정찰위성 지원을 시사했다.
그는 정상회담을 마친 뒤에는 북러 군사협력 확대와 관련 “러시아는 국제의무를 준수한다”면서도 “하지만 규정 내에서 협력할 기회들이 있을 것”이라며 애써 부인하지 않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북러의 시선이 단지 군사 분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문제를 비롯한 전방위에 걸친 전략적 협력 강화로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김 위원장은 북러관계에 대해 옛 소련의 북한 정권 수립 기여 등 양국이 오랜 우호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지금도 우리나라의 최우선 순위는 러시아와의 관계다. 이번 회담이 양국관계를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이라며 “우리는 정치, 경제, 문화를 포함한 아주 많은 의제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푸틴 대통령 역시 “우리는 경제 협력, 인도주의적 문제, 한반도 정세에 대해 확실히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호응했으며, 북러정상회담 뒤에는 “극동지역 정세와 양국관계에 대한 아주 솔직한 의견 교환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신대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