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들도 주목한 金의 샌들 선택
패션 선택 아닌 건강이상설 정설
못난이 ‘아빠 샌들’, 빈티지 바람에 다시 부활
편집자주
지구촌 이색적인 장소와 물건의 디자인을 랜 선을 따라 한 바퀴 휙 둘러봅니다. 스폿잇(Spot it)은 같은 그림을 빨리 찾으면 이기는 카드 놀이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헤럴드경제=한지숙 기자] ‘한효주와 김정은에게 공통점이 있다?’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에 출연 중인 배우 한효주와 3대 세습 독재자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사이에는 공통점이 하나 발견된다. 뜬금포 같은 소리지만 실제 올 여름에 공개된 둘의 사진을 보면 그렇다. 세계적인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 팝스타 저스틴 비버의 아내인 모델 헤일리 비버도 이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패션에 관심 있는 이라면 눈치챘겠지만, 정답은 이 둘이 신은 신발에 있다.
한효주가 지난달 31일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을 보자. “출근룩 어쩌다 미국까지 와서 알바”라는 문구가 달린 사진에서 한효주는 카키색 점프 슈트 위에 헐렁한 데님 재킷을 걸치고, 흰 목 양말에 검은색 피셔맨 샌들을 신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8월 28일 북한 해군절에 크림색 정장에 연 회색 피셔맨 샌들로 깔맞춤 했다. 은둔의 독재자의 최신 유행 신발에 외신들도 주목했다. “샌들 신고 북한 수해현장을 둘러보는 김정은”(뉴욕포스트), “김정은의 패션을 앞선 피셔맨 샌들을 신은 놀라운 순간”(이브닝스탠더드), “세련된 피셔맨 샌들 유행을 선도하는 김정은”(가디언) 등의 제목이 쏟아졌다.
타블로이드지(紙) 이브닝스탠더드는 지난달 “버켄스탁, 크록스 등의 여름 신발을 지겨워하는 이들에게 우아한 피셔맨 샌들이 이상적인 스타일 리더로 부상했다”며 테일러 스위프트, 헤일리 비버와 함께 김정은이 피셔맨 샌들을 착용한 사진을 나란히 실었다.
이 매체는 “김정은이 딸 주애양과 해군절 기념 열병식에 참석한 자리에 연한 회색의 가죽 샌들을 선택했다”며 “싱글 브레스티드(single breasted·앞 여밈 단추가 한 줄 스타일) 베이지색 정장에 신발 색깔을 맞춰 ‘석세션’(HBO 드라마)의 톰 웜브스갠스(매슈 맥패디언 역)가 이탈리아 투스카니에서 입은 것보다 더한 역한 냄새를 풍겼다”고 썼다.
영국 가디언은 최근 보도에서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접근하기 어렵고 가장 권위주의적인 국가 중 하나인데 그 지도자 김정은이 패션에 가장 민감한 정치인으로 떠오를 수 있을까”라고 흥미로워하며 김 위원장의 해군절 샌들에 주목했다.
가디언은 김정은의 신발은 이전에도 언론의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며 2015년에 ‘신의주 운동화’를 신고 수해복구 지도에 나선 적이 있으며, 2018년에는 그가 키를 더 커 보이게 하기 위해 키높이 깔창을 댄다는 한국 언론 보도도 있었다고 소개했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북한 주재 영국 대사를 지낸 존 에버라드는 가디언에 “그의 사진 대부분이 상체 사진인 점을 감안하면 그가 무엇을 신고 있는 지 확실히 알 수 없다. 이전에는 샌들도 본 적이 없다”면서, “우리는 그가 음식, 자동차 같은 걸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런 점에서 그가 세련된 신발을 찾았을 가능성도 꽤 있다”고 말했다.
뉴욕포스트는 지난달 22일자 보도에서 “은둔의 왕국 지도자 김정은이 수해를 둘러보기 위해 드물게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샌들을 착용했다”며 지난달 태풍 카눈 피해를 입은 강원도 안변군을 찾은 김 위원장의 모습을 소개했다. 매체는 “김 위원장이 밝은 흰색 긴 팔 셔츠에 검은색 바지와 검은색 샌들로 맞췄다”며 “그가 허리 높이 물을 헤치고 나가는 모습도 보였는데 여름철 샌들이 비바람에 맞서 그닥 보호해줄 것 같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이 이처럼 이상한 신발 선택을 한 건 처음이 아니다”며 “이미 2021년에 한 연설에서 샌들 데뷔를 치렀다”고 덧붙였다.
2021년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6주년 기념강연회에서 김 위원장이 검은색 양복에 와인색 넥타이를 하고 검은색 양말에 갈색 샌들을 맞춰 신은 것을 가리킨 것이다.
김 위원장이 샌들을 신은 모습은 2021년부터 여러 차례 포착되고 있는데 국내에선 패션 취향이라기 보다 건강이상설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쌀쌀한 날씨에 긴 코트까지 입고 샌들을 신는 등 TPO에 맞지 않고, 2014년에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는 모습이 노출된 적이 있어 건강 연관성에 무게가 실린다.
당시 국정원은 김 위원장이 족근관증후군 진단을 받아 수술했다고 발표했다. 그가 당뇨발(디엠풋 DM Foot: Diabetes Mellitus Foot)을 앓고 있다는 설이 있다. 당뇨발은 발이 화끈거리고 극심한 통증을 동반하기 때문에 당뇨발 환자들은 발 볼이 넓고 통풍이 잘되는 특수 신발을 신는다.
피셔맨(Fisherman) 샌들은 1940년대 지중해 어부들이 신던 신발이다. 옛날 유럽 중세 시대 삽화 등에 나오는 어부의 신발에서 그 기원을 찾기도 한다.
발 등 가운데 T자형 가죽을 중심으로 가로 세로 스트랩을 덧대고 발목에 버클을 달아 감싼 게 특징이다. 케이지(Cage·새장) 샌들이라고도 하며, 흔히 ‘아빠 샌들’로도 불리운다. 발가락을 덮는 디자인은 간절기나 약간 쌀쌀해진 날씨에 적합하며 캐주얼하면서도 ‘쿨비즈’에도 어울려 실용적이다. 영국 수제화 브랜드 그렌슨의 대주주 팀 리틀은 가디언에 “이 신은 통기성이 뛰어나고 가장 중요하게는 물이 빠져나가도록 해준다”고 설명했다.
현재의 디자인은 1980년대 대유행했다. 이후 40년 지난 올해 여름 빈티지 유행을 타고 구미권 패션 중심지 길거리를 점령하며 화려하게 다시 부활했다. 구찌, 프라다, 마르니 등 명품 브랜드들도 피셔맨 샌들을 선보이며 최신 유행에 합류했다.
가디언은 보그지를 인용해 올 여름 ‘리스본 피셔맨 샌들’ 판매가 지난해 여름 시즌과 비교해 200% 신장했으며, 버켄스탁 판매는 63% 성장에 그쳤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