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유능한 펀드 매니저라도 시장을 지속적으로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워런 버핏)”
‘오마하의 현인’이자 투자의 귀재인 워런 버핏은 지난 2007년 여름 뉴욕 헤지펀드 프로테제 파트너스의 수장 테드 세이즈와 ‘세기의 대결’을 펼친다.
버핏이 대중에게 펀드 매니저들에 대한 불신을 얘기하고 다니자 세이즈가 발끈한 것이다. 버핏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고 싶었던 세이즈는 먼저 내기를 제안했다.
2008년 1월부터 10년 간 버핏은 뱅가드의 S&P500 인덱스펀드에, 세이즈는 5개의 헤지펀드에 투자하는 재간접펀드에 각각 32만 달러를 거는 것으로 세기의 대결은 시작했다. 이들은 판돈을 각각 미국 국채에 10년 간 투자해 100만 달러로 불린 후 승자가 정한 자선단체에 기부하기로 했다.
결과는 버핏의 승. 버핏이 정한 인덱스펀드는 지난 10년간 125.8%의 수익률을 기록했지만, 세이즈의 재간접펀드는 같은 기간 36.3%의 수익을 내는데 그쳤다. 펀드 매니저의 수수료까지 따지면 연 2%도 안되는 수익을 낸 것. 덕분에 적은 수수료로 시장의 흐름에 따라 투자하는 일명 ‘패시브 투자’가 재조명되면서 투자의 민주화를 이뤄낸 이 투자 기법이 다시금 각광을 받기 시작한다.
파이낸셜타임즈 기자인 로빈 위글스워스는 그의 신작 ‘투자의 구원자들(원제 TRILLIONS)’에서 패시브 투자의 대표격인 인덱스펀드의 이론적 토대와 상품의 태동, 발전 등에 이바지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여기에 인덱스펀드의 요즘 버전인 상장지수펀드의 탄생과 부침까지 들여다본다. 이 책에 등장하는 경제학자 및 금융가는 대략 32명. 이중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만 8명이다.
1970년대 태동한 인덱스펀드의 학문적 토대는 윌리엄 샤프 스탠퍼드대 명예교수의 ‘자본자산 가격 결정 모델’이다. 주식이나 펀드의 성과를 그 수익률의 변동성과 비교해 측정해야 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여기에 투자자를 위한 최고의 투자상품은 전체 시장이라는 사실도 샤프 교수는 지적한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마라’는 투자 격언도 이 때부터 시작했다.
이어 버턴 말킬 프린스턴대 교수의 랜덤워크 이론(주가는 무작위로 움직이기 때문에 예측은 의미가 없는 이론)과 유진 파마 시카고대 교수의 효율적 시장 가설(가격은 상품에 대해 얻을 수 있는 모든 정보를 빠르게 반영하며, 따라서 그 정보들을 이용해 장기적으로 시장 수익률을 넘을 수 없다는 가설) 등이 등장했다. 이어 인덱스펀드 세계 빅3 운용사인 블랙록, 뱅가드, 스테이트스트리트 등이 시장에서 공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이에 따라 2020년 말 현재 미국 내 인덱스펀드의 시장 규모는 약 16조 달러로 커졌다. 대규모의 연기금이나 국부펀드 등도 지수 추종 전략을 따르는 점을 고려하면 26조 달러 이상의 자금이 S&P500이나 블룸버그-바클레이즈 종합지수 등 주요 지수에 투자하고 있다고 저자는 봤다.
적은 수수료로 헤지펀드보다 높은 수익을 안겨주는 인덱스펀드에는 단점이 전혀 없을까. 동전의 양면처럼 인덱스펀드 역시 부정적인 측면이 존재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인덱스펀드가 시가총액에 가중치를 두고 투자를 하다 보니 시총규모가 큰 주식에 더 자금을 유입되도록 작동한다. 이러한 역학은 시장이 거품을 향해 가도록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또 보유 현금이 적은 인덱스펀드의 특성상 시장 충격에 따른 자금 유출이 발생할 경우 빠르게 주식을 매도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하락장에선 인덱스펀드로 인해 시장에 미치는 충격파가 더 커질 수 있다. 이에 인덱스펀드가 시장에서 우려를 넘어 공포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신소연 기자