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새길을 열다 ②
[헤럴드경제=김희량·전새날 기자] 2분. ‘품귀 사태’를 겪고 있는 농심의 ‘먹태깡’이 농심몰에서 매진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농심은 평일 오전 9시, 오후 2시 각각 100박스씩 판매하는데 보통 2분 내로 매진되고 있다. 농심몰은 먹태깡 출시 이후 신규가입자 수가 올해 상반기 평균 대비 3배로 증가했다.
과거 마트나 e-커머스를 통해 제품을 판매하던 식품기업이 이제 자체적인 판매망을 통해 ‘유통 DNA’를 장착하고 있다. 판매처를 온라인으로 더욱 늘리며 동시에 소비자 접점을 넓히는 셈이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쿠팡 등 e-커머스가 유통업계의 새 판도를 쓰는 가운데 제조사인 식품업체들은 ‘판매주도권’을 확보하고자 힘쓰고 있다. 올해 1분기 e-커머스업계 1위인 쿠팡은 유통업계 1위의 이마트의 매출을 처음으로 넘어선 상태다.
CJ제일제당(CJ더마켓), 대상(정원e샵), 동원F&B(동원몰), hy(프레딧몰) 등 주요 식품기업들은 자체 자사몰을 운영하고 있다. 신제품을 선공개하거나 농심처럼 인기 제품을 구할 수 있는 또 다른 경로로 소비자들에게 알려지고 있다. 농심도 약 1년 전인 지난해 8월 자사몰인 농심몰을 오픈해 제품을 판매 중이다. 식품기업 내 특정 브랜드만 특화하는 경우도 있다. 오리온의 경우 제주용암수, 단백질바 등 닥터유 제품을 주력으로 하는 ‘닥터유몰’을 기존 제주용암수 애플리케이션과 통합해 올해 7월부터 운영 중이다.
자사몰은 고객 데이터 확보는 물론 브랜드 이미지를 소비자에게 심어주기에도 효과적이다. 제조사는 유통사의 도움없이 접속 시간과 연령대별 인기 제품을 분석해 트렌드 파악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쿠팡과 CJ제일제당의 ‘햇반 판매 중단 사례’처럼 제조사와 유통사 간 갈등이 발생했을 때 충격을 줄일 수 있는 일종의 안전망이기도 하다.
자사몰은 충성 고객을 모으는 마케팅 수단이기도 하다. 6월 먹태깡 첫 출시 이후 농심몰을 통해 판매된 양은 약 17만봉으로 8월 말 기준 누적 판매량 424만봉의 4%에 불과하지만 가입자 수가 최근 많아져 전체 회원 수가 8월 말 기준 전년 말 대비 7배 증가했다.
식품기업의 자사몰 운영은 e-커머스화(化)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라는 시각도 있다. 조영상 공주대 산업유통학과 교수는 “식품기업 입장에서 소비자가 파이널 유저가 되는 시스템이 사실상 구축된 상태”라며 “인터넷, 도로망, 택배를 다 갖춘 한국의 현 상황에서 식품제조사도 굳이 유통업체를 끼고 판매를 할 요인이 과거에 비해 줄어들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삭품업계에 부는 또 다른 ‘바람’은 자사 매장을 늘리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제조사가 사실상 소매업에 진출한 형태로 보고 있다. 과거 서울 성동구 성수동 등 MZ세대들이 많이 찾는 거리에서 팝업스토어를 열던 형태와는 달리 브랜드 이름을 걸고 오프라인 매장을 직접 운영해 판매처·홍보관·팝업스토어의 역할을 모두 하는 셈이다. 풀무원과 hy가 대표적이다.
이들 업체는 기존 마트 등 채널 외 온라인 자사몰을 모니터·휴대폰 밖으로 꺼낸 모양새다. 풀무원은 신사업의 일환으로 4월 인천 미추홀구에 24시간 무인 매장(가맹 1호점)을 시범 운영한 뒤 8월 경기 경기 성남시의 판교 지역에 직영점을 열어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약 340개의 풀무원 제품을 판매되고 있다.
2021년 기존 한국야구르트 이름을 던지고 유통기업으로 변신을 시작한 hy 또한 지난해 9월 서울 양천구 신정동에 이어 올해 4월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 무인 매장 ‘프레딧샵’을 열었다. 프레딧샵의 특징은 CJ제일제당 등 타 식품제조사들의 제품군과 더불어 치약, 바디워시 등 생활용품과 화장품까지 폭 넓은 카테고리의 제품을 판매한다는 점이다.
hy의 경우 2020년 12월 자사몰인 프레딧몰을 연 후 올해 8월 30일 기준 153만명의 회원 수를 확보한 상태다. 지난해 프레딧몰의 매출은 1170억원으로 전체 hy의 매출 중 10%를 담당했다. 프레딧몰은 1만명이 넘는 프레시매니저(옛 야구르트 아줌마)를 통해 카드, 면도기, 선물세트 등을 배송할 수 있는 소형 물류 인프라를 가진 ‘움직이는 편의점’의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hy는 이 프레딧몰에서 인기 제품과 리뷰를 그대로 오프라인 매장에 가져 와 온·오프라인 두 공간에서 모두 소비자가 hy의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식품업계가 유통 시너지를 낸 것은 처음은 아니다. 다만 그동안은 롯데칠성음료-롯데마트, 메가마트-농심처럼 계열사 간 거래에 그치는 수준이었다. 식품기업의 무인 매장 운영은 기존 식품업체가 걸어온 길과는 달라 실제 질적인 성장으로 이어질지 관련 업계는 주목하는 모양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